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미세먼지, 핵폭탄, 우리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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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미세먼지, 핵폭탄, 우리의 몫
  • 편집국장 차용범
  • 승인 2019.03.1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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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위험’ 앞에 탈원전 정책부터 되돌아볼 때 / 편집국장 차용범

‘핵폭탄보다 무서운 미세먼지 공포’, 최근 한 언론기사의 제목이다. 국가적 미세먼지 재앙 앞에 나올 법한 표현이다. 정부는 연일 비상저감 조치를 발령하고 있고, 비상저감조치 최장기록은 계속 갈리고 있다. 며칠 전, 서울·인천은 ’먼지 지옥‘ 세계 1, 2위를 경험했다. 글로벌 대기오염 조사기관 에어비주얼(AirVisual)의 도시별 대기질지수(AQI: 다양한 대기오염 수치를 평가하는 지수)에 따르면, 지난 6일 서울(188)과 인천(180)은 세계 1, 2위로 공기가 탁했다. 중국 베이징(45)은 58위, 서울·인천보다 훨씬 낫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OECD 회원국 도시별로 초미세 먼지 농도를 측정한 결과도 충격적이다. 오염도 상위 100개 도시 중 우리나라 도시가 44개, 회원국 중 가장 많다. 걸핏하면 OECD 회원국임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정작 ’미세먼지 지옥‘ 부문에서 최고‘라니.

‘침묵의 살인마’ 별명 그대로, 미세먼지는 소리 없이 사람을 죽여가는 가장 위험한 환경재해다. 미세먼지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쉽게 말하면, 온 몸에 해롭다. 과거엔 흙먼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각종 중금속과 발암물질이 뒤섞여 독성도 더 강해졌다. 혈관을 타고 온 몸에 침투, 뇌에선 치매, 심장에선 심근경색, 호흡기에선 폐암을 유발한다. 초미세먼지로 인한 국내 조기 사망자 수는 한 해 1만 1900명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6개월 줄어들었다.

미세먼지 대란, 언제까지 남의 탓만 할 건가?

미세먼지 흡입으로 5일 안에 사망하거나 급성 질환에 걸리는 사람 수도 급증하고 있다. 미세 먼지는 아이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성인보다 면역력이 약하고 활동량과 호흡량이 많은 만큼, 미세먼지 노출빈도가 높고 흡입량도 많기 때문이다. 과학을 다루는 전문가의 고뇌는 그렇다 치고, 자녀를 키우는 주부의 걱정은 절실한 체험이다. “IMF 외환위기 때도, 전쟁 위기설이 퍼져갈 때에도 이 나라를 뜨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좀 다르다. 2세, 3세들에게 이런 나라에서 살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최악의 미세먼지 사태, 중국:한국:북한=4:4:2 책임’, 미세먼지 전문가의 분석결과다. "미세먼지 얘기를 할 때마다 중국 탓을 하지만, 요즘처럼 며칠간 미세먼지가 계속해서 잔류하는 것은 국내원인이 더 크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가 국내 오염물질과 반응해 농도가 짙어지고, 따뜻한 날씨에 공기순환까지 막히면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태"라는 분석이다. 실제 최근 세계도시별 대기질 지수 역시 중국 베이징(45)은 서울(188)의 1/4 수준이었지 않나? 그리고 중국은 우리의 ‘중국 책임론’을 통계와 현상을 들어 비아냥거리고 있고, 우리 정부 역시 이런 중국에 한 마디 항의도 못하지 않나. 이 지경 같은 비상상황에도 정부는 주요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요즘 같은 고농도 미세먼지 현상이 ‘일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초미세먼지 위험, 후쿠시마 피폭자보다 사망확률 높다”

“초미세먼지 마신 한국, 후쿠시마 피폭자보다 사망확률 높다.” KAIST 정용훈 교수의 과학적 사고에 따른 경고다. 최근 우리가 겪은(마신) 초미세먼지는 일본 후쿠시마(福島)원전 폭발사고 현장근로자의 방사능 피폭보다 기대수명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실제 OECD의 세계 각국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25.1㎍/㎥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정 교수는 강조한다, “우리나라에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상위 피폭자 1%보다 인체에 더 유해한 상황”이라고.

정 교수의 주장은 뚜렷하다. “이 같은 비교 연구는 그나마 원전사고가 발생하는 최악상황을 상정한 것”이며 “결국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해야 하는 만큼, 현실적으로 원전 발전비중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2018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2.5%는 미세먼지를 가장 불안한 환경문제로 꼽고 있다. 방사능에 대한 불안은 54.9%. 그나마 최근 추세를 감안하면, 초미세먼지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것이라니, 우리의 선택은 과연 어떠해야 할 것인가.

미세먼지 대란, 정부는 이제야 ‘통렬한 반성’?

‘미세먼지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세계가, 온 국민이 미세먼지 공포에 시달려도 우리의 대책은 허망하다. 국민인식대로라면, 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안전문자’ 보내는 것밖에 없다. “미세먼지 심하니 노약자·어린이는 야외활동 자제하라!”, 가히 ‘미세먼지 무정부 상태’라는 질책이 나올 만하다.

‘미세 먼지 없는 푸른 대한민국-미세먼지 30% 감축’은 대통령의 중요공약이다. 대통령은 호언했다. “취임하자마자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미세먼지 대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그럼 대통령은 이 공약, 이 호언을 실행했나? "사람이 먼지(만도 못하)다. 사람이 뭔 죄냐." 요즘 SNS에선 "사람이 먼저다"(대선 슬로건)를 패러디한 게시물이 넘쳐난다. 결국, 드디어, 대통령도 일어섰다.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라고.

미세먼지 재난 앞에 국무총리는 말한다.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총리 말에 떠밀려 초등학교를 찾은 교육부총리는 말한다. “요새 바람이 잘 안불어 가지고....” 이게 국무총리·부총리의 수준이다. 사상 최악·세계최악의 미세먼지 재난까지, 대통령부터 정부, 지방자치단체 두루, ‘땜질대책’ 몇 가지 뿐, 실상 아무 진전도 이룬 게 없다. 도대체 지난 2년, 정부는 무엇을 했나? 모두가 하늘을 쳐다보며 바람 불 때만 기다려오다, 이제 ‘통렬한 반성’을 시작할 것인가?

그럼, 미세먼지는 그저 속수무책의 환경재해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우선, 우리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중국을 보라. 중국은 미세먼지 대책에 결사적이다. 우리의 ‘방치 상태’와는 대조적이다. 중국은 대기오염 방지 5개년 계획기간(2013-2017) 동안, 우리 돈으로 270조 원의 예산을 썼다. 그 결과, 베이징 공기는 2013년 89㎍에서 2017년 58㎍까지 나아졌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 멕시코시티 공기, 이젠 서울보다 좋다”-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았던 멕시코 시티의 공기는 이제 서울보다 좋다? 그게 그저 좋아졌겠나?

이념적 공약 집착보단 국민건강 챙기는 정부이기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미세먼지는 분명 핵보다 무서운 재해이다. 우리는 이제 그 어떤 ‘잠재적 위험’보다 ‘현존하는 위험’ 앞에 겸허해야 한다. 중국, 멕시코나 유럽국가처럼, ‘남의 탓’보단 ‘내 탓’부터 서둘러야 한다. 미세먼지의 국내요인은 뭔가? ‘발전소’와 ‘교통’ 탓이 크다. 석탄·가스 발전에서, 경유차 매연에서 나오는 그 미세먼지·초미세먼지부터 잡아가야 한다. 발전 영역에서 미세먼지 발생원은 석탄화력>가스화력>원자력=신재생의 순서임은 분명하다. 여당 중진의원부터 “신재생을 높여 나가되 중단시켜야 할 에너지원은 석탄화력>가스화력>원자력 순”이라고 하지 않나.

안타까운 건 이 정부의 ‘탈원전’ 이념이다. 탈원전으로 모자란 전력을 석탄· 가스 발전으로 메우느라 현실성 있는 미세먼지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 위험’ 미세먼지보다 ‘가상의 위험’ 원전을 앞세우느라, ’미세먼지 앞에 길 잃은 정부’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대통령이 비로소 ‘비상한 시기의 비상한 조치’를 얘기하는 상황에, 논리적·절차적으로 무리하기 짝이 없는 그 탈원전 공약 하나 접는 게 그리 어려울 것인가.

탈원전, 어차피 과학적 근거보단 이념적 공포 마케팅이었다는 시각이 있다. 국민여론, 탈원전보단 원전 유지·확대를 선택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앞의 ‘비상한 시기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 탈원전의 수정에 관한 한 정부 내 금기사항이란 얘기이니, 이제 대통령이 스스로 꼬인 매듭을 풀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과학적 타당성·절차적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탈원전 정책부터 보완하며, 국민 앞에, 세계 앞에 널리 과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미세먼지 앞에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고. 우리, '잠재적 위협'인 원전의 위험성을 들어, '현존하는 위험', 그 '핵폭탄보다 무서운' 미세먼지 공포를 언제까지 가벼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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