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법 만화 번역자였다"...국내 최대 불법만화 사이트 '마루마루' 번역자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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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법 만화 번역자였다"...국내 최대 불법만화 사이트 '마루마루' 번역자 참회
  • 취재기자 임상영
  • 승인 2019.04.06 16: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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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물로 청소년 유혹, 막대한 이익"... 저작권 위반 깨닫고 중단, 시빅뉴스에 토로 / 임상영 기자

최근 정부는 ‘불법 도박 사이트’, ‘불법 성인 사이트’, 그리고 ‘불법 만화 사이트’ 등 각종 불법 사이트들을 강제로 차단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중에는 ‘마루마루’ 등 일본 만화를 저작권도 지불하지 않고 불법 번역해서 올리며 이를 기반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는 사이트들도 있었다.

김길동(가명, 24, 부산시) 씨는 한 때 국내 최대 불법만화 사이트였던 ‘마루마루’에서 일본 만화 번역자로 일했던 적이 있다. 김 씨는 별 죄의식 없이 취미삼아 했던 일이었지만 이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됐는지 그 내막을 시빅뉴스에 털어놨다.

현재 마루마루는 폐쇄된 상태이며,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이런 메시지만 뜬다(사진: 마루마루 홈페이지)

김 씨는 일본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형을 두고 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형의 영향으로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자주 접하게 됐다. 그 내용을 알고 싶었던 김 씨는 일본어 교재를 놓고 ‘독하게’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로 배우는 일본어가 효과적이었는지, 어린 나이 때부터 외국어를 배운 덕인지, 2년이 지나니 일본어 실력이 수준급으로 급성장했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자주 보니 자연스럽게 일어 실력이 늘었다. 역시 외국어는 어릴 때 배워야 하나보다. 일본 만화책을 자유자재로 읽고 싶다는 욕심도 강했다. 그랬더니 2년 만에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변역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고 말했다.

김 씨가 처음 번역을 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김 씨는 자주 들르던 만화 블로그에서 일본어 만화 번역자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고 지원했다. 김 씨는 “블로그에 올리는 만화여서 생활일어 수준이면 변역이 가능했고 전문적인 수준의 일본어 실력은 필요 없었다. 무엇보다도 번역일을 하면서 일본어 실력을 올리고 싶은 생각에 만화 번역자 일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전혀 몰랐지만, 그게 바로 마루마루라는 불법 만화 블로그였다. 원래 마루마루는 작은 블로그로 시작해서 거대 불법 만화 사이트로 발전했던 것이다. 마루마루는 번역자들을 위한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자료를 공유하면서 번역일을 시켰다. 번역자들은 만화를 편집하는 사람(이를 ‘식자’라 한다)과 한 팀을 이루어서 작업한다. 그리고 변역자들은 액션 담당, 드라마 담당, SF 담당 등 장르별로 담당 번역자가 있었다. 먼저 운영자가 번역할 만화를 올리면 장르별 담당자들이 돌아가면서 번역자를 정한다. 책임을 맡은 번역자가 번역을 끝내면 이를 만화를 편집하는 식자에게 넘기고, 식자가 편집해서 운영자에게 만화를 보내면, 최종적으로 운영자가 사이트에 올리는 것으로 작업이 마무리된다.

처음 블로그로 시작한 마루마루는 광고도 없는 작은 블로그였다고 한다. 하지만 2013년쯤에 인터넷에 불법 사이트를 개설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회원 모집도 하고 광고도 받았으며, 올리는 만화의 개수도 점점 늘렸다.

김 씨는 마루마루가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게 엄청난 돈을 번다는 생각은 못했다. 김 씨는 “홈페이지에 광고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기껏해야 만화 원작을 사는 정도의 돈을 벌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마루마루 운영자는 광고비로만 약 12억 원가량을 벌었다. 그러면 번역자로 일했던 김 씨는 얼마를 받았을까? 김 씨는 “나는 번역일 하면서 돈을 받은 일이 없다. 잡지 부록 몇 개 받은 게 다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마루마루 운영자의 구속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들었다. 그는 “카톡방에서 운영자가 갑자기 ‘잠수탑니다’라고 말하고 홈페이지를 패쇄시켰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는데, 뉴스를 보고 전모를 알게됐다”고 말했다.

시빅뉴스와 인터뷰하는 김 씨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임상영)

김 씨는 마루마루 사이트가 폐쇄된 이후로는 일본 만화 번역일을 일체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맘이 생기지 않는다. 김 씨는 “처음에 취미로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인터넷만 뒤져봐도 번역된 만화가 많고 해서 누구나 일본어 실력만 있으면 번역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불법 번역이 저작권 침해고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오랜 기간 동안 불법 만화 사이트에 관여한 사람으로서, 불법 만화 사이트의 문제는 음란 만화가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이트에 올리는 만화 중에 인기 순위가 높은 만화는 성인 만화다. 하지만 창소년들이 마루마루에 들어가는 데 아무 제약이 없다. 마루마루 사이트는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음란 만화를 접하게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나도 고등학교 때 마루마루 블로그에서 성인만화를 처음 보고 만화에 흥미를 가졌다”며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또한 김 씨는 불법 만화 사이트가 저작권을 위배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김 씨는 “불법 만화 번역물이 저작권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오리지널 작가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일본 만화를 우리나라로 정식 수입해오는 회사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불법 만화 사이트는 쉽게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라고도 했다. 김 씨는 정부에서 불법 사이트를 차단하면 단속이 완료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불법 사이트들이 도메인을 수시로 변경해 가면서 정부의 차단을 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씨는 마루마루가 ‘망가우마루(mangaumaru.com)’ → ‘셴코믹스(shencomics.com)’ → ‘윤코믹스(yuncomics.com)’ → ‘와사비시럽(wasabisyrup.com)’ 등으로 도메인을 변경하면서 규제를 피했다고 증언했다.

지금도 불법 만화 사이트들은 단속을 피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김 씨는 주장한다. 김 씨는 불법 사이트의 출현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은 소비자들이 이런 사이트 이용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불법 사이트들은 광고비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접속 자체를 하지 않으면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폐쇄되게 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불법 만화 사이트 중 하나(사진: 해당 사이트 캡처)

김 씨는 자신에게는 취미생활인데 이런 번역일이 결과적으로 법에 저촉되는 일인지 나중에 깨달았다고 했다. 김 씨는 “앞으로는 번역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이제는 저작권을 지켜 합법적인 번역일만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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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04-08 12:44:12
사회적으로 지탄받지는 않지않나?
솔직하게 말해서 지탄받는건 일부업계의 지탄을 받는거지
사회적 지탄은 거짓말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