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리단길 ‘살롱 마스터’, 관객-연주자 어울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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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리단길 ‘살롱 마스터’, 관객-연주자 어울림 속으로
  • 취재기자 박주영
  • 승인 2019.04.02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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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가 만난 사람]바이올리니스트 윤보영의 삶과 꿈 / 박주영 기자
바이올리니스트 윤보영 씨가 살롱 샤콘느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사진: 윤보영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살롱 샤콘느의 살롱 마스터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윤보영입니다.”

서울예술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윤보영(35) 씨는 스스로를 ‘살롱 샤콘느(salon chaconne)’의 ‘샬롱 마스터(salon master)’라 소개한다. 부산 해운대의 핫 플레이스 해리단길의 한 골목엔 저녁 8시면 음악소리가 울려퍼진다. 음악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보라색 외벽의 작은 카페가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윤보영 씨가 운영하는 샬롱 샤콘느다.

‘인생 제2막’, 살롱 샤콘느에서 열다

살롱 샤콘느는 각종 악기들로 가득하다.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벽면에는 수십 개의 바이올린이 걸려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샬롱 샤콘느의 ‘샤콘느(chaconne)’는 바이올린 연주곡으로 유명하다. 샤콘느는 클래식 장르 중의 하나다. 4마디나 8마디의 짧은 테마를 반복하여 연주하는 곡으로, 8마디를 이용해 다양한 변주를 이끌어낸다. ‘8마디의 짧은 테마’에서 ‘15분에 이르는 길이가 긴 곡’으로 확대되는 곡이 바로 ‘샤콘느’다. 윤보영 씨는 “이 공간에는 제가 좋아하는 악기인 바이올린과 좋아하는 색들로 가득하다”며 “저의 짧은 테마가 많은 아티스트들과 카페를 찾은 고객, 연주를 보러 오는 관객의 변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샤콘느’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한다.

윤보영 씨는 원래 서울에서 활동하던 재능 있는 아티스트였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해리단길을 찾아 살롱 샤콘느를 차렸다.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자에서 살롱 안방마님으로, 인생 제2막을 시작한 것이다.

살롱 샤콘느는 부산에서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지원했고, 지난 3월 지원대상으로 뽑혔다 .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윤보영 씨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살롱 샤콘느, 평소에는 카페로 운영하고, 일주일에 4번 연주회를 연다. 연주 전후로 판매한 카페 수익금은 연주자와 나눈다. 카페의 메뉴에는 ‘아티스트 커피’라는 커피가 있다. 아티스트 커피는 연주회를 찾은 손님들이 아티스트를 후원할 수 있는 메뉴다.

살롱 샤콘느를 찾는 연주자들은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부터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인까지 다양하다. 윤보영 씨는 “공연을 찾아와주시는 분들 중에 문화예술을 전공하거나 즐기시는 분들이 많다”며 “원래 ‘살롱’이라는 공간이 즐겁게 술을 마시고 얘기하면서 문화를 교류하는 공간”이라고 덧붙인다. 그런 인연 끝에, 수많은 아티스트와의 협연했고 다양한 연주로 카페를 채워온 것이다.

윤보영 씨는 어릴 적 윗집에 살던 바이올린 선생님의 ‘바이올린 소리’에 매력을 느꼈다.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 윗집에 레슨을 받으러 온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저마다 엄마손을 꼭 잡고, 예쁜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윤보영 씨는 “레슨 받으러 오는 언니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어린 생각에 ‘나도 바이올린을 하면 저 언니들처럼 예뻐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회상한다.

PRESS 지가 연합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한 윤보영 씨를 보도한 지면이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윤보영 씨는 유년시절을 뉴질랜드에서 보냈다. 그녀는 뉴질랜드에서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쥐었다. 막연히 악기 하나쯤은 다뤄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바이올린에 흥미를 느끼던 찰나, 뉴질랜드에 전국적인 페스티벌이 열렸다. 윤보영 씨는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비슷한 연령대의 어린 학생들 중 음악을 잘하는 친구들을 모아 연합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며 “운 좋게 연합 오케스트라에서 한국인 최초로 악장을 하고, 협연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녀는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윤보영 씨의 부모는 그녀에게 세 가지 선택지를 줬다. 외국인학교, 외국어고, 예술고 중 어디에 갈 것인가?. 윤보영 씨는 “어린 생각에 예술고를 가면 공부를 덜 해도 될 것 같아, 서울예고에 진학했다”고 설명했다.

아티스트에게 자유롭게 자기 표현할 공간, 관객에겐 음악 피부로 느낄 공간 만들 터

윤보영 씨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제1 바이올린 단원으로 연주를 펼쳤다(사진 : 취재기자 박주영).

그는 서울예술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기악과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도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2008년부터 예술의 전당 상주 오케스트라인 ‘코리안 심포니’에서 ‘제1 바이올린 단원’으로 10년간 활동했다. 윤보영 씨는 “저희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경우 1년에 평균 100회의 연주를 한다”며 “그래서 정말 다양한 레퍼토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들과 연주할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소프라노 조수미 씨와 전국투어를 갔을 때를 떠올렸다. 전국 투어 중에 부산에서 연주를 할 기회가 있었다. 연주가 끝나면 기립박수와 환호성이 가득했다. 부산은 달랐다. 똑같은 프로그램을 연주했는데 앙코르가 안 나왔던 것이다. 윤보영 씨는 “‘우리가 연주를 잘 못했나’ 무거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대기실에 관객분들이 가져다주신 빵, 김밥, 자양강장제 같은 각종 먹거리들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부산 분들이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하시지만 마음이 정말 따뜻하신 분들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샬롱 샤콘느의 한 쪽 벽면에 꽂혀있는수백 장의 CD와 악보. 윤보영 씨가 개인 소장하는 CD와 공간을 찾은 손님들의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2018년, 그는 코리안 심포니의 단원으로서의 연주를 마쳤다. 그는 연주자로 살아가면서 갈증을 많이 느꼈다. 연주자로서 생각보다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금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연주하기 위해 큰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관객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연주자들과 멀리 떨어져 그들의 연주를 들어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윤보영 씨는 서울에 있었을 때 우연한 기회로 홍대 지하 클럽에서 연주를 한 적이 있었다. 관객과 소통하는 그 작은 공간은 윤보영 씨의 마음을 흔들었다. 윤보영 씨는 “아티스트 분에게도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 관객분들에겐 음악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보영 씨와 재즈피아니스트 변지혜 씨가 합주하고 있다. 항상 연주회를 찾은 손님들로 북적인다(사진: 취재기자 박주영).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윤보영 씨.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는가?’,‘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고민을 매일 하고 있다. 그녀도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녀는 살롱 샤콘느를 찾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는 “간단한 커피 한 잔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향기와 음악을 느끼면서,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서 여러분들의 많은 변주가 함께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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