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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최초 3.1운동 만세? 일신여학교 교사 학생들의 외침“여학생이 만세 부르니 군중이 합세했다” 증언...일신여학교는 부산시 기념물 지정, 기념관으로 남아 / 이지은 기자

1919년 3월 11일.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난 지 열흘째 되던 날, 부산 지역에서도 좌천동 거리에 처음으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의 근원은 부산에서 최초로 3·1운동을 일으킨 부산진 일신여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부산진 일신여학교의 외관은 여전히 잘 보존돼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 운동은 독립선언서와 함께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동래학원 100년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온 경성학생단 대표가 부산공립상업학교(현 부산상업고등학교)와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의 학생 대표들에게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 경성학생단 대표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학생 대표들은 부산공립상업학교, 동래고등보통학교, 부산진 일신여학교 학생들에게 연락해 3월 11일에 만세 운동을 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다른 학교는 만세운동을 하지 않았고, 부산진 일신여학교 교사 2명과 학생 11명만이 단독으로 만세를 외쳤다.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앳된 모습의 부산진 일신여학교 학생들(사진: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념전시관 제공).

3·1운동 당시 16세였던 김반수 동문(7회)이 1993년 교장 선생님에게 쓴 편지에 그때의 상황이 생생하게 나와 있다.

“3월 1일에 독립만세를 전국에서 부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여 때는 이때다 싶어 동지 일신여학교 몇 명이 모여 태극기를 만들어 나눠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님께서 (저를) 출가시킬 때 쓰려고 장만해 둔 혼숫감 옥양목을 어머님 몰래 끄집어내어 기숙사로 가지고 가서 초저녁에는 기숙사 벽장 속에 숨어 있다가 밤 10시가 넘어 창문에 불빛이 밖으로 새어 안 나가기 위해 창문에 이불을 가리고 옥양목에다 대접을 엎어서 동그라미를 그리고 붉은 물 검은 물로 칠하여 겨우 마련한 태극기를 들고 3월 11일 밤 8시경 거리로 가지고 나가서 가는 사람 오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목이 터지라고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답니다. 부르다 부르다 지쳐 쓰러지면 또 용기를 내어 불렀답니다.”

3·1운동으로 인해 옥고를 치룬 2명의 교사와 11명의 학생들(사진: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념전시관 제공).

<동래학원 100년사>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만세 시위에 합류했고, 금세 거대한 만세 군중이 생겼다. 그러나 얼마 후 일경이 나타나 총검을 휘두르며 쫓았고, 부산진 일신여학교 모든 학생은 체포됐다. 초량에 피신해있던 일신여학교 주경애 선생은 학생들의 체포 소식을 듣고 자진 출두했다. 심문하는 동안 주동 인물을 밝히기 위한 일본 군경의 극심한 횡포가 계속됐다. 동래여자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부산진 일신여학교만세운동기념비>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당시 학생인 김응수는 “세 살 먹은 아이도 제 밥을 빼앗으면 달라고 우는데 우리들이 우리나라를 돌려 달라고 하는데 무엇이 나쁘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모든 심문이 끝난 뒤 학생들과 교사들은 부산형무소에 수감됐고, 학생들은 징역 5개월, 교사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호주 선교사 멘지스. 부산진 일신여학교 초대 교장이기도 했다(사진: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념전시관 제공).

부산 최초의 3·1운동이 일어난 부산진 일신여학교를 설립한 이들은 호주 선교사들이었다. 구한말 호주는 한국을 기독교 선교 대상국으로 선정하고 내한해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 한국에는 여성 교육이 소외돼있었다. 부산에서 활동한 초기 호주선교사 중에는 미혼여성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접촉이 쉬운 여성을 위한 교육에 큰 관심을 가졌다. 호주 선교사들은 여성 교육이 미래의 민족지도자를 배출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호주 초기 선교사 멘지스(1856-1935)는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부인들과 어머니들이 반드시 교육돼야 한다”며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교사들이 처음 구입해 살던 초가집으로 미오라(Myoora) 고아원으로도 사용했으며, 부산진 일신여학교의 요람이다(사진: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념전시관 제공).

<동래학원 100년사>에 따르면, 1892년 호주의 두 선교사 멘지스와 페리(?-1935)는 3명의 여자 고아를 그들의 초가집으로 데려가 한국인의 선교사로 키우기 위해 교육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자아이들이 점점 모여들었고, 1893년 부산 최초로 호주원주민 말로 쉼터라는 뜻의 ‘미오라(Myoora) 고아원(정확한 위치 발견되지 않음)’을 설립한다. 그 후 근대여성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2년 후 고아원이었던 곳에 3년 과정의 소학교를 차린다. 학교가 나날이 번창함에 학교 이름을 일신(日新, Daily-New)이라 지었고, 1905년 현재의 건물을 신축해 이전한다. 이어 1909년에는 구한국 학부대신의 인가를 받아 3개년 과정의 고등과를 병치했다.

1925년, 부산진 일신여학교의 고등과는 동래구 복천동 500번지에 새로 지은 학교로 이전해 동래일신여학교(동래여자고등학교 전신)로 새 출발을 했고, 부산진 일신여학교는 소학교만 운영했다. 부산진 일신여학교의 역사가 <동래학원 100년사>에 실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후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1939년 소학교가 폐교되고, 호주선교사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기 시작했다. 결국 1942년, 모든 선교사가 추방됐다.

부산진 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기념비로 동래여자고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다(사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게시판 캡처).

학교에서는 주로 성경과 영어 교육을 했고, 조선어, 역사, 지리, 수학, 심리학, 식물학 등도 함께 가르쳤다. 다양한 민족교육들로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한 양한나(1회 졸업생)와 민주당 최고위원(1956), 민중당 대표최고위원(1966)을 역임한 박순천(5회)과 같은 많은 여성 지도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부산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라는 교육적 가치와 부산 3·1운동의 근원지라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부산진 일신여학교는 건축사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지은 지 100년이 넘었지만, 원형이 잘 보존돼있고, 비례와 균형미가 돋보인다. 특히 건물 정면 계단과 계단 2층 난간은 20세기 초 서양식 건물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벽돌쌓기와 돌쌓기의 세부기법을 보면 노력과 정성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건축사적·교육적 ·역사적으로 모두 높은 가치를 가진 부산진 일신여학교는 2003년 부산시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념전시관 1층 제1전시관 내부 모습(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이후 동구에서 지원을 받아 2004년부터 2년간 지붕, 교실, 벽체 등 보수·정비사업을 진행했고, 2009년에는 내부에 기념전시관을 설치했다. 기념전시관을 보러 온 대학생 안나영(22, 부산시 남구) 씨는 “전시관에 부산진 일신여학교의 숨겨진 이야기가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고 말했다.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념전시관 제2전시관 내부 모습으로, 옛 교실을 그대로 재현해 두었다(사진: 취재기자 이지은).

붉은 벽돌의 2층 건물이 눈에 띄는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념전시관은 현재 1층, 2층 모두 기념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내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에서 오후5시 사이에만 관람이 가능하다. 문이 닫혀있을 시, 1층 문에 달린 일신여학교 개방 안내문에 적힌 부산노회 사무실 번호로 전화하면 와서 열어준다.

전시관 1층에는 부산진 일신여학교의 설립과 건축물의 변천을 보여주는 제1전시관과, 옛 교실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부산진 일신여학교 체험실인 제2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2층에는 근대 여성교육과 자랑스러운 동문들에 대한 내용이 담긴 제3전시관과, 부산의 3·1운동과 부산진 일신여학교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제4전시관이 자리해있다.

부산시 동구 좌천1동 768-1번지에 위치한 부산진 일신여학교 위치 지도(사진: 네이버 지도 캡쳐).

부산시 동구 좌천1동 768-1번지에 위치한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념전시관을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좌천역에 내린 후, 3번 출구로 나와 옆 골목을 따라 경사 높은 언덕을 5분간 올라야 한다. 부산진교회의 건너편에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부산진 일신여학교가 있다.

3월 11일 부산진 일신여학교부터 동구청 광장까지 부산진 일신여학교 만세운동 재현행사와 주먹밥, 태극기 만들기 등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행사가 있었다. 부산시 동구청 문화체육관광과 관계자는 “부산·경남지역 3·1운동의 효시가 됐던 부산진 일신여학교의 만세운동을 기리고, 3·1운동의 가치와 정신을 재조명하여 평화와 공영을 위한 미래를 전망하고자 이 행사를 개최했다”며 “2500여명의 자발적인 참여로 행사개최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였다고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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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부산진일신여학교#동래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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