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스스로 만들어서 즐긴다...게임 창조자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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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스스로 만들어서 즐긴다...게임 창조자 열풍
  • 취재기자 김성환
  • 승인 2015.06.18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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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로 게임을 직접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같이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생 방모(26) 씨는 친구들과 테이블 주위에 앉아 즐기는 성배전쟁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이 게임 이름은 <성배전쟁>이라는 전쟁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따왔다.

▲ 성배전쟁 게임 진행 스크랩 샷의 모습. 게임 진행자가 단체 카톡으로 진행 상황을 실시간 중계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성환).

이 게임은 TRPG(Table-talk Role Playing Game) 형식이다. TRPG란 컴퓨터 없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플레이어들끼리 정해진 대화를 주고받거나 주사위를 굴리며 진행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들 간의 시간과 장소를 맞추기 쉽지 않아서, 요즘은 나누는 대화를 카카오톡에 단체톡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 진행자인 GM(game master)이 게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면, 게임은 원형의 맵을 순서대로 이동하여 조우한 2명이 전투를 하는 방식이며, 플레이어들은 GM이 설명해주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그에 맞게 대화를 하며 자신의 캐릭터를 응원하고 연기한다. 성배전쟁의 승리 조건은 게임을 진행하여 수많은 전투를 거친 후 남는 최후 1인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 카카오톡 단체톡을 통해 GM이 플레이어들에게 게임 진행과 상황을 중계하는 모습을 삽화로 그린 것(그림: 취재기자 김성환).

방 씨는 이 게임을 그의 친구와 만들어 프로토타입(prototype: 게임의 본격적인 개발에 앞서 재미요소나 구현 가능성 등을 검증하기 위해 제작하는 시제품)으로 즐기며 보완을 해나갔다. 그는 이것을 어느 순간 독자적으로 보완 보수하여 하나의 완성된 게임으로 만들어 냈다. 그는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성은 플레이어 개인이 캐릭터의 스킬과 능력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참가자들의 창의성과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그 점을 보고 싶어서 이 게임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열심히 만든 게임을 해본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호평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호평을 받은 부분은 자신이 상상하거나 창작한 것을 게임 진행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게임에 자주 참여하는 경성대 경영학과 윤모(21) 씨는 시중이 많이 떠도는 상업용 온라인 게임은 게임에 대한 개선점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안 가는데 반해, 이런 오프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자작게임(스스로 만든 게임) 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좋다. 그는 “사실 이런 게임은 즐기면 좋지만, 대체로 진행자가 고생을 많이 한다. 그래서 게임을 직접 만들고 진행해주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같은 경성대 컴퓨터공학과 하모(20) 씨도 성배전쟁 게임에 참여해 본 후 “이 게임이 매우 참신하고 이런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진행자, 혹은 제작자와 참가자가 함께 모래성을 쌓아가는 과정이 매우 즐겁다”고 말했다.

한 개인이 게임을 만들기도 하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팀을 조성해 단체로 게임을 만들기도 한다. ‘NerD Pro9rAmmer(’너드 프로그래머,‘ 줄여서 ’너프‘라고 부름)’는 마음 맞는 친구 5명이 모여 자작 게임을 만드는 팀이다. 각 대문자는 멤버들의 닉네임 첫 글자를 딴 것이고, 그 중 g는 9와 생김새가 비슷하고 ‘그(구)래머’라는 유사한 발음을 이용한 재치 있는 작명이다.

▲ ‘NerD Pro9rAmmer’의 인터넷 카페 베너(사진: 인터넷 캡처).

이들은 ‘모에? 그게 모에요?’라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드는 중이다. 이는 컴퓨터를 통해 구동되는 게임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연애 시뮬레이션이란 사람이나 사람과 유사한 인격체와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묘사한 게임을 총칭하는 컴퓨터 게임 장르명이다. 주로 플레이어, 즉 게임 속 주인공의 대화 선택지를 골라서 진행하며, 플레이어가 마음에 드는 여자와 연인으로 맺어지는 것이 이 게임의 목적이다.

너프 게임은 남자 주인공이 연애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내적 성숙과 성장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너프는 어느 날 친구들끼리 모여 얘기를 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런 게임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재미삼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커지는 스케일과 진지해지는 스토리, 그리고 지인들에게 비밀리로 하고 있다가 공개하자는 생각에 게임 만드는 것에 대해 진지한 주제와 깊이가 더해졌다.

이들 중 컴퓨터 계열 학과에 다녀서 전공 공부에 큰 도움을 받는 멤버가 있는 반면, 전혀 관련 없는 학과를 다니는데도 오로지 즐기기 위해 게임 만드는 것에 참여한 멤버도 있다. 또 학과와 관련 없는 자신만의 재능으로 힘이 되는 멤버도 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지식과 재능으로 하나의 게임을 차근차근 만들어간다.

하지만 어려운 점도 있다. 학생들이다 보니 시험기간이 되면 시험 공부하랴, 게임 구상하랴 애를 먹는다. 결국 시험을 포기하고 웃지 못 할 성적을 받은 멤버가 있을 정도다. 또 여러 사람이다 보니 의견 조율이 힘든 경우도 있다. 한 멤버는 조별과제를 할 때 느끼는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친한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차근차근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존중하며 조금씩 맞춰나간 결과, 지금 기본 스토리 설정을 다 끝마치고 이제 프로그래밍 단계까지 왔다고 한다.

너프 참여자들은 게임을 직접 만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낀다. 미래에 이것이 얼마나 자신들의 삶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들 중 한 참가자는 “좋은 추억거리 하나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만큼 최대한 재밌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1) 씨는 보드게임을 직접 만들었다. 중학교 때 한 게임을 토대로 만든 게임을 대학교 때 대폭 개편해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다. 이 게임의 이름은 ‘에네비’다. Nobel Hero Battle의 약자에서 따왔다. 본인이 직접 쓰고 있는 판타지 소설을 배경으로, 특이하게 특정 영웅이나 직업군이 아닌 주변 친구들을 모티브로 하여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만들었다.

에네비는 턴제(制) 전략 게임(Turn-based Strategy)이다. 턴제 전략 게임이란 플레이어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전략 게임의 한 장르로, 일반적으로 거시적인 전략을 다루는 전쟁 게임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에네비는 한 플레이어가 차례를 끝내면 다음 플레이어의 차례가 돌아오는 플레이 방식이 아닌, 한 턴에 모든 플레이어가 동시다발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보드게임은 테이블에 참가자들이 모여서 카드로 캐릭터를 움직이며 진행한다. 이 보드 게임은 1 대 1 혹은 다수 대 다수로 상대의 체력을 0으로 만드는 쪽이 승리한다.

▲ 에네비를 하는 모습(그림: 취재기자 김성환).

김 씨는 캐릭터 카드까지 손수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을 캐릭터화해서 그들에 맞는 공격, 스킬, 그리고 카드에 그려지는 그림과 대사를 구상하는 게 정말 즐겁다. 그는 “친구들이 자신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보고 웃으며 정감을 가져 게임을 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혼자서 게임을 구상하고 도구들을 만들다 보니 카드를 제작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 회의감이 들었다. 그는 “게임을 만들다가 내가 왜 이런 걸 하나 싶기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들의 반응을 보거나, 내가 해냈다는 자기만족에 버텨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에네비를 플레이했던 대학생 임모(21) 씨는 중학교 때 처음 만들어진 것을 시작으로 지금 버전까지 쭉 지켜봐오고 제작 과정에 참여했던 친구다. 그는 “이 게임은 오랫동안 함께 해왔지만 가끔 생각날 때 하는 게임이라 할 때마다 새로워지는 것 같은 느낌인 ‘메이플스토리(넥슨의 한 온라인 게임)’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동의대 학생 박재형(21) 씨는 제작자가 자신 주변의 친구를 바탕으로 만든 캐릭터들로 진행되는 게임이라는 것에서 특이한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게임 내용으로 보면 진행 방식 자체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방식으로 게임이 흐르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구석구석 제작자가 생각한 게임이 끼여 있고 그것을 위해서 필드 맵까지 제작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 에네비 캐릭터들(사진: 취재기자 김성환).

자작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미래에 도움될 것 같지 않아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게임을 직접 만든다. 한 자작 게임 제작자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즐거워서, 그런 게임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아서 게임을 만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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