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김혜경 편①] "광고, 판매수단 넘어 사람 마음 사는 것… 난, 진솔한 광고로 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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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김혜경 편①] "광고, 판매수단 넘어 사람 마음 사는 것… 난, 진솔한 광고로 승부한다"
  • 차용범
  • 승인 2018.12.25 0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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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계의 우먼파워’ 김혜경에게 마케팅의 길을 묻다 / 차용범
이 글은 인터뷰 시점이 5년 전 2013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광고계의 우먼파워 김혜경(54) 이노션 월드와이드(Innotion Worldwide) 전무. 독특한 광고철학으로 성공신화를 거듭 쓰며, 국내 정상급 광고회사의 고위임원에 오른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다. 기억하는가, 011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캠페인을. 트렌드를 좇기보다 본질을 중시하는 그의 대표작이다. 지금 총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마케팅 역시 ‘잘 나가는 브랜드’를 넘어, ‘사랑받는 브랜드’를 추구한다.

총성 없는 전쟁터, 그 치열한 경쟁의 광고계에서, 전문직 여성과 아내·엄마로 당당한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세계 최고 광고제의 심사위원을 경험한 그는 세계 광고계의 흐름과 한국 광고계의 과제를 어떻게 볼까? ‘한 편의 광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마케팅 전문가는 무한경쟁을 거듭하는 세계도시들의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평가할까? 유능한 광고인을 꿈꾸거나 성공적 파워우먼을 그리는 많은 이에게 그의 생각이나 족적은 두루 새겨볼 만한 본보기일 수 있을 터이다.

 

김혜경 전무는 '한 편의 광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마케팅 전문가다. 사진은 김혜경 씨의 사무실(사진: 차용범 제공).

광고의 ‘창의성?’...진솔한 이야기 만들기

그를 우뚝 세운 나름의 광고철학부터 묻는다. “말 그대로, 본질을 중시한다. 난, 이도 저도 아닌 엉성한 퓨전이 싫다. ‘답다는 것’이 중요하다. 먹는 것은 먹는 것 답고, 통신은 통신다워야 한다. 무엇을 해도 ‘진짜’를 해야 한다.” 그는 광고를, 단순히 물건을 파는 수단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느낄 수 있는 일종의 문화로 본다.

광고 역시 영화, 음악, 미술처럼 사람을 울게도, 웃게도, 행복하게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광고를 보고 자신을 성찰하며 스스로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광고도 괜찮은 산업이요 직업이라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 말도 잘 들어주고, 잘 키워주고, 그래서 좋은 광고를 많이 만드는 것, 그것을 CD가 맡아야 할 몫으로 본다.

Q. 광고의 경쟁력을 대변하는 키워드, 그 ‘창의성’을 어떻게 생각하나?

“난, 광고의 창의성을 ‘진솔한 이야기 만들기’로 본다. 괜히 멋있게 포장하고 이상하게 기교 부린 메시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찾아내 ‘스토리’로 만드는 데 창의성의 진면목이 있다. 광고 크리에이티브(creative) 역시 ‘만드는’ 게 아니라 ‘찾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사람들이 갖고는 있어도 속에 숨어 있어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부분들을 끄집어 내주면, 사람들은 거기에 공감하며 좋아한다. 광고는 예술이 아닌, 물건 사고팔기 아닌가.”

그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같은, 그런 것이란다. 이는 바나나는 노랗다고 생각하던 고정관념을 확 깨버리는 발상이었다. 김지미․선동렬 씨가 나왔던 금융광고는 담담히 강조한다, “나는 돈을 모른다”고.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들은 돈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은 돈을 알 필요가 없다. 관리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잘 모른다"는 메시지에 굉장히 놀라며 "그렇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런 고정관념을 확 깨는 광고들이 좋다는 것이다.

Q.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SK 텔레콤 ‘스피드 011’ 산사(山寺)편이 있다. 단순화, 역발상, 상대방의 허 찌르기 같은 고수의 기법으로 이동통신 시장을 단숨에 평정했다. 그 역발상적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그때 011, 016, 019, 해서 통신사들이 다 ‘잘 터진다’고 난리칠 때였다. 사실 난, SK텔레콤팀도 아니었다. 그저 제작국장이 ‘다른 생각을 듣자’며 나에게 숙제를 준 것이다. 내가 꼭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니었으니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었지. 차라리 한발 빠져 나와 ‘꺼두라’고 말하면 고급스러운 접근이지 않겠나 생각했다. 내부에선 ‘멋진 역발상’이라고 했고, 광고주 프레젠테이션에서 SK텔레콤 부회장인가 하는 분이 주변의 강한 반대에도 ‘멋지다’며 ‘한번 해보자’고 결정했다. 그 캠페인으로, 011은 다른 브랜드와 확 격차가 났다.”

당시로선 파격적이고 색다른 접근, 그는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한다. 골프에서 “힘 빼라“고 하지 않는가. 마음을 던져버리면 오히려 잘 보이듯, 본질에 쉽게 다가갈 수 있듯, 그런 경지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후배들에게 이른다. "좋은 광고는 광고주가 만드는 것"이라고. 어떤 광고를 자기가 만들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우리가 함께 만든 것이니 굳이 자기 것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기자’ 목맨 국문학도에서 악바리 카피라이터로

광고계의 우먼파워, 그 출발은 어떠했을까? 그는 학창시절 ‘기자’에 목맨 국문과 학생이었다. 카피라이터란 ‘복사’하는 사람인 줄 알았을 정도. 광고계에 입문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글 쓰는 일밖에 없던 글쟁이, 그는 기자시험에 낙방하곤 주변의 권유로 대홍기획 공채 카피라이터로 입사한다. 친정 대홍기획은 당시 사원 30명 남짓의 조그만 회사였다. 그 회사에서 악바리 신입사원의 고군분투를 시작한 것이다.

Q. 광고 일, 어떻게 하고 있나?

“광고 일을 하려면 무엇보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일을 즐겨야 한다. 어느 정도의 승부욕과 근성이 있어야 한다. 경쟁심 없이는 광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곳은 총 안 맨 전장 아닌가.” 그래서 이 일을 하며 PT에서 이겼을 때 그 쾌감을 이루 말할 수 없다. 100점짜리 시험지를 휘날리는 느낌이다. 물론 PT 전날 밤은 시험 전날 밤과도 같고…. PT에서 이겼더라도 딱 하루 좋고, 그 뒤엔 광고주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줘야 한다. PT에서 졌을 때? 말해 무엇하랴.

2007년 김혜경 전무는 칸느 국제광고제 심사위원을 하며 세계 광고의 흐름도 느끼고 배웠다. 사진은 심사위원 당시 ID카드(사진: 차용범 제공).

Q.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단 한 명, 그 칸느 국제광고제 심사위원을 지냈는데….

“‘영어 가능’이라고 써넣은 것이 ‘영어 능통’으로 둔갑을 했던지, ‘가문의 영광’이라는 칸느 국제광고제 심사위원으로 뽑혔다. 다시는 안 가고 싶다. 힘들었다. 심사기간은 열흘, 아침 8시부터 저녁6시까지 일했다.”

그는 심사위원을 하며 세계 광고의 흐름도 느끼고 배웠을 터. “칸느에서 느낀 것? 영화도, 광고도, 점점 더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더라.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이런 식이다. 사람들이 이제 겉핥기식 광고의 실체를 알아버린 거다. 진솔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훨씬 더 도움을 주고 알만한 가치도 있으니, 진솔하게 표현한 광고를 더 가치 있게 보는 거다.”

칸느의 올 트렌드도 그랬단다. 특히 사회적 이슈를 다룬,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휴머니티(humanity), 채러티(charity)를 그린 광고가 주요 상을 두루 수상했다. 온 세계가 힘들고 많은 인류가 분노하는 시대 탓이었을까, 광고도 진정성에 많이 기운다는 느낌을 받았단다. 소속사 이노션도 여러 상을 수상했다면서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을 성취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광고인, 톡톡 튀기보다 좋은 사람부터… 많은 경험 중요

Q. 한국의 광고문화, 어떤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가까운 일본만 봐도 광고일이 전문화․세분화되어 있다. 우리 현실은 좀 안타깝다. 한국은 광고계뿐 아니라 창작하는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제작환경 역시 창작의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바쁘다. 어떨 땐 인쇄시안은 일주일, TV CM은 한 달 만에 뽑아내기도 한다.” 좋은 작품을 바란다면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확신한다. 한 편의 광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다. 광고는 문화적으로 사회를 선도할 수 있고, 광고인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직업이라는 거다. ‘광고쟁이’가 아닌 ‘광고장이’로 불리는 일도 광고인의 숙제라고 본다.

Q. 광고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얘기는?

“광고인이라고 하면 톡톡 튀고 잘난 척하는, 판에 박힌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좋은 광고인은 먼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좋은 사람은 좋은 광고를, 유쾌한 사람은 유쾌한 광고를, 따뜻한 사람은 따뜻한 광고를 만든다. 사람 됨됨이가 중요한 것이다. 다음, 그릇의 크기도 생각해야 한다.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느 정도 비워져 있는지…” 너무 꽉 찬 그릇은 새 것을 채워 넣을 구석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광고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꼭 좋은 광고인이 되세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 광고 아니면 안 돼’ 하는 발상은 배제하라는 거다. 너무 몰입하면 부담에 눌려 일 제대로 못한다고 본다. 물론 “열심히 하지 말라”는 얘기와는 다르다. 그는 많은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 광고에서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보통사람보다 더 많은 호기심과 사물을 재해석하는 눈이 필요하다, 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김혜경 편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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