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출연의 가벼움과 직업적 소신의 당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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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출연의 가벼움과 직업적 소신의 당당함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5.10.05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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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자인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동요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이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로 이어지는 이 국민 동요를 쓴 분은 순수한 동심을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작사자의 선의(善意)와는 달리, 아이들이 TV에 나가는 게 꿈이라고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은 보통 사람이 될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자칫 연예인을 직업으로 삼으라고 부추기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 동요 때문만은 아니지만, 요즘 청소년들 중에는 연예인 지망생이 많다. 그래서 K-pop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이돌 가수들의 율동은 왠지 TV를 의식하고 만든 상품처럼 의도적으로 기획되고 빚어진 듯하다. 그들은 대중의 TV 눈요기에 영합해서 한시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길어야 20대를 넘기지 못할 것 같은 TV적 격렬한 춤동작에 기반을 둔 아이돌 스타들은 90세가 넘은 송해 씨를 비롯해서, 80세가 넘은 관록의 연기자 이순재 씨, 70세가 넘은 불후의 가수 이미자 씨와 같이 생명력 긴 연예인은 되지 못한다. 치고 빠지는 전략을 가진 연예인들에게는 직업적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70이 넘어도 격렬하게 춤을 추는 미국의 디바, 티나 터너도 있고, 60이 다 돼도 에너지가 넘치는 국내 가수 인순이도 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예인이란 TV 출연이 곧 그들 직업 활동이다. 배우든, 가수든, 개그맨이든, 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연예인을 일컫는 ‘예능인’이든, 그들은 TV에 나와야 이름을 알리고, 인지도가 높아지고, 인기가 올라가고, 출연료가 높아지고, 광고모델 제의가 들어오고, 그래야 스타가 되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TV 출연에 목을 매고, 그래서 기획사와 계약하거나 TV 출연 스케줄을 관리해줄 매니저를 고용하는 것은 그들 직업 속성상 이해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연예인도 아니면서 연예인처럼 TV 출연을 열망하는 직업군들이 우리 사회에 꽤나 많다. 정치인들이 그중 하나다. 정치인들은 대표적인 TV 바라기들이다. 그들이 TV에 얼굴을 많이 내비치면, 연예인 세계와 유사하게 그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와 인기가 올라간다. 그래서 요즘 한창 뜨거운 감자인 ‘오픈 프라이머리’나 ‘안심번호’ 문제는 결국 TV를 통해서 유권자들의 눈에 이미 익숙한 정치인들과 그렇지 못한 정치인들 간의 기싸움이다.

미국에선 오래 됐고, 국내에선 한 20년 정도 된 얘기지만, 정치인들도 화장하고, 의상 코디를 받으며, 공보비서를 둔다. 공보비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가 ‘스핀 닥터(spin doctor)’다. 스핀은 돌리고 비튼다는 뜻이므로, 공보비서는 자기가 모시는 정치인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여론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아무 TV에서도 불러주지 않을 경우, 정치인들은 TV 카메라가 스스로 자신에게 찾아오게 하는 마술을 부린다. 이게 그 유명한 ‘언론 플레이,’ ‘미디어 이벤트,’ 혹은 ‘photo-op(포토 오프: photo opportunity의 준말로 사진에 찍힐 기회를 노려 연출된 행동을 하는 것)’라는 것이다. 그만큼 TV가 정치를 좌우한다. 정치인의 능력은 그 다음 어디쯤에 있다.

요즘 TV에서는 요리사들이 바쁘다. 그중 한 요리사는 거의 요식업계를 평정한 듯하다. 소위 ‘쿡방 열풍(<시빅뉴스> 2015년 9월 21일자 보도)’에 따라서, 셰프라는 사람들은 TV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그 인지도를 바탕으로 각종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오픈한다. TV에서 많이 뜨는 자가 최고 요리사다. 변호사들도 TV 출연 대열에 끼었고, 의사들도 TV를 곁눈질한다. 모두들 TV 출연이 주는 인지도와 지위라는 프리미엄을 공통적으로 자신들 직업 수행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종편방송이 생기자, 이런 현상은 점입가경이다. 어찌 보면, TV 출연이 사람의 능력을 공인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미디어 학자들은 TV의 ‘지위 부여 기능’이라고 부른다. TV가 성공, 영향력, 능력의 척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명량>, <사도> 같은 시대극의 역사적 배경 설명으로 한국사 스타강사가 된 사람도 있고, 도올 선생 같은 학자들은 논어나 노자의 TV 강의를 통해서 유명인이 됐다. 과학자들 중에도 제법 TV에 겹치기 출연하는 분들이 보이고, 시민운동가들도 TV 출연에 신경을 쓴다. 진보든 보수든, 사람들에게 자기들 생각과 얼굴을 많이 알리는 수단이 TV이기 때문이다. TV 출연이 계속되다 보면, 누구든 명사(celebrity) 대열에 끼게 되고, 그게 입각이나 국회 노크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TV가 밥줄임에도 연예인들 중에는 TV 출연을 골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1950년대의 미국 코미디언 중, 재키 글리슨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TV에 많이 출연하면 명성을 빨리 얻지만, 동시에 대중이 빨리 싫증낸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정기적인 프로그램에는 출연하지 않았고,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만 TV에 출연함으로써, 그의 이미지를 아꼈다고 한다. <아침이슬>의 작곡자 김민기 씨는 단 한 번도 TV에 나선 적이 없다. 글리슨이나 김민기, 그들이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행동에서 TV와 대중문화의 생리를 꽤 뚫는 직업적 혜안이 엿보인다.

오드리 햅번은 영화 출연보다는 아프리카 기아를 돕는 데 더 헌신했고, 스턴트맨을 고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고난도 액션을 몸소 연기했던 성룡은 눈속임 보여주기를 거부한 진정한 직업 배우다. 국내에서는 30년 동안 한 개 회사 광고 모델만 했던 김혜자 씨도 대단한 직업적 외골수다. 최근 주로 교양 프로그램만 출연하고 있는 최불암 씨도 연예인이란 직업에 대해 사뭇 다른 안목을 지닌 분으로 보인다.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학자든, 요리사든, TV에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자기 직업의 가치를 TV에서 찾고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이런 일을 겪었다. 누나가 나에게 돈을 주면서 고장 난 야외전축을 고쳐오라는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었다. 누나는 “달라는 대로 다 주지 말고, 적당히 깎아”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당시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요즘처럼 서비스 센터가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라디오방,’ 혹은 ‘전파상’이라 불리면서 가전제품을 팔고 고쳐주는 가게를 찾았다. 당시 내가 찾아간 우리 동네 전파상 주인은 누나의 야외전축 고장 난 곳을 점검하더니 얼마를 내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얼마 깎아 달라고 누나가 시킨 대로 말을 했을 뿐인데, 그 전파상 주인은 정색을 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호통을 쳤다. “내가 제시한 대로 돈을 주면, 최선을 다해서 고쳐 주겠지만, 돈을 깎으면, 나는 그 액수만큼만 고쳐주겠다”고 말이다. 나는 더 이상 끽 소리 못하고 잠시 수리를 기다렸다가, 요구한 돈을 다 주고, 고쳐진 야외전축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도시 변두리에서 작은 전파상을 하던 그 아저씨의 현재 모습이 궁금했다. 그날 그 아저씨가 보여준 직업인으로서의 도도함이 훗날 그 아저씨의 인생에 어떻게 작용했을지 못내 궁금했지만, 그분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그 아저씨의 가전제품 수리와 그 대가에 대한 ‘의외의 기개(氣槪)’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 아저씨는 사람은 직업의 귀천이나 지위 고하와 상관없이 자기 직업에 대한 확고한 가치와 신념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내게 일깨워줬다.

사실 나도 30대 후반과 40대 초반 사이에 지방 TV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1년 가까이 TV에 출연한 적이 있다. 출연제의가 왔을 때, 나는 “내가 이걸로 유명해지는 건 아닌가?”하는 공명심(功名心)이 당시에 순간적으로 일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 1년 간 매주 한 시간짜리 TV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사회자로 TV에 나왔다! 어느 날부터 TV에 등장하기 시작한 나를 보고, 아는 교수들과 학생들이 다들 한마디씩 했다. 그들은 “어제, TV에서 교수님 봤어요,” “잘 하시던데요?” “TV에 얼굴 정말 잘 받아요” 등등의 인사말을 건넸다. 자주 다니던 식당에 가니, 전에는 내 얼굴은 알아도 이름이나 직업은 몰랐던 종업원과 주인이 “교수님, 어서 오세요. 어제 TV에 나오셨죠?” 하면서 아는 척했고 서비스를 주기도 했다. 만인이 알아보는 전국구 인기스타는 아니었어도, 당시 제법 내 주위에서 나는 일종의 유명인사가 됐고, 그 기분은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방송 자체는 날이 갈수록 쉬워졌으나,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잠기면 어쩌나, 종기나 눈병이라도 나서 얼굴이 퉁퉁 부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늘 노심초사해야했다. 출연하는 날마다 양복은 무엇을 입나, 넥타이는 무슨 색을 매나 하는 고민도 생겼다. 녹화 전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발라야 하는 분장은 정말 역겨웠다. 이게 교수가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TV 출연은 온갖 치장을 다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요즘 TV에 자주 나서는 인사들의 ‘정성’은 알아 줘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아줌마가 “아저씨, 국회의원에 출마할 건가 봐요?”라는 말을 하더라고 아내가 말을 전했다. 다른 어느 날에는 녹화를 끝내고 나오는데, 그날 게스트였던 당시 중앙의 중진 정치인이 “정 동지(정말 그는 나를 이렇게 불렀다. 아마 이는 정치인들이 ‘비장함’을 나타내는 은어 같기도 했다)”라고 부르며 내손을 꽉 잡더니 “나와 같이 정치를 해보지 않겠오?”라고 은밀하게 스카웃을 제안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 말을 듣고 기절초풍한 나머지, 그 즉시 담당 PD에게 대체할 사람이 구해질 때까지만 하겠다고 사의를 표했다. 정치는 전혀 내 사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속히 안 나타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TV 출연 기회를 잡으려는 정치 지망생들이 내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나보다. 사의를 표명한 바로 다음날, 담당 PD가 대체 사회자를 구했다면서 그동안 고생했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내 후임자는 당시는 교수였지만, 지금은 정치인이 됐다.

방송 출연이란 나의 외도는 신방과 교수로서 흥미로운 경험이었지만, 잠시나마 교육자로서의 평상심을 잃었다는 점에서 제자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그때 미련 없이 TV 출연을 그만 둔 것은 두고두고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직업은 명성이 아니라 인성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요즘 왜 자기가 그 직업, 그 자리에 종사하는지 잊거나, 그릇된 영혼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TV에서 이름 알리기에 열중인 사람들은 인기는 허무하고 뒤끝이 안 좋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TV는 남에게 비추이는 자신의 외면이다. 사람의 본질과 TV 이미지는 다르다. TV 출연자는 카메라 앞에서는 ‘쇼’를 해야 한다. 그 사이에 TV는 출연자의 영혼을 갉아 먹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판단력을 홀린다. 비록 작은 가게에서 고장 난 라디오를 고치던 수선공이었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소신과 자존심이 넘쳤던 그 전파상 아저씨의 당당함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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