대기업 ‘탈스펙’ 채용지침 혼란...취준생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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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탈스펙’ 채용지침 혼란...취준생은 괴롭다
  • 취재기자 홍승호
  • 승인 2015.10.0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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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위해 스펙 쌓아온 지방대생들 "우린 어쩌란 말이냐" 아우성

올해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부터 ‘탈스펙’ 전형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취업준비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오랜 기간 스펙을 쌓아 취업시장에 나온 지방대학생들의 원성이 크다.

학력, 학점, 어학점수, 자격증, 수상경력 등의 ‘스펙’(SPEC: specification의 준말)을 보지 않는 이른바 ‘탈스펙’ 중심 채용시스템이 올해부터 일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시범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직무와 상관없는 스펙전쟁을 없애고자 NCS(직무능력표준)라는 직무능력 중심의 새로운 채용시스템을 공공기관에 도입했다. 서류전형에 스펙 기재란을 대폭 줄이고, 자기소개서에는 직무경력과 경험 중심의 항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일부 지방대 취업준비생들은 “아직도 학벌 기재란은 대부분 존재한다”며 “우리한테는 스펙이 학벌을 뛰어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반발했다. 동아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3) 씨는 “기존 스펙 채용에 맞춰 남들 놀 때 열심히 스펙을 쌓았다. 근데 이게 쓸모없어지면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지난 7월 부산시 부산진구에서 열린 NCS기반 능력중심 채용관련 상설교육 설명회에서 한 취업준비생이 “직무경험은 없는데 그럼 지금까지 쌓아온 스펙은 어떡하나요?”라고 설명회 담당자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이 담당자는 “어차피 지금 취업준비생들이 학생과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너무 염려마라”며 “직무 관련 동아리 활동 또는 수업 관련 경험도 괜찮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부산시 북구 화명동에 사는 취업준비생 오창윤(26) 씨는 “솔직히 대학에 직무 관련 동아리가 어디 있냐?”며 “주로 동아리에서는 취미 생활을 하는데, 동아리마저 취업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 지난 9월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ㆍ울산ㆍ경남지역 일자리박람회(사진 : 벡스코 블로그)

현재 하반기 채용에 공공기관 뿐 아니라 대기업도 탈스펙 채용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삼성은 올 하반기 채용부터 ‘직무 적합성 평가’라는 새로운 평가양식을 내놓았다. 이는 전공과목 이수 내역, 활동 경험, 에세이 등을 통해 해당 직무에 적합한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CJ그룹은 이번 하반기 채용부터 지원 자격에 외국어 능력을 없앴다. 롯데그룹도 올 상반기부터 특정 직무를 제외하고는 외국어, 자격증, 활동경험 등 직무능력과 무관한 항목은 평가에서 제외했다.

이처럼 탈스펙 채용 추세가 확산되면서 오랜 기간 스펙을 쌓아 취업시장에 나온 취업준비생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탈스펙 채용에서 중시하는 직무 경험이라는 또 다른 스펙을 쌓아야하기 때문이다. 경성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6) 씨는 “직무경험을 쌓으려고 인턴에 지원 중인데, 서류에서 계속 떨어진다”며 “아무래도 직무 관련 경험을 더 쌓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은 ‘탈스펙’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다. 부산시 동래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신모(26) 씨는 “탈스펙 채용이 진짜 탈스펙 채용인지 의심스럽다”며 “확실하지 않으니 스펙을 쌓지 않을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한 대학 취업진로담당 관계자는 “학생들이 직무역량을 높이려면 인턴 경험이 필요한데, 인턴도 높은 스펙이 필요한 현실”이라며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새로운 취업 환경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고 말했다.

탈스펙 채용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기업의 일부 인사담당자들도 취업준비생들의 어려움을 수긍하는 분위기다. 부산에 위치한 A공공기관의 한 담당자는 “사실 이 시스템이 경력직 채용에는 굉장히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공부하기도 바쁜데 구체적인 직무 경험을 쌓기가 사실상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B기관의 한 채용담당자도 “탈스펙 채용시스템의 도입 의도는 좋은데,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스펙 쌓기로 변질될 수 있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 6일 부산진구에서 열린 NCS기반 능력중심 채용관련 설명회(사진: 취재기자 홍승호).

이처럼 탈스펙 채용 추세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면 취업준비생들의 또 다른 스펙인 직무능력 쌓기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부산시 부산진구에서 열린 NCS 기반 능력 중심 채용관련 상설교육 설명회에서 한 담당자는 “직무관련 교육 이수시간이 많고 이수점수가 높은 게 좋은 평가 요소가 될 것”이라며 “관련 교육 이수경험이 없다면 중소기업에서 3개월이라도 직무 경력을 쌓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정태철 교수는 "의대가 의대생들의 의사 직무능력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 있는 것처럼, 장기적으로 봐서는 대학의 전공 과목이 해당 분야의 직무능력을 가르칠 수 있도록 대학 전공 교육과정이 큰 폭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학과에서는 직무능력 또는 실무 능력을 안 가르치고, 사회에서는 공채에서 직무능력을 요구한다면, 취업준비생들만 중간 끼어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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