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봄도 여전히 아프네요"...부산서도 세월호 기억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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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봄도 여전히 아프네요"...부산서도 세월호 기억문화제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9.04.1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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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장미공원서 밴드 공연, 시낭송까지...시민들 발길 북적 / 신예진 기자

“다섯 번째 봄도 여전히 아프네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봄은 지금보다 희망차고 그윽해졌으면 좋겠습니다”

16일 저녁 7시 30분 부산시 북구 화명동 장미공원에는 5년 전 4월 16일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은 저마다 촛불 하나를 들고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열린 행사는 ‘세월호 5주기 기억문화제-다섯봄, 기억이 저항이다’. 주최 측인 북구제단체연석회의는 지난 2015년부터 매년 이곳에서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문화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메인 행사 외에 다양한 즐길 거리가 이목을 끌었다. 세월호 노란 리본을 무료 배포하는 부스, 캘리그라피를 활용해 나무 액자를 만들어주는 부스 등은 시민들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했다. 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부부, 강아지를 품에 안은 아주머니, 막 퇴근한 기색이 역력한 양복을 입은 남성 등이 부스 앞에 줄을 섰다.

16일 부산시 북구 화명동 장미공원에서 열린 '세월호 5주기 기억문화제'에서 한 캘리그라피 작가가 시민들을 위한 캘리그라피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신예진).

이날 행사는 만덕고 밴드부 ‘악바리’의 노래로 시작했다. 네 명의 남·여학생은 정인의 <오르막길>을 열창했다. 잠깐 노래가 중단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당황한 기색인 학생들에게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로 응원을 보냈다. 준비한 노래를 완창한 학생들은 다소 상기된 얼굴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악바리 리더 정지원(18, 부산시 북구) 군은 “매년 4월 16일 학교에서 세월호 추모 공연을 해왔다. 올해는 주최 측의 초청으로 더 큰 추모 행사인 문화제에 참여하게 됐다. 우리 노래를 듣는 모두가 세월호 참사로 받은 상처를 치유하되 참사를 잊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시 낭송가 조현미 씨의 시 낭송 무대가 진행됐다. 조 씨는 도종환 시인의 화인을 낭송했다. 화인은 도 시인의 세월호 추모 시로 시집 <우리가 모두 세월호였다>에 실려 있다. 조 씨가 담담하게 시를 읊어 나가자 행사장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일부 시민은 눈을 감고 경청했고, 양반다리로 앉은 한 중년 남성은 조 씨의 목소리에 맞춰 시를 함께 읊조렸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 <화인> 중 일부

16일 부산시 북구 화명동 장미공원에서 열린 '세월호 5주기 기억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신예진).

세월호 사고를 압축한 영상을 시청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무대 옆에 설치된 큰 스크린에서는 세월호 탑승객들이 119에 구조를 요청하는 영상, 일부 언론의 ‘전원구조’ 오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 등이 차례대로 재생됐다. 영상 재생 1~2분 정도 흘렀을까.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한 중년여성은 뒤돌아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았고, 일부는 차마 보지 못하겠는 듯 고개를 떨궜다.

아이씨 밴드와 산하 밴드의 공연으로 행사는 무르익었다. 아이씨 밴드는 위로송 <괜찮아> 등을 준비해 다친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아이씨 밴드의 리드에 시민들은 손을 양옆으로 흔들며 노래 한 구절인 “그대, 그래 이제 괜찮아 괜찮다”를 합창했다. 노래를 부르자 감정이 차올랐는지 눈시울이 붉어진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행사장 한쪽의 화신중 2학년 여학생 4명은 촛불을 들고 ‘인증샷’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행사장 인근 학원에 다니는 이들은 요란한 소리를 따라 문화제에 방문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당시 이들의 나이는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다. 한 학생은 흥분한 목소리로 “세월호 당연히 기억나죠. 배가 기울어서 바다에 잠기는 모습을 뉴스에서 봤어요. 유가족 욕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화나요. 정말 천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16일 부산시 북구 화명동 장미공원에서 열린 '세월호 5주기 기억문화제'에 참석한 화신중학교 여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신예진).

직장인 손안나(30, 부산시 북구) 씨는 퇴근길에 우연히 문화제에 들렀다. 그는 행사장 뒤편에서 먹먹한 표정으로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 손 씨는 “세월호 영상을 보니 5년 전의 그 날이 계속 생각났다.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느꼈던 상실감과 분노가 내 마음 한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지면 좋을 텐데...”라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매주 목요일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작가 송태원 씨 역시 ‘진상규명 및 관련자 처벌’을 강조했다. 행사를 지켜보던 송 씨는 “처벌받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파출소장급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책임지고, 비정규직 선장이 감옥 가는 것을 보고 한탄했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조사받고, 반드시 처벌을 받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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