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답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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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답게 살겠습니다(?)
  • 편집위원 양혜승
  • 승인 2015.09.0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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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미국에서 박사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몇몇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대장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미안하다. 아버지가 빽이라도 있었으면 네가 자리를 잡는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가방끈도 길어질 대로 길어진 막내아들이 소위 ‘보따리 장사(시간강사의 은어적 표현)'를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우셨던 모양이다. 병약해진 육신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처지인지라 막내아들이 빨리 대학교수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컸을 것이다. 무슨 그런 생각을 하시느냐고, 그런 미안함을 가지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다. 자식이 부모의 ‘빽’을 이용해서 앞길을 모색하는 일, 부모의 ‘빽’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믿었다. 평생을 교단에 계셨던 아버지에게 ‘빽’이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믿었다.

이제는 세상에 계시지 않는 아버지. ‘빽’ 없음을 한탄하시던 그 때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요즘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몇몇 국회의원들이 로스쿨을 졸업한 자신의 자녀들의 취업을 도왔다는 의혹이다.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논란이 함께 불거졌다. 야당 한 의원의 경우, 로스쿨 출신 딸이 대기업 경력 변호사로 입사하는 과정에서 채용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여당 한 의원의 경우, 로스쿨 출신 아들이 정부법무공단 변호사에 채용되는 과정에서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당의 또 다른 의원의 경우에도 유명 IT업체의 사내변호사로 취업하는 과정에서 힘을 썼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이런 의혹들은 그저 의혹일 뿐이다. 그 특별한 위치의 아버지들이 자신의 ‘빽’을 그릇된 방식의 자녀사랑에 활용하지 않았기를 빈다. 설령 실제로 그런 잘못을 했다 한들 물증을 밝혀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해당 의원들은 큰 문제없이 자신들의 특별한 지위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징계조차 받지 않으리라는 데 개인적으로 한 표를 던진다. 하지만 해당 의원들에 대한 징계 여부와 관련 없이 이런 논란을 바라보는 소위 ‘빽’ 없는 사람들의 심정은 몹시 처참하다.

이번 일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특권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는지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흔하게 관찰해 왔다.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의 특별한 자녀사랑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어쩌면 국회의원들의 자업자득이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연줄을 동원해서 가까운 이들의 취업을 도왔다는 심증은 그동안 너무 많이 쌓여왔다. 야당의 중책을 지냈던 한 의원의 경우, 대기업 회장인 학교후배에게 자신의 처남의 취업을 부탁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다. 해당 대기업 회장은 이 일로 검찰조사까지 받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법안을 심사해야 할 국회 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인사 청탁 문자를 보내다가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되는 일은 언론의 단골소재가 된 지 오래다.

야당 한 의원은 자녀 취업 청탁 의혹이 일자 이렇게 항변했다. 취업 부탁을 한 것이 아니라 자녀가 지원했다는 사실만 대기업 대표에게 알렸을 뿐이라고. 국회의원은 범부(凡夫)가 아니다. 그러기에 범부(凡父)여서도 안 된다. 힘을 가진 자의 ‘알림’은 알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해당 의원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몰랐다면 큰 문제고, 알고도 그랬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여당의 최고위원까지 지냈던 어떤 의원은 얼마 전 지인에 대한 취업 청탁 의혹이 일자 당시 이렇게 반문하기도 했다. 일자리가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니냐고. 기가 막히고 귀가 의심스러운 반문이다. 국회의원이 ‘누구나’일 수는 없음은 해당 의원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범부(凡父)로서의 삶을 원한다면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으면 된다.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지 않고서 ‘누구나’라는 이름의 변명을 끄집어내는 순간 그것은 지위의 악용이다. 바로 갑질이다.

국회의원들의 취업 청탁 의혹들이 한꺼번에 불거진 와중이던 지난 9월 1일, 국회에선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원답게 살겠습니다”라는 선언을 하는 모임을 가진 것이다. 원래 ‘답게 살기 운동’은 국내 7대 종단 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가 펼치고 있는 운동이다. 여기에 국회의원들이 동참한 행사였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정치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정치인이 있어야할 곳에 있지 않았다고. 국회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면 사회는 안정과 번영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야당 문재인 대표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가장 신뢰받아야할 집단이 가장 불신 받는 집단이 됐다고. 부끄러운 일이고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답게” 산다는 것은 그 추상성만큼이나 많은 의미의 함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몹시도 어려운 표현이다. 하지만 그 이름에 걸맞는 역할과 의무와 도덕성이 녹아있다는 정도는 ‘누구나’ 안다. 국회의원들의 선언에서 진정성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언어의 유희는 그야말로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제발 우리의 국회의원들이 있어야 할 곳에서 있으면서 신뢰 받는 집단이 되기를 기원한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녀를 취업시키고, 그것을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집단이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빽’ 없는 부모들에게 고통이나마 주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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