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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기적...어느 장애 소녀의 장대(長大)한 삶/ 김민남

부산 해운대에서 동해안따라 조금만 올라가다 보면 기장읍이 있다. 그 구석진  동네에 공공임대주택의 몇 평짜리 한 방을 찾은 건 십수 년 전이다. 지금은 절친한 친구가 된 어느 지인과 함께 그 집에 혼자 사는 한 소녀 장애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거의 온 몸을 쓰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었다. 돌봐주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오로지 정부의 '수급'에만 의지해 생활해가고 있어서 더 이상 목이 메어 뭘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후 몇 번 찾아갔지만 나도 몸이 좋지 않아지면서 인연이 끊어졌다.

최근이다. 문득 그 소녀가 생각이 나 전화번호를 뒤적여 전화벨을 울렸다. 전화를 받지 않아 한참 있다 다시 전화했다. "좀 전 전화왔을 때 강의 중이어서 못받았습니다. 누구시죠?" 소녀 난이의 목소리다. 지금은 설흔을 넘겼을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목소리도 밝고 맑고 힘이 찼지만, 무엇보다 '수업 중'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십수 년 만에 알고 지내던 중증 장애소녀에게 안부 전화를 했더니, 설흔이 된 그녀는 장애인학을 강의하는 강사가 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따로 없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그 사이, 그녀는 스스로 뼈를 깎고 눈물나는 노력을 했다. 휠체어에 몸을 맡기면서도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장애인학'(學)을 연구해서 지금은 장애인과 때로는 주부를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하루 24시간도 부족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전화선 너머서 "호호" 하고 여유있는 웃음까지 보내왔다. 그녀에게는 그게 지금 일상이 되었겠지만, 내게는 기적으로 들렸고,  주체하기 힘든 가슴뭉함이었다. 사람의 노력이 정말 바위도 뚫을 수 있는 것이구나, 그보다 훨씬 나은 형편인 나는 도대체 뮌가 하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렇게 힘차고 보람있게 살아갔으면 하고 나는 오늘도 맘 속으로 응원하고 기도하고 있다.

어제가 크리스마스였고, 우리는 또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연말연시의 계절을 살고 있다. 요즘은 신문이나 방송에 몇몇 대기업 성금 외에는 '불우이웃돕기' 기사를 전에 만큼 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더 풍요로워져서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웃의 따뜻한 손길이 멀어지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 동네 어느 곳엔가는 이 엄동설한에 헐벗고 쓰린 배를 움켜쥐는 이웃이 있을 수 있고, 또 아무리 복지천국이라 해도 그늘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특히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고 공약(公約)한 분들은 다시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볼 때다.

2018년 12월 25일, 묵혜( 默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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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소녀가장#장애인학#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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