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인문학 릴레이 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우정(友情), 그걸 찾아 한 생을 헤매기도 한다/ 김민남

"서편에 달이 호수가에 질 때에
저 건너 산에 동이 트누나
사랑빛이 감도는 빛난 눈동자에는
근심띠운 빛으로 편히 가세요
친구 내 친구 어이 이별할 까냐
친구 내 친구 잊지 마세요"

<친구의 이별>이란 노래다. 70여 년 전 초등학교 4학년 학예회(學藝會) 때 담임선생님이 시나리오를 쓰시고 내가 출연한 동화극 <우정(友情)>의 주제곡으로 불렀던 노래다. "친구 찾아 3만리" 또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멀리서 친구가 온다니 이 또한 반갑지 아니 하랴(遠朋來是亦好也, 원붕래시역호야)라는 옛 글귀도 있다. 사람은 한 평생을 살면서 많은 친구를 만나고 사귀고 헤어지고 또 만난다. 

내게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잊지 못할 친구가 셋 있었다. 한 친구는 어릴 때부터부터 시작해서 초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한 친구는 초중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녔다. 또 한 친구는 대학에서 만나 졸업하고 결혼 후에 우연찮게 둘이 다 서울로 가서 청춘을 거기에서 살았다.

문득 대학 때 만난 친구가 생각난 것은 오늘 그의 고향 경남 의령에 살고 있는 제자의 안부문자 때문이다. 친구는 '학군' 장교로 제대하자마자 그야말로 까만 고무신 한짝 끌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그때만 해도 서울 변두리였던 서울 영등포 당산동 슬라브로 된 집을 얻었다. 방도 부엌도 없고 비가 새는 곳에 봇짐을 풀고 가까스로 뚝섬 부근 한 볼펜 회사에 들어갔다. 그게 인연이 되어 그 회사에 납품을 하면서 '까만 고무신 한짝의 신화'(神話)를 만들어갔다. 1975년 내가 언론사에서 강제해직(解職)되어 놀고 있을 때는 덩치 큰 동생에게 쌀가마니를 짊어지워 한남동 우리집 비탈길로 올라오기도 하고 가끔 불러내 밥도 먹고 술도 한잔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우리들의 우정은 안타깝게도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가 시름시름하기 시작했다. 위생시설이 잘 안된 자그만 플라스틱 공장 압출기에서 뿜어내는 먼지와 가스에 이기지 못했다. 여러 차례 병원으로 찾아가서 밤늦게까지 얘기도 나누고 위로도 했다. 석 달이 채 안된 어느날, 그는 병상에 걸터앉은 내게 아이들 부탁을 하면서 스르르 감은 눈을 더 이상 뜨지 못했다. 

까만 고무신 한 짝의 신화는 여기서 멈춰야 했다. 회사에 휴가원을 내고 그를 데리고 자동차로 고향 의령까지 내려갔다. 선영(先塋) 산자락에 봉분을 만들고 술 한 잔 뿌린 것이 친구와의 마지막이었다. 돌아서는데 주름진 그의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으셨다. 그때사 참던 눈물이 비오듯 했다. 어머니의 오열과 몸부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어머니와 동생이 감자와 양파를 몇 번 서울로 보내 주셨다.

친구가 사라진 공간에 진한 우정이 머물렀다. 세월이 몇 년 흘렀다. 그의 부인과 어린 아들 딸이 걱징되어 몇 차례 영등포 집으로 갔다. 제사 때도 술 한 병 들고 갔었다. 하지만 어느날 더 이상은 오히려 부인이나 아이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엉어리진 슬픔만 더해주는 것 같았다.

발길이 점점 뜸해지고 멀어졌다. 친구와 나 사이의 공간에 머물렀던 우정은 그대로지만, 현실에서 이어갈 길이 없었다. 있다면 간혹 <친구의 이별>이란 노래를 입속에서 읊조리는 것이 전부였. 우리네 삶이라는 게 그러려니 하고 스스로 위안하고 편리하게 합리화해 간 것 같기도 하다. 

우정은 여전히 우리 곁에 오래 남아 있어야 할 높은 가치(價値)다. 바람직한 공동체에 요구되는 상위(上位) 가치들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사진: pxhere 무료 이미지).

우정(友情), 그것은 인생을 살찌우고 향기를 더하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랑'이다. 동화극 <우정>은 친구를 위해 임금 앞에 목숨까지 담보해주는 큰 사랑이 줄거리다. 동서양, 시대의 고금(古今)을 기리지 않고 우정에 얽힌 미담(美談)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우정도 시대와 세태가 바뀌면서 권력, 부(富), 지위(地位) 쪽으로 중심 이동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우정은 한 생을 걸고 찾아헤매는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이고 우리와 영원히 동행하는 '감성'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라. 그런 우정이 우리와 더불어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는 인생 길이 얼마나 삭막하고 을시년스럽겠는가. 우정은 여전히 우리 곁에 오래 남아 있어야 할 높은 가치(價値)다. 바람직한 공동체에 요구되는 상위(上位) 가치들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2019년 3월 15일, 묵혜(默惠) 씀.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정#친구의 이별#가치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