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나의 권리이자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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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나의 권리이자 나의 선택이다
  • 경남 양산시 한민지
  • 승인 2019.03.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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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시민발언대] 경남 양산시 한민지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의사 조력 죽음을 통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가 언론에 실렸다. 의사 조력 죽음은 환자 스스로 생명을 끊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의사가 약물을 처방해주는 것이다. 안락사라고 불리는 이 죽을 권리는 대한민국에선 허락되지 않는다.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선 안락사가 합법인 캐나다, 네덜란드, 캘리포니아, 벨기에, 스위스 등 몇 되지 않는 나라들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안락사를 택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먼 나라까지 가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에게 자신의 나라에서 온전히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없는 걸까.

안락사는 불행해지려고 하는 선택이 아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끝내는 존엄한 선택이다(사진: Pxhere).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본 영화인 <청원>이 생각났다. 영화 속 주인공인 남자 이튼은 천재적인 마술사였다. 그는 무대 도중 높은 곳에서 추락해 목 밑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됐다. 14년이란 긴 시간을 누워서 살아가던 그는 안락사라는 선택을 한다. 영화 속에선 주인공 이튼의 안락사 청원을 지지해주는 사람과 그의 죽음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대립한다. 이튼은 자기 죽음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안락사를 허락해달라며 설득했고, 결국 그가 원한대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영화 속에서 이튼에게 삶을 이어가길 원하는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살면서 느끼는 고통과 행복은 모두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다. 기나긴 고통 끝에 죽음을 선택한 이튼의 결정을 그 누구도 비난할 순 없다. 이튼은 천장 틈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대로 빗방울을 맞아야 했다. 아침이 밝아 간호사가 와서 자신의 몸을 옆으로 밀어줄 때까지. 차가운 빗방울을 맞으며 누워있을 수밖에 없던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이 전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 말로만 듣는 것으론 그 아픔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안락사는 불행해지려고 하는 선택이 아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끝내는 존엄한 선택이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삶은 죽어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숨을 쉬고 있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 없는 삶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힘들지만 그런데도 살아가자고 말하기 보다 안락사를 선택한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 삶의 선택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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