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많이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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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많이 알아야?
  • 경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박기철
  • 승인 2013.01.0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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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철 교수

파편적 암기 지식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 아는 것이 힘이다(베이컨),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스피노자) 등등… 뭐 이런 격언식의 명언들은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명언들을 학교 다닐 때 사회 시간에 많이 배웠습니다. 이런 명언들을 많이 아는 사람들은 좀 유식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17세기에 영국의 철학자 누가 무슨 말을 했더라!”라는 말로 자신의 유식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TV 퀴즈 프로그램에서도 어느 명언을 얘기하며 이 명언을 말한 사람의 이름을 묻는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명언을 많이 알면 유식한 것일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 명언을 누가 말했는지에 대한 단편적 암기 지식만 있고 그 말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에 대한 복합적 이해 지식은 없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암기지식은 우리 머릿속 지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파편적 지식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악법도 법이라는 명언

가령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사회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소크라테스가 그런 명언으로 법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며 아무 저항 없이 죽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단편적 암기 지식만 있고 그 말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에 대한 복합적 이해 지식이 없는 경우입니다. 사실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는 말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자들에게 아주 근사한 말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맞는 법을 만들어 놓고 무조건 복종하라며 국민들에게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는 데 적당한… “저 훌륭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시고 죽은 경우도 있지 않았느냐? 법은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것이야!” 그러나 사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게 된 앞 뒤 맥락의 연유를 알고 보면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정반대의 의미를 가집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당시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붙잡혀 들어갔을 때 탈출할 수도 굴복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독배를 마시며 기꺼이 죽었습니다. 이 때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악법도 법인가?”라는 반항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할 수 있는 가장 무게 있는 저항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악법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죽었던 것이지요.

통상적 통념의 위험

이렇게 우리는 어떤 단편적인 암기지식만 가지고 사태의 본질에 대해 전혀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상식 퀴즈 수준의 얇은 지식만 가지고 유식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상식을 영어로는 ‘common sense'라고 하는데 여기서 ‘common'은 통상적이라는 뜻인데, 통상적이면 통념적이기 쉽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 소크라테스>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통념입니다. 통념적인 상식은 우리를 몽매하며 우둔하게 만듭니다. 소크라테스가 악법이라도 지키기 위해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독배를 마시고 기꺼이 죽은 것으로 알듯이… 통상적인 통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식을 전후좌우 연유와 맥락으로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게 전후좌우로 깊게 본 상식만이 우리를 진정 유식하게 하는 것이지요. 상식을 많이 알아야 유식해지기보다 전반적 맥락을 이해해야 유식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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