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의 장막을 걷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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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장막을 걷어라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19.04.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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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차용범

민주정치의 모범국가 미국에 ‘선샤인 액트’라는 법이 있다. 그저 쓰기 편하게 ‘햇볕법’이다. 이 법은 일조권쯤을 다루는 환경관계법이 아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공개행정을 촉진하는 법률이다. 이 법의 공식이름 ‘Government in the Sunshine Act’, 곧 ‘햇볕속의 정부 법’ 정도로 보면 그 뜻은 보다 명확하다. ‘선샤인’은커녕 ‘글루미’(gloomy, 음울한)에 가까운 우리의 감각으로 보면, 저쪽의 행정에 아직 더 공개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아니, 균형의 정도를 넘는 의회의 견제가 건재하고 행정에의 시민참여가 활발한 미국에서도 공개행정을 촉진하는 입법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무리 밝고 맑은 공개행정이라 할지라도 더 공개되어야 할 영역은 남기 마련이다. 이게 이 법의 본뜻이다. 그래서, 이 법은 공공기관의 회의도 미리 공표된 시간과 장소에서 열고, 또 공공의 참석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의 경우엔 언론만이라도 지켜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모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라는 그 명확한 전제를 강조하는 취지다.

우리 정치·행정, 여전히 ‘음울한 장막’ 즐겨

‘열린 정부’ ‘열린 행정’을 찾는 기류는 이미 온 세계의 거대한 흐름이다. 우리가 추구해 온 민주주의 역시 필경 개방의 요구를 재촉한다. 민주주의 자체가 비밀주의와는 더불어 숨 쉴 수 없는 생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또, 그 비밀주의는 국민에겐 불신과 두려움을 심어, 행정의 부실, 사회의 퇴화를 촉진할 뿐이기도 하다.

오늘날 ‘행정의 장막’은 한마디로 후진사회의 상징이다. 오늘과 같은 고도정보화 사회에서 비밀주의로는 눈앞의 내일을 예측할 수는 없으며, 그 예측 불가능성은 국민의 불안,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정책결정 과정도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고 행정의 잘못이나 부정부패도 국민의 눈앞에 캄캄한 사회, 국민의 정책참여는 커녕 식견이나 의견을 반영할 기회도 없는 나라. 생각해 보라, 얼마나 음울하고 불안할 것인가.

우리 사회 역시 늘 ‘열린 정부’ ‘열린 행정’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우리 행정, 우리 정치는 아직 그 음울한 ‘장막’을 떨쳐내지 않고 있다. ‘밀실행정’을 넘어, ‘독재정치’라고 불러도 별 억울함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 행정·정치에 대한 불만, 불복의 잠재적 누적정도나 그 오만에 대한 사회적 문제 역시 만만찮다.

세금부담 기준? 선량 선출방식? “국민은 몰라도 돼”?

“국민은 몰라도 돼”-요즘 화제에 오른 유행어다. 그저 유행어를 넘어, 정치·행정 영역에서 퍼레이드처럼 나타나는 현상이다. 먼저, 대통령의 딸 가족의 해외 이주 얘기. 많은 국민이 그 이유를 궁금해 하고 야당이 공개질의를 해도, 청와대는 막무가내로 공개를 거부한다. “대통령 가족의 사생활 공개 요구는 정치적 금도를 벗어난 일”이란다. 대통령의 딸 가족이, 왜, 비밀리에, 외국에 나가 사나? 그건 공공의 관심사이기도, 경호 인력과 예산이 드는 행정영역의 일이기도 하다.

국토교통부의 아파트 공시가격 결정방식 역시 그러하다. 같은 동, 같은 층에, 작은 평형이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일부 언론은 공시가격 결정방법을 묻는다. 돌아온 답은 “구체적인 시세나 산정방식을 공개하기 어렵다”였다. 행정기관과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국가최고 감사기관도 비슷한 수준이다. 대통령 비서실의 업무추진비 부당사용 논란에 대한 조사결과는 그저 “문제가 없었다”이다.

정치권이라고 예외일까?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여당간사 이수혁 의원의 사례다. 한·미간의 방위비 분담금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언론 질문에 “국민이 알아서 뭐해?”라고 받아친다.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도 그랬다, 기자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산정방식을 묻자, “국민은 산식이 필요 없다”(몰라도 된다)고-. 국민이 세금을 부담하는 기준, 국민의 대표를 뽑는 방식에, “국민은 몰라도 된다”?

부산 신공항-서부산 정책 변경, ‘밀실행정’ 그대로

부산발전의 핵심과제들을 둘러싼 최근 흐름 역시 ‘선샤인 속의 공개행정’과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은 PK와 TK를 순방하며 신공항 문제에 나름의 ‘해법’을 얘기하지만, 이 ‘해법’의 핵심은 뚜렷하지 않다. 국가적·지역적 대계를 둘러싼 대형이슈에서, 언론마저 정책의 흐름·배경을 모른 채 나름의 점(?)을 치기에 바쁘다. ‘PK·TK에 각각 신공항?…상생·출구전략 해석 분분’-언론기사 제목 그대로다. 대통령이 부산에선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시사하고, 대구에선 대구공항 이전문제를 잘 살피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기사는 “PK와 TK 모두에 신공항 설립할 가능성”을 점치면서, “확대해석은 곤란하다는 지적”도 소개한다. 대통령은 신공항 문제를 두고 무엇을 말한 것인가? 이 정책의 향방은 오직 대통령 내심에만 담겨 있는 것인가?

부산시의 중요행정도 그러하다. 부산시는 기존의 ‘김해신공항’계획을 폐기,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상 그 과정에 대한 정부협의는 부실하고, 시민소통도 부족하다. 국토부와의 이견이 속출하고, 해수부와의 ‘부산 제2신항’ 사업지와 가덕신공항 사업지의 중복논란도 옮겨 붙고 있다. ‘김해 백지화’ 및 ‘신공항 건설’을 요구하는 청와대 100만 국민청원 운동은 목표의 0.5%에 미달하는 초라한 성적으로 끝났다. 자업자득이다. 부산시만 요란스러웠을 뿐, 정치권과 시민 사이의 공개·소통, 이견·알력을 외면한 탓이다.

“여전히 머나먼 동·서부산 균형발전”-한 언론 보도다. 시장이 바뀐 뒤 서부산권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다. 많은 사업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면서, 강서에 예정했던 제2컨벤션센터는 올스톱? 정부 승인까지 얻었던 2030등록엑스포 유치 후보지가 서낙동강권에서 원도심권(북항재개발지역)으로 바뀌었다? 부산의 미래를 바꿀 중요사업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무산-변경의 길을 걷는가? 부산시민이 알고 있는 그 대형 프로젝트들, 수정-보완을 넘어, 폐기-창안의 단계를 밀어붙이며 ‘공개행정’은 없다. 그저 밀실의 오만이요 독단의 불통이다.

정부·부산시, ‘행정의 장막’ 걷고 햇볕 쬐는 언덕으로

돌이켜 보면, ‘소통’과 ‘개방’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설명하는 중요 요소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약속했다, “군림·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부산시 역시 시정철학의 머리에 ‘소통·공감’을 두고 있다. ’소통‘이 뭔가? 사전적 정의 그대로,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열린 정부‘ 없이 ’소통‘이 있을 수 있나? 소통·개방 없인 불통에,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그 뜻깊은 개방-공개를 강조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반을 두루 감찰해야 한다. 그 ’밀실행정‘이 빚어내는 폐단, 행정의 독주와 불통, 때로는 부정-부패까지 막아가야 한다.

이제 우리 행정도 스스로 햇볕이 내려쬐고 바람이 부는 언덕으로 나서야 한다. 굳이 ‘열린 사회’ ‘열린 행정’을 표방하지 않더라도, 이제 그 음험하고 답답한 밀실행정으로 현대행정의 호흡을 계속할 순 없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러지 못할 까닭도 없다. 현대 정부의 행정기조들은 모두 개방과 소통에 의존하는 시대이다. 대통령부터 부산시장까지, 두루, ‘행정의 장막’을 걷고 시대의 흐름과 호흡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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