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칼럼]‘대인배 인사’를 생각한다-장관 인사 참사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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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 칼럼]‘대인배 인사’를 생각한다-장관 인사 참사를 보며
  • 대표 / 발행인 이광우
  • 승인 2019.04.0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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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발행인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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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장관 인사를 두고 온 나라가 아수라장입니다. 장관 후보자 7명 모두가 자격 시비에 휘말린 가운데,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와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낙마했습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이들도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인사 테러’ ‘인사 망사’ ‘인사 참사’ 같은 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 참혹한 말들 속에 또 하나의 말을 우겨넣는다는 사실이 마뜩잖습니다만, ‘대인배 인사’란 게 무엇인지, 인사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만큼은 기어이 한마디를 보탰으면 합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탕평책’을 펼치겠다고 했습니다. 국민은 그 말을 ‘비록 적이라 해도 나라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중용하겠다’는 뜻으로 알아들었을 것인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군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사건’을 두고도 ‘정치보복’이란 말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니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인사 검증 책임자인 조국 민정수석은 여당으로부터 인사 난맥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사람이 없다”는 대답을 내놓았다는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화가 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사람? 무슨 사람?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개중 나은 후보를 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어이’는 맷돌의 손잡이를 말하는 것으로서, 어이가 없으면 맷돌을 돌릴 수가 없는 것인데, 참으로 어이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 까닭에 한마디를 안 보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정’이란 막중한 업(業)을 수행할 사람에 대해서 만큼은, 당리당략과 소인 근성을 버리고 접근하란 조언은 동서고금에서 차고 넘칩니다. 몇 가지만 추려보겠습니다.

하나.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제(齊)나라의 순우곤은 왕에게 일곱 명의 현자를 추천했습니다. 왕이 “듣건대 천 리 안에서 한 명의 현자만 얻어도 많다고들 하는데 당신은 단숨에 일곱 명이나 추천을 했습니다. 현자가 실은 그토록 많다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순우곤은 “새는 깃털이 같은 것끼리 모여 살고, 육상 동물도 같은 발굽을 가진 것끼리 모여 사는 법입니다. 산에서 나는 약초를 물가에서 찾아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그 약초가 자라는 산에 가면 수레에 가득 싣고 올 수도 있습니다. 현자들이 노는 곳에서 현자를 찾으면 부싯돌에서 불을 얻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어찌 일곱 명을 많다고 하십니까?”

둘.

진(晉)나라의 대부 해호는 왕에게 자신의 원수를 재상으로 추천했습니다. 상대방은 해호가 자신에 대한 원한을 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해호에게 감사를 표하자 해호는 “나의 원한은 변함이 없다. 너를 추천한 것은 공적인 일이라서 그랬을 뿐이다. 네가 임무를 잘 수행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개인의 원한이 공적인 일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되는 일 아니냐?”라며 감사 인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셋.

재상 관중이 병에 걸리자 왕이 문병을 갔습니다. 왕은 관중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포숙에게 정사를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관중과 포숙은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관중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포숙이 비록 청렴하고 진실한 사람이지만,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는 교분을 쌓으려 하지 않고, 남의 잘못을 들으면 잊지 않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관중은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위로는 고집을 부려 군주의 뜻을 거스르고, 아래로는 남을 탓하여 반감을 살 것입니다.”

왕은 누가 좋을지를 물었습니다. 관중은 습붕을 천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습붕은 진리를 알고 싶어 하고 낮은 사람에게서도 배우려 합니다. 자신의 덕이 성인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가엾게 여겨 인정을 베풉니다.(…)백성에게 겸손한 태도를 취하고서도 백성의 신망을 얻지 못한 예가 없습니다. 습붕은 그래서 적임자입니다.”

세 번째 사례에서 새삼 눈여겨볼 것은, 관중을 재상으로 천거한 사람이 포숙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연이 ‘관포지교(管鮑之交)’란 고사에 들어있습니다.

관중과 포숙은 친구였습니다만, 각자 다른 주군을 보필했습니다. 왕위를 놓고 쟁투가 벌어졌을 때 관중은 포숙의 주군을 살해하려다 실패합니다. 포숙은 주군이 왕이 되자 주군의 철천지원수인 관중을 재상으로 천거하고 자신은 그 아래 직위에서 일합니다.

관중은 왕의 명성을 드높이고 자신은 걸출한 재상으로 기록됩니다. 관중은 훗날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란 말로 포숙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숙을 재상으로 천거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시해하려 한 자를 재상으로 삼은 왕이나, 그런 친구를 재상으로 천거하고 자신은 그 아래에 위치한 사람이나, 은혜를 베푼 친구 일망정 재상은 더 나은 다른 사람을 시키라고 하는 이 사람들의 그릇의 크기는 과연 어느 정도인 것일까요?

사정이 이러한데, 이 정권은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순우곤이나 해호나 관중이나 포숙 같은 애국심과 배포를 기대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접근 방식이 잘못돼 송구스럽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국정철학이 맞는 사람’ 운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말은 독선과 아집을 줄기로 삼은 ‘캠코더(대선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를 뜻하는 것으로서, ‘이명박근혜’ 때와 다를 것도 하나 없고, 탕평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입니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정적에 해당하는 힐러리 클린턴을 핵심 요직인 국무장관에 앉혔는데, 힐러리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여서 그랬겠습니까?

이 정권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지금 민생은 흔히 하는 말로 도탄에 빠져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그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무엇보다 ‘만사’라는 ‘인사’가 엉망진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 앞에 겸손한 인사, 탕평 인사를 단행해 주길 기대합니다. 이것은, 단언컨대, 촛불의 명령, 국민의 명령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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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2019-04-04 16:14:01
어쨌거나 부동산 많이 가진
순서대로 천거하다 보니
그럴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