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에이스, 악바리, 무쇠팔... "최동원은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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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에이스, 악바리, 무쇠팔... "최동원은 전설이다"
  • 취재기자 이하림, 박세원
  • 승인 2015.09.14 2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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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사직구장서 故 최동원 4주기 추모식 열려...지인들, "그는 영원한 부산 사람"


한국 야구의 전설 무쇠팔 투수최동원이 세상을 떠난지 4년이 지났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됐지만 그 중 최동원은 야구=최동원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만큼 한국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로 남아있다. 그 최동원을 추모하는 모임이 1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다. 최동원이 떠나고 그 자리에 모인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 14일 열린 故 최동원 추모식에서 박동희 기자가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하림)

 
떡잎부터 남다른 악바리 레전드
부산 출생인 최동원은 프로 데뷔 이전부터 빼어난 실력으로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경남고교 2학년 시절 전국 우수고교 초청대회에서 당시 최강이었던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초고교급 투수로 불렸다. 그의 오른팔은 거액의 보험에 들기도 했다.
 
고인의 모교 경남고교 후배인 신진수 야로중 야구부 코치는 최동원 선수가 롯데에 입단하고 나서 모교에 연습하러 자주 온 것을 기억하고 있다. 신 코치는 "최 선배가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연습을 많이 했다"며 김용희 SK감독님은 최동원 선배님의 3년 선배인데 최 선배가 운동할 때는 정말 독종이었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경기
최동원의 영원한 맞수 선동열과의 경기도 화제였다. 19875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의 경기는 최동원 209, 선동열 232개로 두 선수가 합해서 총 441 투구로 2:2 무승부로 끝났다. 이 경기는 두고두고 한국 프로야구의 명승부로 꼽히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두 사람의 숙명의 라이벌 대결을 담은 영화 <퍼펙트 게임>이 개봉되기도 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야구 팬 심봉선(29) 씨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최동원의 팬이다. 직접 최동원의 경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영상으로 최동원 선수의 활약을 접하게 되면서 열성팬이 됐다. 그는 선동열과의 경기 장면은 정말 잊을 수 없었다“84년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이뤄진 인터뷰 화면에서 자고 싶다고 말하는 최동원 선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정이 울컥한다며 남다른 팬심을 나타냈다.
 
1984년 가을의 기억
1984년 롯데자이언츠는 한국시리즈에서 삼성라이온즈를 41패로 꺾고 팀 창단 후 첫 우승을 이뤘다. 이때 투수 최동원은 혼자서 4승을 모두 따냈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혼자서 4승을 올린 투수는 최동원뿐이다. 이 기록은 아마도 다시 나오기 힘든 불명의 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처럼 투수의 투구수를 TV 중계방송 화면에서 보여주고 해설자도 투구 한계수를 언급한 것은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서 뛰면서 미국 프로야구가 한국 안방에 중계되면서부터이기 때문이었다.   
 
사직동에 거주중인 정학(56) 씨는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 씨는 삼성이 정규 리그에서 고의로 다른 팀에게 져주면서 결승 상대로 롯데를 골랐었는데, 최동원 때문에 롯데가 우승을 해버렸다나한테 그해는 2002 월드컵보다 더 뜨거웠던 스포츠 이벤트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당시 삼성의 재일교포 에이스 김일융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롯데에 진 것이 아니라 최동원에게 졌다.”
 
고향을 그리워하던 사람
이번 최동원 추모행사에서는 <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가 최동원의 모든 것, 최동원을 왜 위대한 선수라고 부르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박 기자는 고인과 <날아라 홈런왕>이라는 TV 프로그램을 2개월 남짓 함께 하면서 친분이 두터워졌다고 한다. 박 기자는 최동원 감독은 늘 본인이 던진 강속구보다 세월이 빠르다는 말을 자주했었다감독님이 가신 지 4년이 지나다니, 정말 감독님 말처럼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최동원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박 기자의 기억 속에 최동원이라는 사람은 늘 고향 부산을 그리워했다. 박 기자는 생전에 감독님은 어머니가 계시고, 당신이 뛰어놀던 구단이 있는 부산에 내려오고 싶어했다부산에 오니 부산 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본인의 숨이 달라진다고 말하던 감독님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최동원은 8년간 10374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을 기록하고 1990년 은퇴했다. 이후 한화 이글스 코치에 이어 한화 2군 감독으로 활약하다 2011914일 대장암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이후 롯데자이언츠 구단은 그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한편, 이번 4주기 추모식에는 고인의 어머니 김정자(80) 여사와 아들 최기호 군, 최동원의 구포초등학교 1년 후배인 최동원기념사업회 박민식 이사장의 모친, 권기우 명예이사장, 어우흥 최동원상 선정위원회 위원장, 롯데야구단 이윤원 단장, 전 롯데 자이언츠 김용철과 박정태 선수가 가 참석했다
 
이밖에 야구 꿈나무들도 대거 초청됐다. 전교생 70명인 학교에서 15명의 선수로 올해 창단된 합천 야로중 야구부를 비롯해 북구 리틀야구단, 서구 리틀야구단, 사직중 야구부 등 200여 명의 어린 야구 선수들이 참석해 헌화와 묵념으로 고인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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