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아’ 마실게. 너는 뭐 마실래?” “나는 ‘따아’ 마실게.” 중년인 김영남(51, 경남 진주시) 씨는 요즘 친구들과의 색다른 대화가 즐겁다. 신세대의 재밌는 신조어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화 중 사용한 ‘아아’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이고, ‘따아’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이다. 김 씨는 20대 자녀에게 배운 이런 신조어를 사용하면서 한층 자녀와의 관계가 가까워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고 있는 신조어는 이제 1020세대를 넘어 4050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영남 씨는 “요즘 텔레비전만 봐도 신조어를 배울 수 있다. 별걸 다 줄이는 ‘별다줄’ 세상”이라고 말했다.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는 신조어는 특히 1020세대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된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등장한 단어 ‘아싸’는 아웃사이더(outsider)의 줄임말이다. 아싸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밖으로 겉도는 사람을 일컫는다. 반대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자신이 속해있는 단체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을 보고 ‘인싸’라고 말한다. 인싸는 인사이더(insider)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신조어는 대학에서 학과 생활에 활발한 인사이더들이 쓰는 용어라는 뜻으로 ‘인싸용어’라고 불리기도 하며, 급식을 먹는 10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 ‘급식체’라 불리기도 한다.
새롭게 생겨나는 신조어들은 장르가 다양해 난이도가 높다. 단어를 줄이고, 초성으로 나타내고, 글자를 뒤집어 표현하고, 영어와 한글을 섞기도 한다. 어려운 신조어들은 유추가 불가능하고 설명을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신조어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등장하며, 심지어 신조어를 맞히는 퀴즈를 따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해하기엔 어렵지만 재밌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신조어는 활발하게 쓰인다. 평소 다양한 신조어를 즐겨 쓰는 대학생 김지은(21, 경북 포항시) 씨는 “친구들에게 난이도 높은 신조어를 알려주는 재미가 있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신조어를 전파하는 것이 내 나름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전했다.
이수은(23, 경남 창원시) 씨도 최근 들어 신조어를 쓰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그의 채팅방에는 새로 생겨난 따끈따끈한 신조어들이 왕성하게 사용되고 있다. “댕댕이 커여운거봐”, “이 노래 띵곡인데? 렬루 좋다” 등 일명 자기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인 인싸들이 사용한다는 인싸용어가 가득하다. ‘댕댕이’는 멍멍이로 강아지를 말하며 착시현상으로 ‘멍’의 ‘ㅁ’과 ‘ㅓ’가 ‘ㄷ’과 ‘ㅐ’의 ‘댕’으로 보여 생겨난 신조어고, ‘커엽다’는 귀엽다는 뜻으로 ‘커’를 자세히 보면 ‘귀’로 보이는 착시현상 때문에 생겨난 신조어다. ‘띵곡’ 역시 착시현상으로 생겨난 신조어로 ‘명곡’을 뜻하며, 렬루는 ‘real’을 빨리 발음한 ‘렬’과 ‘루’의 합성어로 ‘정말로’라는 뜻이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신조어에 대해서 이수은 씨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조어는 시대상을 반영한 재치있는 말들이 많고, 새로운 현상을 나타낼 때 적절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글 파괴라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난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런 용어를 낯설어 하는 이들도 있다. 대학생 정모(21, 경남 진주시) 씨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대화할 때 낯선 신조어에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아침부터 룸곡 흘렸다”는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반응을 보여 친구들의 웃음을 샀다. ‘룸곡’은 ‘눈물’을 뒤집어 나타낸 것이다. 그 뒤로 뜻을 모르는 신조어가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대화를 회피하는 버릇이 생겼다. 신조어를 배워볼 생각이 없는지에 대해, 그는 “신조어가 한 둘이면 모르겠지만, 너무 많고 난해해 쉽게 익혀지지 않는다”며 “오히려 신조어 때문에 친구들과 언어 격차가 생기는 것 같다”고 답답함을 전했다.
4050세대에게 신조어는 어떻게 다가올까? 직장인 이모(54, 경북 포항시) 씨는 신조어를 잘 모르지만 어린 직장 후배들에게 재밌는 말들을 많이 배운다. 그는 얼마 전에 ‘#G(샵지)’라는 말을 배웠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는데 이는 ‘시아버지’를 빠르게 발음한 것이었다. 그는 “후배들이 가끔 신조어를 섞어 얘기하곤 하는데 이해가 어렵지만 물어보면서 배우고 덩달아 어려지는 기분이 들어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영업자 이모(53, 경남 진주시) 씨는 여가시간에 텔레비전을 보고 배운 신조어 몇 가지를 딸에게 쓰곤 한다. 그는 “딸과 대화가 줄어들어 걱정이었는데 신조어를 사용해 대화하니 딸이 재밌어 하고 대화가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조어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신조어 사용이 인기를 끌면서 생긴 문제점도 있다. 계속해서 생겨나는 신조어들이 한글과 문법을 파괴해 10대들에게 잘못된 국어 지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국어교사 김모(36, 경남 진주시) 씨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국어 파괴 현상을 몸소 느끼고 있다. 그는 여기저기서 낯선 신조어가 들려올 때면 수많은 생각이 든다. 그는 “학생들은 아무 생각 없이 쓸지라도 국어교사인 내 입장에서는 올바른 말로 고쳐줘야 하나, 그냥 넘어가야하나 수없이 고민한다”고 전했다.
청소년의 언어 현상에 대해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관계자는 시빅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교육현장에서 교사와 학부모가 직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단순히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교정할 수 있도록 지시를 해주는 것이 청소년들과 소통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계자는 청소년들의 언어 현상에 대해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들도 자라면 더 이상 그런 언어를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므로 일종의 은어 사용은 사회적 분위기에 맡기면 자연히 소멸될 것 같다”고 밝혔다.
[신조어 사전] 영어를 한글로, 혹은 한글을 영어로, 혹은 마구 섞여있는 신조어 글자를 거꾸로 뒤집어 사용하는 신조어 착시현상으로 인해 다르게 보이는 대로 발음하는 신조어 단어를 줄여 말하는 줄임말 신조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