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김혜경 편③] "개방적 도시 부산이 나의 크리에이티브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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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김혜경 편③] "개방적 도시 부산이 나의 크리에이티브를 키웠다"
  • 차용범
  • 승인 2018.12.3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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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계의 우먼파워’ 김혜경에게 마케팅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김혜경 편②]에서 계속. 이 글은 인터뷰 시점이 5년 전 2013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산의 개방성과 다른 세계에의 동경... 큰 영향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컸다. 지금 동구 수정동 봉생병원 옆, 미성극장 9남매 중 막내딸이다. 어릴 때, 웬만한 영화는 다 봤다(가끔은 의도와 관계없이 어린이 관람불가 영화도).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은커녕, 호기심이 커질 대로 커진 아이는 새로운 것도 쉽게 이해하고 흡수했다. 스펀지처럼 외부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참 빨랐던 것이다. “어릴 때 그 동네, 좀 못사는 동네였다. 친구들을 만나며 삶의 어두운 면도 많이 봤다. 다양한 세상 풍경을 자연스럽게 익힌 것, 그야말로 산 공부, 큰 공부였다”, 그의 자부다.

“글 쓰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난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재주밖에 없었다. 책도 많이 읽고 책 욕심도 많지만, 그림이나 음악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음악 좋아하는 오빠도, 그림 좋아하는 언니도 있었으니. 어릴 때부터 팝송이나 클래식도 많이 듣고 영화도 많이 보고….” 공부를 많이 안 해도 눈치로 남의 말 대충 알아듣는 순발력이 생겨, 지금도 젊은 후배들과 얘기할 때 나름대로 따라가는 수준이다.

Q.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한마디로 선생님을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교실 앞자리에 앉아서 말 잘 듣는 학생이 아니라, 뒷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불량학생은 아니었다. 반장도 도맡아 하던 아이였으니까. 뭐랄까,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다 보니 선생님이 싫어하는 학생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대학 때도 참 별났다. 시인이 되겠다며 시 쓰고, 노래 좀 부르고, 클래식 기타 좀 튕겼다. 운동권도 들여다봤고, 야학에 공장 일까지 해봤다.

Q. 부산에서의 추억이라면? 그 추억이 ‘크리에이티브’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수정동 집 3층에, 옥상이 있었다. 거기에 오르면 지금의 부산북항을 넘어, 대마도도 보였다. 옥상에서 바다 보기를 참 좋아했던 시절, 집에선 일본 TV․일본 드라마도 많이 봤다. 일본 노래를 좋아하며 동경하고…, 부산은 그만큼 멀리 볼 수 있는 곳, 다른 세상에 관심을 갖게 하는 도시 아닌가.” 그는 자라면서 항상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생각, 언니오빠가 대학 간 서울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방적 도시 부산에서 다른 세계, 다른 문화를 동경한 것은 크리에이티브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믿고 있다.

김혜경 전무는 2012년 광고진흥발전 유공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사진은 남편과 기념촬영하는 모습(사진: 차용범 제공).

Q. 부산만의 매력,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단연 바다를 끼고 있는 개방적 분위기, 삶의 활력을 느끼게 하는 문화적 바탕이다. 그래서일까, 한 군데 깊이 몰입하기보다는 빨리 변화하는데 관심이 큰 것 같고….”

Q. 부산에는 얼마나 자주 오시나?

“그리 자주 가진 못한다. 근래 부산국제광고제에, 또는 크루즈를 빌려 선상 자동차 런칭쇼를 하러 갔다. 친구도 만나고 먹기도 하고…, 요즘 너무 많이 바뀌었더라. 해운대와 광안리 일원을 보면 외관으론 싱가포르나 칸느 같은 휴양도시 느낌이 들더라. 내가 살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풍광의 도시더라.”

 

도시 마케팅, 외형적 성장에서 감성적 매력 강조할 때

세계 광고계의 흐름을 늘 추적하며 세계적 자동차 그룹의 광고를 총괄하는 광고 전문가에게 묻고 싶은 바는 또 있다. 도시 마케팅 얘기다. 근래 유수한 세계도시들은 흥망을 건 무한경쟁을 거듭하며 도시 마케팅에 열심이다. 그저 도시를 알리려는 노력을 넘어,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며 그 매력을 키워가려는 노력이다.

부산 역시 남부권 중추 도시에, 해양 물류, 영화 컨벤션 같은 강점을 내세우며 ‘세계도시 부산’을 지향한다. 전문 광고인, 그는 부산의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볼까? 사실 이 부분은 그에게 조금은 부담스러운 주제일 수 있다. ‘예습’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는 논리적이기보다는 감각적인 눈으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너무 ‘큰 것’에 치중하느라, ‘살고 싶은 곳’, ‘인재 끌어들이기’, 이런 도시매력을 자극하는 부분이 좀 약한 듯하다”고. 지금까지 도시의 물리적 외형적 성장을 중시했다면, 이제 사람과 감성적 매력이 한데 어울려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경쟁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Q. 세계 유수도시의 마케팅 기법 중 참고할 만한 것은?

“우선 뉴욕의 ‘I Love New York' 캠페인이 생각난다. 알다시피 뉴욕주의 도시와 촌락 모두를 대상으로, 모든 New Yorker에게 홈타운의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한 슬로건이다. 뉴욕시민부터 ’내가 뉴욕을 사랑해야 하는구나‘를 깨우치고 실천했다. 뉴욕은 종래의 좋지 않은 이미지(폭력, 슬럼가 등)를 이 캠페인으로 극복, 도시적이고 시민적 역량을 깨우치며 인재를 빨아들이는데 성공했다.” 뉴욕과 부산은 도시 위상과 입지적 여건이 비슷한 만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효과적인 도시 브랜딩 사례를 배울 만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Q. 당신은 명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부산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블루(blue)다. 블루, 한편 차분하며, 한편 빨강보다 더 화려한 색깔이다. 사랑, 행복, 슬픔…, 이런 것을 다 포용한다. 바다도시 부산, 색깔 ‘블루’와 차별적 특성을 매치시켜 도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부산 슬로건, “단어 좋으나 차별성 없다” 명확한 이미지 보강을

Q. 부산의 도시 슬로건 ‘Dynamic Busan'에 대한 생각은?

“글쎄, ‘다이내믹’엔 행동성만 있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단어는 좋으나 이미지를 만들 깊이가 모자란다. ‘차별화’의 중요성을 놓친 것은 아닐까? 난, 깊이 고민하지 않았지만, 부산은 두루 고민해야 할 부분 아닐까…” 그가 강조하는 바는 뚜렷하다. 고객의 마음속은 전쟁터라는 것, 브랜드 관리의 요건으로 명쾌한 메시지와 일관성 두 가지를 빠트릴 수 없다는 것, 결국 도시 마케팅엔, 미국=컴퓨터와 비행기, 독일=엔지니어링과 맥주, 스위스=은행과 시계, 프랑스=와인과 향수, 이탈리아=디자인과 의류 같은, 명쾌한 포지셔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상 브랜드 슬로건을 정하기란 참 어렵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역시 한때 ‘다이내믹 코리아’였다. 그 뒤로 ‘미라큘러스 코리아(Miraculous Korea)’, ‘어메이징 코리아(Amaging Korea)’ 같은 안이 나왔으나, 지금은 옛 것은 쓰지 않고 새 것은 선정하지 못한, 그런 상황이다. “세계 유수국가 중 다이내믹하지 않은 나라가 있는가?” “IT의 발전을 ‘기적’으로 연결시킨 것 부분적 편향 아닌가?” 같은 논란에 걸린 탓이다. 단, 한국관광공사는 관광 브랜드(슬로건)로 '코리아 스파클링(Korea Sparkling)'을 쓰다, 지금은 ‘Be Inspired(영감을 받다)’를 사용하고 있다.

Q. 부산국제광고제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더 큰 발전을 위해 조언한다면?

“광고쟁이를 위한 축제의 성격이 보다 뚜렷했으면 좋겠다. 메이저 광고회사 직원들이 참여하고 작품 내는데 자부심을 느끼게 하려면 ‘성격’이 좀 있어야 한다. 나, 부산국제광고제가 아직 무색무취하다고 본다. 한 광고제가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은 ‘모든 것을 안 한다’는 말과 통한다. ‘칸느’는 오직 ‘크리에이티브’에 주목한다. 새로운가, 아닌가로 좋은가 안 좋은가를 판단한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김혜경 편④]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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