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튜디오에서만 찍어야 해?’…관습에 도전한 한 사진작가를 기억하는 곳
상태바
‘왜 스튜디오에서만 찍어야 해?’…관습에 도전한 한 사진작가를 기억하는 곳
  • 취재기자 이종재
  • 승인 2019.02.17 2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국 사진작가 노만 파킨슨 회고전 ‘스타일은 영원하다(Timeless Style)'…시대를 뛰어넘어 울림을 주는 혁신적인 시선 / 이종재 기자
‘스타일은 영원하다’ 전시가 진행 중인 부산시민회관(사진: 취재기자 이종재)

우리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혁신하고 후대에 그 영향을 미친 사람에게 위인이나 거장이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패션 매거진 ‘보그(Vogue)’와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전속 사진가로 유명한 노만 파킨슨(Norman Parkinson, 1913~1990)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그를 패션 사진에서 ‘혁신’을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가 사진계에 일으킨 변화의 바람은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을 확인하려면 부산 범일동에 위치한 부산시민회관을 방문하면 된다.

‘스타일은 영원하다’ 전시 취지를 설명한 글. 패션 매거진 ‘보그(Vogue)’와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전속 사진가로 유명한 노만 파킨슨(Norman Parkinson, 1913~1990)은 패션 사진계에 혁신의 바람을 불고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종재).
파킨슨의 사진을 돋보이게 한 것은 사진 속 여성들의 역동성이었다. 당시 사진 안의 여성은 대부분이 정적이고 수동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파킨슨의 사진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혁신이다.(사진: 취재기자 이종재).

노만 파킨슨이 당시의 사진 관습에 도전했던 모습은 부산시민회관 소극장 1층 갤러리에서 ‘좀 튀는 패션 매거진’이라는 이름의 코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막 사진계에 발을 들일 때에 유행은 정적인 실내 스튜디오 사진이었다. 주로 18세기 초상화나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 자세를 재현하는 게 목적이었다. 파킨슨은 이런 트렌드를 거부하고 스튜디오 바깥으로 나갔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좀 튀는 패션 매거진’은 그가 찍어왔던 패션 사진에 굉장히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파킨슨이 찍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색감도 다른 사진과는 달리 보이게 만드는 요소였다. 하지만 그보다 파킨슨의 사진을 돋보이게 만드는 건 사진 속 여성들이 보여주는 역동성이었다. 당시 사진 안의 여성은 대부분이 정적이고 수동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파킨슨의 사진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혁신이다.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예전에 비해서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인 사진 모임에서는 수동적인 모습의 여성 사진이 더 흔하다. 그런 점에서 노만 파킨슨이 만들어 낸 혁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수십 년은 시대를 앞서간 사진작가다.

다만 보는 시선에 따라 파킨슨의 사진을 달리 평가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사진이 획일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갤러리에 전시된 그의 작품 열에 아홉은 백인 여성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가 패션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시기가 해외여행을 하기 어려운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파킨슨은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수십 년은 시대를 앞서간 사진작가다(사진: 취재기자 이종재)..
파킨슨이 찍은 영국 왕실 사람들의 사진은 파격이나 혁신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왕실 사람들의 우아하고 고상한 느낌을 사진으로 잘 담아냈다. 달리 말하면 노만 파킨슨은 혁신을 이끌 능력이 있음과 동시에 전통에 대한 존중은 물론 이를 잘 담아낼 능력도 갖춘 사진작가였다.(사진: 취재기자 이종재).

그렇다고 노만 파킨슨이 항상 혁신만 생각하는 사진작가였을까? ‘스타일은 영원하다’ 전시의 다른 면을 보면 꼭 그랬던 건 아니다. 소극장 2층에서 전시 중인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코너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영광스러운 순간들’은 그가 영국 왕실의 사람들을 찍은 사진을 모아 놓은 코너다.

그곳의 놓인 영국 왕실 사람들의 사진은 파격이나 혁신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왕실 사람들의 우아하고 고상한 느낌을 사진으로 잘 담아냈다. 달리 말하면 노만 파킨슨은 혁신을 이끌 능력이 있음과 동시에 전통에 대한 존중은 물론 이를 잘 담아낼 능력도 갖춘 사진작가였다.

노만 파킨슨의 상반되는 두 모습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혁신을 만들어 낸 거장은 이미 지나간 것에도 어느 정도 정통하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은 앞으로만 나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킨슨의 사진을 보면 꼭 그런 것만 같지는 않다. 창의성도 기초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날 ‘스타일은 영원하다’를 찾은 관람객의 반응도 좋았다.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유경(26) 씨는 “노만 파킨슨이라는 사진작가는 이번에 전시를 통해 처음 알았다”며 “무엇보다 사진의 색감이 예쁘고 강렬해서 옛날 사진이라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다른 관람객인 정모 씨는 “예전에 같은 전시가 타지역에서 열렸을 때는 관람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이번에 노만 파킨슨의 사진을 부산에서도 관람할 수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더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노만 파킨슨의 다른 사진들도 관람할 수 있다. 각각 ‘스트리트 포토의 매력’, ‘노만 파킨슨의 뮤즈’, ‘그의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는 것’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으니 유심히 지켜볼 만하다.

한편 오는 4월 30일까지 계속되는 '스타일은 영원하다' 전시는 부산시 동구에 위치한 부산시민회관 소극장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관람시간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입장 마감 오후 7시)까지다. 가격은 성인 8000원, 학생과 노인은 3000원에 관람할 수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