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 점 봐주던 영도다리 점집,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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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 점 봐주던 영도다리 점집, 역사 속으로...
  • 취재기자 성민선
  • 승인 2015.10.05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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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 점바치 골목, 철거 위기...새 단장해서 유지하자는 의견도

 “니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왔다.”이 말은 부산 사람이라면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우스갯소리이다.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윽박지르면서 하던 말이 하필이면 왜 영도다리에서 주워온 아이일까? 아마도 영도다리가 부산의 대표 건축물, 요샛말로 랜드마크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국전쟁 중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남행 피난 행렬 속에서“나중에 부산 영도다리 밑에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한 피난민들에게 영도다리는 절실한 희망의 장소였다. 다른 지역 피난민들도 부산에 영도다리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아니 부산에서 알 수 있던 대표적 건축물은 영도다리밖에 없었다. 영도다리는 1934년 일제 강점기 시대에 도개식 다리로 건설되었는데 준공식에 다리가 들어 올라가는 장관을 보기 위해 수만의 인파가 전국에서 몰렸을 만큼 영도다리는 전국적 유명인사였다.

피난 중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러 부산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영도다리 밑에서 하염없이 가족과 애인을 기다렸다. 그들은 영도다리 난간과 외벽에 사람을 찾는다는 편지와 전단지를 써서 빼곡히 붙혀 놓았지만, 가족의 소식을 듣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들은 애타는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사람 찾는데 용하다는 다리 밑 점집 문을 두드렸고, 점쟁이들은 이산가족들의 생사를 점치며 그들을 위로했다. 다리 밑 골목은 자연스레 용하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약 50곳의 점집이 모였다. 사람들은 ‘점’이라는 단어에 기술자를 뜻하는 ‘바치’를 합쳐 점바치 골목으로 불렀다.

그 후 흐르는 세월 속에 점쟁이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거나,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2015년 최근까지 ‘목화 철학관’과 배남식(84) 씨가 운영하는 ‘소문난 대구 점집,’김순득(85) 씨가 운영하는 ‘장미화점집’이 세 곳만이 점바치 골목의 명맥을 잇고 있다.

▲ 점바치 골목의 철거 공사현장. 점바치 골목의 건물들은 점집만 남긴 채 모두 철거됐으며, 새로운 건물 신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성민선).

애환 서린 점바치 골목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세 곳의 점집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낡은 목조판자 형태의 외관으로 보아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2013년 11월 27일 영도대교 도개 기능이 복원된 후 영도대교 도개 모습을 가장 잘 관람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점바치 골목 일대로, 여기에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부산 중구청은 이곳을 정비할 필요성을 갖게 됐다. 현재 중구청은 자갈치 연안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점바치 골목 바로 앞에 대형 전광판과 조형물, 포토존 등을 설치해 현대 친수공원을 조성했다. 그래서 점바치 골목은 낡고 허름한 점집 건물만 남았고, 그 주위는 신식 건물로 채워져 대비되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 남아있는 점집의 낡은 외벽이 판넬로 둘러 싸여 가려져 있다(사진: 취재기자 성민선).

현재 남아있는 점집은 지난주부터 외벽에 판넬을 둘러놓아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영도대교 한 상가의 식당 주인은“점집에 있던 점쟁이들은 퇴거당한 후 다른 곳으로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가끔 점쟁이 한 명만 날씨 좋은 날에 점치러 나온다”고 말했다. 목화 철학관의 점쟁이 할머니는 “점집이 철거된다고 들었다. 철거 후 새 건물이 생기면 건물주로부터 방을 다시 받기로 했는데 반년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 어떤 건물이 생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앞으로 점바치 골목 일대는 현재 신축 예정인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서면서 더욱 현대화된다. 따라서 남아있는 점집이 앞으로도 보존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남아있는 점집의 번지수는 남포동 1가 79-2번지인데, 해당 건물의 왼편으로 나란히 존재했던 79-3번지, 78-1번지, 78-3번지, 77-2번지, 77-3번지 총 다섯 필지의 건물 중 79-3, 78-1번지를 제외한 나머지 세 필지 지 건물은 모두 철거신고 돼 근린생활시설 신축이 이뤄지고 있다. 중구청 창조도시국 건축과 관계자는 내년 6월 공사완료 예정인 이 신축 건물은 지상 7층 연면적 659.8제곱미터의 건물이며, 관광객들의 휴게용도로 쓰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남아있는 79-2번지 점집에 대해서는 철거신고나 건축 허가 신청이 접수되지 않았으며, 이 건물에 대해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 해당 건물이 워낙 노후화된 탓에 현재 상태로는 영업할 수 없어서 외벽에 판넬을 둘러놓은 것 같다”고 덧붙혔다.

옛 풍경을 잃고 사라져 가는 점바치 골목에 대해 주변 주민들의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영도대교 옆 빌딩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오랜 세월을 영도대교와 함께한 한모(73,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씨는 50년 전 점바치 골목을 생생히 기억한다. 한 씨는“옛날에는 점바치 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세월 타령하다가 점 보는 사람이 많았다”며“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점 본 후 가족을 되찾은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그만큼 점바치 골목은 애환이 깊은 곳인데 점점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니 씁쓸하다”고 덧붙혔다.

30년 전 채소 장사를 하러 매일 점바치 골목길을 지나갔던 이두리(83,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씨는 관광 위주의 개발이 거듭되는 영도대교 부근에 대해 애석함을 느낀다. 그는“옛날 점바치 골목 특유의 풍경과 맛이 사라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점바치 골목 정비작업에 대해서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산 중앙동에 거주하는 김원태(67) 씨는 남아있는 점집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신축한 뒤 다시 점쟁이들을 거주시키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는“시대가 바뀌는 만큼 낡은 점집 건물도 새 단장이 필요하다”며“점집 건물이 없어졌다고 해서 점쟁이들의 점술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깨끗하게 점집을 정비한 뒤 점쟁이들을 다시 들여보내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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