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음영... 노인 학대하는 가족 '급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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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의 음영... 노인 학대하는 가족 '급증세'
  • 취재기자 이도희
  • 승인 2015.09.1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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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노인 학대 신고 건수 1만 건 돌파...법적, 제도적 도움 절실

김모(86, 부산시 해운대구) 할머니는 얼마 전까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62세 아들과 함께 지냈다. 최근 할머니는 아들이 할머니를 학대한 듯하다는 요양보호사의 신고로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겨 지내고 있다. 김 씨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아들은 할머니가 밥을 다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거나, 이유 없이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다른 자식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연락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들을 힘으로 이길 수 없었다. 무서웠다”고 말했다.

정모(94, 부산시 해운대구) 할머니도 최근까지 큰아들 부부와 함께 살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부산 반여동의 한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할머니는 큰아들 부부에게 언어학대, 재정학대, 감금 등을 당했다. 요양보호사는 아들의 허름한 옷을 입고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 있던 할머니의 옷차림을 보고 처음에는 할아버지인줄 알았다. 할머니에 의하면, 아들 부부는 할머니 다리가 불편한 것을 알면서도 제때 치료를 해주지 않았고, 밤에 시끄럽고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할머니가 TV를 보려고 하면 TV를 보지 못하게 했으며, 불도 켜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정 씨 할머니는 아들 부부에게서 “늙었으면 빨리 죽지,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오래 사냐”는 폭언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임모(88, 경남 통영시 광도면) 할아버지도 며느리에게 학대를 당했다. 선원인 아들은 집에 잘 오지 않는데, 며느리는 식사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할아버지에게 한 마디 말도 걸지 않고, 가족여행도 할아버지를 빼놓고 떠나는 등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할아버지를 방치했다. 이사를 가기 위해 가족들 짐을 정리하던 중 할아버지 짐이 보이지 않아, 할아버지가 짐의 행방을 묻자, 며느리는 “거지같은 물건들 다 내다 버렸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일로 할아버지는 며느리와 크게 다툰 후 고향으로 돌아가 홀로 지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노인들이 위험하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가족학대에 노출된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노인 복지법 제1조2 제4호에 따르면, “노인 학대라 함은 노인에 대하여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방임을 하는 것”을 말한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 학대 신고건수는 2011년 8,603건, 2012년 9,340건으로 점점 늘어나 2013년엔 1만 162건으로 1만 건을 넘었다고 밝혔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3 노인 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장소는 가정이 83.1%로 가장 많았고, 가해자는 대부분 가족이었으며, 학대 가해자의 비율은 아들(38.8%), 배우자(16.1%), 딸(12%)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같은 보고서에서, 학대 피해를 입고도 신고하지 않은 노인은 그 이유로 개인의 일이므로(42.5%),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22%), 창피해서(21.7%)라고 각각 대답했다.

고용노동부 노인치매예방 및 관리 과정 강사로 근무 중인 박선미 씨는 “가족이 주된 가해자이고, 노인들이 가정이나 개인의 일을 꺼리는 등의 요인으로 봤을 때 학대를 당하고도 신고하지 않을 비율이 높으므로, 실제 학대 건수는 신고된 것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은 지난 20일 노인 학대범죄의 조사와 수사, 피해노인의 보호, 처벌강화 등 노인 학대 범죄로부터 노인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노인 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발의했다. 지난 5월 21일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박 의원은 최근 급속한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효 사상만을 강조해 노인 학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어린이집 폭행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학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노인 학대 역시 노인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파괴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박선미 씨는 노인의 적극적인 대처나 신고 없이는 진정한 노인복지가 이뤄질 수 없다며,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노인과 가정 내의 노인 학대 해소를 위해서는 노인 학대와 노인 차별 방지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러한 노인 학대 방지 정책들이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강보험공단 전 차장 김상철 씨도 노인 학대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말하며, 노인의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철 씨는 “국민연금과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에 대해 더 전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체계적인 사회복지 시스템이 구축되어서 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복지 시스템들이 전체적으로 맞물려서 돌아가야 하는데 지금은 따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고경동 교수는 우리나라 인구 5,000만 명 중 노인 인구는 대략 10%인 500만 명이고, 노인 인구의 48%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생활을 지속하는 빈곤노인이라고 보면 된다고 보고 있다. 고 교수는 정부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혜택을 주고 있지만 수급자로 혜택을 받는 노인들은 15%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경동 교수는 “대한민국이 곧 노인공화국이 될 것이다. 노인 학대의 원인은 경제적인 부분이 크다. 조세제도를 개편해 복지 사각지대를 좁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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