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시한폭탄?...늘어나는 ‘고령 운전자’ 사고에 당국 대책 고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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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시한폭탄?...늘어나는 ‘고령 운전자’ 사고에 당국 대책 고심 중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9.02.2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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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등 일부 지자체와 일본 '면허 반납제' 시행..."노인 이동권 제한 vs "노인 운전능력 저하는 당연" 여론 팽팽 / 신예진 기자

지난 24일 오후 8시 40분쯤, 통영대전고속도로에서 운전자 박모(72) 씨가 2차선에서 시속 30km로 운전하고 있었다. 뒤따르던 화물차 운전기사 박모(57) 씨가 정상적 고속도로 차량 흐름을 방해하면서 저속주행하던 박 씨의 트럭을 발견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해 차량을 들이받았다. 급정거한 박 씨의 화물차는 뒤 따라오던 승용차 2대에 다시 치였고, 박 씨는 결국 숨졌다.

박 씨의 ‘거북이 주행’이 한 생명을 앗아간 셈이다. 심지어 박 씨는 사고 이후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그냥 평소처럼 (느리고) 안전하게 운전했고 사고도 몰랐다"고 진술했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2일 오후 6시 20분께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호텔 주차장 앞에서 유모(96) 씨가 차를 후진하다 행인 이모(30) 씨를 쳤다. 병원으로 옮겨진 이 씨는 끝내 숨졌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연제구에서 A(76) 씨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햄버거 가게로 돌진하는 사고를 낸 바 있다.

이처럼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2014년 2만 275건, 2015년 2만 3063건, 2016년 2만 4429건, 2017년 2만 6713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전체 교통사고 중 고령 운전자의 사고 점유율 역시 2013년 8.2%, 2014년 9.1%, 2015년 9.9%, 2016년 11%, 2017년 12.3%로 상승곡선을 그린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고령에 따른 행동 능력 저하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이 발행한 ‘고령운전자의 이동성과 자가운전 결정요인’에 따르면, 고령자는 노화에 동반되는 신체적인 기능 및 감각·지각 기능 쇠퇴의 영향을 받는다. 순간적인 상황인식 능력이나 처리 능력 등이 낮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노화에 따른 기능 쇠퇴가 모든 능력에서 전반적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고령자들이 본인의 능력 저하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조건에서 빠르고 정확한 대처가 요구되는 운전환경에서 실수를 불러올 수 있다.

늘어나는 고령 운전자와 그에 따른 교통사고 발생에 정부와 지자체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최근 늘어나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에 정부는 지난 1월 1일부터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시행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고령자 면허소지자가 급증하는 현실에 대비했다. 개정안은 만 75세 운전자 중 면허갱신 대상자는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는 것이 골자다. 만 65세 이상 운전자는 안전교육 ‘권장’ 대상자다.

이 외에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적성검사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고,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2시간 이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교통안전교육을 통해 교통표지판 변별검사 등 고령 운전자의 인지능력도 진단한다. 지난해까지는 고령 운전자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운전면허증을 갱신할 수 있었다

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도 고령운전 사고를 막기 위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운전면허 자진 반납제’다. 국내서 가장 먼저 시작한 지자체는 부산으로, 부산은 고령 운전자가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면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제공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부산은 2017년 대비 2018년 고령 운전자 유발 교통사고 사망자가 42% 줄었다.

서울 양천구 및 경기 일부 지역에서도 해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양천구는 고령 운전자가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면 10만 원이 충전된 선불 교통카드를 지급한다. 시행 후 1월 한 달 동안 약 170여 명의 고령운전자가 자발적으로 면허증을 반납했다. 이는 양천구가 목표로 잡은 ‘2019년 240명 반납’의 74%에 달하는 수치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7%가 넘는 일본은 이미 지난 1998년부터 운전면허 반납제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교통요금 할인·우대, 면허반납정기예금, 구매물품 무료배송 등 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 덕에 지난 2015년 기준으로 28만 5514명이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만약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 반납 대신 갱신을 원할 시, 69세 이하면 면허 유효기간 5년, 70세 이상이면 4년, 71세 이상이면 3년 등으로 각각 유효기간을 단축했다.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간이치매검사 등을 통과해야만 고령자 강습을 받고 면허를 갱신할 수 있게 했다.

운전면허 자진 반납제에 대한 고령 운전자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서울 양천구 1호 운전면허 자진 반납자인 김기륜(74) 씨는 “3년 전만 해도 괜찮았던 시력과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고, 위급한 순간에 빠르게 판단하고 조치할 능력이 떨어졌다고 스스로 느꼈다”며 “마음은 젊지만, 몸은 노쇠했기 때문에 더는 운전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면허를 반납했다”고 말했다.

반면, 반납제 등 고령자 운전자에 대한 조치가 ‘이동권 제약’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네티즌은 “67세 우리 엄마는 10년 넘게 운전했다. 혼자 운전해서 병원 다니시고 주차는 나보다 더 잘한다. 몇 년간 대중교통을 타지 않은 노인에게서 운전면허를 가져가면 답답해서 어찌 살라고?”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인간극장> 보니까 90세 넘으시는 분이 용달차 몰며 농사를 잘만 짓더라. 건강하면 무엇인들 못 하리. 몇 노인분들이 사고 냈다고 몰아붙이지 마라”고 혀를 찼다.

일각에서는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뺏는 것보다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고령 운전자들이 운전할 수 있는 편의 환경을 더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별도 표식, 차선변경 우선권 등이다. 한 네티즌은 “누구든지 나이는 먹는다. 규제보다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존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백성문 변호사 역시 CBS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75세 이상 운전자라는 표시가 있으면 다른 운전자가 양보하고 우선권을 줄 수 있다. 교통 표지판도 크게 하면 된다. 무조건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고 운전하지 말라는 것은 반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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