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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원효대사와 사복의 설화...'생자필멸 회자정리'/ 김민남

경북 경주 교촌동에는 원효대사와 문무대왕의 둘째 딸 요석공주가 운명적으로 만난 것으로 전해지는 다리가 있다. 월정교다. 이 다리는 설총이 태어난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은 경주관광의 큰 볼거리가 되고 있다.

원효대사에 얽힌 얘기는 또 있다. 승려 일연이 저술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史)에 나오는 설화(說話)다. 신라 고승 원효대사에게 친구인 사복(蛇腹)이 찾아왔다. 그는 원효스님에게 집에서 오래 기르던 '암소'가 간밤에 죽었으니 장사(葬事)를 도와달라고 한다. 스님은 무슨 말인지 알고서 곧 사복의 집으로 갔다.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를 함께 장사지내고 스님이 축원을 하자 사복이 뭘 그렇게 말이 기냐고 타박했다. 사복이 딱 두 줄로 말을 줄였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음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마친 사복이 순식간에 땅 속으로 사라졌다. 삼국유사의 이 대목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두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 가르침에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體皆苦)라는 세개의 법칙이 있다. 부처님 말씀을 요약한 진리요 가르침의 핵심을 짚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주만유를 관통하는 불교의 '삼법칙'(三法則)이라고들 한다.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는 없다. 무상이다. 모든 존재는 인연으로 생겨난 것이므로 자아(自我)라고 내세울만한 실체가 없다. 상(相)이 없다는 것이다. 즉 객체(客體objective)-객관적 대상이라는 게 사실은 허상(虛相)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법무상이다. 사람들이 이 무상과 무아를 깨닫지 못하는 데서 모든 고통과 고뇌가 따른다는 것이다. 일체개고다. 이 말씀만큼 사람의 안쪽(내면, 內面)을 꿰뚫고 있는 진리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사복이 원효대사와의 장례 대화에서 이 가르침을 스스로 깨달은 건 아닐까. 결은 좀 다르지만 성경도 마찬가지다.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진 성경을 보면, 하느님과 예수(Jejus Christ)님의 언어(言語)와 세상 투시력(透視力)이 얼마나 깊은가는 논하기 두렵다. 문화가 세련되지 못하고 또 발달하지 못한 데다 교류가 거의 지역적 수준에 머물렀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두 분의 혜안(慧眼)을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와 영원히 동행하는 건 없다. 다만, 부처님의 자비(慈悲)와 연민(憐憫), 예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끝까지 따라오고 동행한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우리와 영원히 동행하는 건 없다. 부처님의 자비(慈悲)와 연민(憐憫), 예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끝까지 따라오고 동행한다. 생(生)의 마지막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모아들인 부(富)가 산해(山海)처럼 많고, 쌓아올린 명예나 지위가 하늘만큼 높아도 생의 마지막에 동행(同行)할 수는 없다. 단 하나도 가져갈 도리가 없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병상에서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보면 그도 불교의 이런 가르침을 이해한 듯하다.

그래서 무상, 무아, 사랑, 자비는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가장 큰 가치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가치요 우리의 마지막 길에도 함께하는 벗이다. 우리가 명상이나 집중수행 등을 하는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싶다.

결국 이들 진리는 경(經)에 쓰여진 좋은 말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현실 삶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제대로 사는 삶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게 하는 '경구'(警句)로 받아들여진다. 때로는 권력의 오만을 경계하고, 몇 줄 가당찮은 지식으로 방송같은 데 나와 혹세(惑世)하는 사람들을 꾸짖기도 한다.

2019년 3월 30일, 묵혜( 默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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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사복#경주#회자정리#생자필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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