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현혹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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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현혹되지 말아야
  • 편집위원 신병률
  • 승인 2015.08.3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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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대법원은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쉽게 바꿀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하였다. 이후 이름을 바꾸려는 신청자가 꾸준히 늘어, 최근에는 하루에 평균 430명이 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사회적 존재다. 강도년, 김치국, 이말년, 강호구, 경운기처럼 누가 봐도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겪었을 심리적 정신적 고통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타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두려웠을 것이고, 그래서 당연히 위축된 삶을 살았을 것이고, 심지어는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들이 개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고 그들 모두가 앞으로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기원한다.

이름은 자신을 외부에 드러내고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인식하게는 중요한 사회적 기호(sign)다. 그리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대체로 자기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하기 마련이다. 성명학이나 작명소가 존재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이상한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가 가끔 있긴 하지만 그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부모들 못지않게 사업가들도 자신의 기업이나 상품 혹은 서비스에 좋은 이름을 붙이려 한다. 그래서 큰돈을 들여 기업 이미지 통합(CI: Corporate Identity) 작업을 하고, 그것을 상호와 상표로 등록하여 보호하고, 네이밍 마케팅(Naming Marketing)을 통해 상품의 이름이 소비자의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온갖 궁리를 한다. 물론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름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부모나 사업가 못지않게 이름 짓기가 중요한 또 한 부류의 집단이 있다. 바로 정치집단이다. 그들은 정당명은 물론이고 각종 법안이나 정책, 정치행위 등에 이름을 붙인다. 김영란법(부정청탁 금품수수 금지), 전두환법(공무원 뇌물 범죄에 대한 추징 강화), 유병언법(상속 증여된 범죄자 재산 몰수), 조두순법(성폭력 범죄 심신 장애 감경 조항 엄격 적용), 장그래법(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등 딱딱하고 긴 법안에 사람 이름을 붙여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집단의 ‘이름 짓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자당의 정책과 정치 행위에는 좋은 이름을 붙이고 상대당의 정책과 정치 행위에는 나쁜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다. 총사업비 22조원을 투입해 소위 ‘녹조라떼’를 만들고 말았다고 조롱받고 있는 지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이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유권자인 우리는 정치집단이 붙인 이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수고스럽더라도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의 경우, 재벌이나 기업가에게 유리한 정책에는 ‘경제 살리기’ ‘노동선진화’ ‘규제완화’ ‘노동개혁’ 등 좋은 이름을 붙이고,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한 사안에는 ‘경쟁력저하’ ‘시민불편’ ‘경제악영향’ ‘복지 포플리즘’ ‘무상 포플리즘’과 같은 나쁜 이름을 주로 붙인다. 북한에 유화적이거나 미국에 반대하면 ‘종북’ ‘친북좌파’라고 붙이기도 한다.

최근 정부는 4대개혁이란 이름으로 노동, 공공, 금융, 교육부문의 개혁을 올해 내에 반드시 이루어 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개혁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여 그것이 곧바로 좋은 의미의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집단은 자당의 정책에는 반드시 좋은 이름을 붙이는 습성이 있으므로 그들이 내세운 개혁이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꼼꼼히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시행되었던 정책들로 인해 우리의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실재로는 더 힘들게 되었던 적이 많았다. 특히 정부가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노동 개혁은 현재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미래 노동자들의 생계를 좌우할 굉장히 중요한 정책이 될 것이므로 더더욱 이름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친구가 소개시켜 주기로 한 남자의 이름이 현빈이라고 해서 소개팅 자리에 진짜 현빈이 나올 리 없듯이,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그 정책이 좋은 정책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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