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의 도화선이었던 2∙8 독립선언 100주년, 도쿄서 외쳤던 ‘대한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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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의 도화선이었던 2∙8 독립선언 100주년, 도쿄서 외쳤던 ‘대한독립’
  • 취재기자 류효훈
  • 승인 2019.02.0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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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독립선언 낭독됐던 재일본한국 YMCA 회관, 현재는 세탁소가 있는 건물로 바뀌어 / 류효훈 기자
2∙8 독립선언서가 낭독됐던 재일본한국 YMCA 건물 모습(사진: 서경덕 교수 인스타그램 캡처).

“조선청년독립단은 아(我) 2천만 민족을 대표하야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만국의 전에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이는 오는 8일 100주년을 맞이한 한국을 식민 지배했던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일본 유학생들이 외쳤던 2∙8 독립선언서의 서론이다.

최초의 순수한 학생운동이자 3∙1 운동을 촉발시켰던 2∙8 독립 선언은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직전인 1918년 11월에 미국 의회에서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을 계기로 시작됐다.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은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당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적용됐고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를 담은 책인 <3∙1 운동의 배경과 독립선언>에 따르면, 민족자결주의의 한계를 알고 있었던 조선인 일본유학생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 간행되는 영자신문에 미국 교포들의 독립운동이 보도되자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조선인 일본유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의 방도를 모색했던 것.

1919년 1월 6일 조선인 일본유학생들은 동경 시내 재일본한국 YMCA(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대회를 개최했다. 서춘, 이종근, 박정식, 최근우 등이 교대로 등장해 우리들도 구체적인 독립 운동을 전개할 것을 주장했다. 시기상조론도 있었으나, 일본 내각의 각 대신과 각국 대사에게 독립청원을 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후 조선인 일본유학생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는 한편, 파견된 신한청년당(상해에서 조직된 우리나라 청년들의 항일독립운동단체)의 이광수에게 2∙8 독립선언서 작성을 맡겼다. 이광수는 조선청년독립단(독립단)의 명의로 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집필한 뒤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했다.

이 문서들은 인쇄, 등사, 타이프 등 가능한 방법이 모두 동원되어 인쇄됐고, 동경에서 30년 만에 큰 눈이 내렸던 1919년 2월 8일 일본 귀족원, 중위원의 의원들, 정부 요인들, 각국 주일대사들, 내외 언론기관 앞으로 전달됐다.

재일본한국 YMCA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에 따르면, 이 날 오후 2시부터는 제일본동경조선 YMCA에서 조선유학생 학우회 총회라는 명목 아래 400여 명의 남녀 조선인 유학생들이 모였다. 독립단 대표 11명의 서명이 들어간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뒤에 일본경찰관들이 난입해 이들을 검거했다. 11명 중 2명을 제외한 9명이 체포됐지만, 독립운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2∙8 독립선언은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보도될 정도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2∙8 독립선언서는 3∙1 독립선언서에 참고됐고 경찰관들의 체포를 벗어난 일부 학생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전국 방방곡곡에 독립만세 소리가 메아리치는 3∙1 독립운동 전개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2∙8 독립선언이 낭독됐던 당시 재일본한국 YMCA 회관은 현재, 세탁소가 있는 건물로 바뀌었다(사진: 서경덕 교수 인스타그램 캡처).

전국적으로 펼쳐졌던 3∙1 독립운동의 시발점인 2∙8 독립선언이 일어났던 재일본한국 YMCA의 회관은 100년이 지난 현재 어떤 모습일까. 서경덕 교수에 따르면, 현재는 그 흔적을 알아 볼 수 있는 어떠한 표식도 없을 뿐더러 세탁소가 있는 건물로 바뀌었다.

서경덕 교수는 7일 SNS을 통해 “다행히 (우리) 독립기념관 측에서 건물주를 설득해 ‘2∙8독립선언터’라는 동판을 설치하거나, 건물 일부를 기념관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작은 기념관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국민성금으로 만들어서 더욱더 의미가 있는 곳으로 후대에 널리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도화선이 됐던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행사가 일본 공경과 서울에서 오는 8일 오전 11시 동시에 열린다. 정작 2∙8독립선언이 있었던 건물은 흔적도 없이 다른 건물로 바뀌었고, 이제야 '독립선언터'였다는 동판이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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