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건강권 위한 생리공결제, 오남용 우려 대다수 대학은 실시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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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건강권 위한 생리공결제, 오남용 우려 대다수 대학은 실시 보류
  • 취재기자 박진아
  • 승인 2019.01.0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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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다 진단서 내고 생리주기 입력하고" 잘차 복잡하고 사생활 침해 소지 논란도 / 박진아 기자

여대생 김모(21) 씨는 한 달에 한 번 극심한 생리통에 시달린다. 그는 생리통이 심한 날에는 학교 가는 버스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김 씨는 “생리통이 심한 날에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가 고통”이라며 “그런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갈 생각을 하는 것조차 끔찍하다”고 말했다.

많은 여성이 생리통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대학들이 생리공결제 시행을 미루고 있다(사진: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이처럼 생리통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여학생들을 위해 일부 대학에서는 생리공결제가 시행되고 있다. 생리공결제는 여학생들이 생리통으로 수업을 참석할 수 없을 시, 이를 결석이 아닌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를 도입한 대학에서는 한 학기에 3일에서 5일가량의 생리 공결을 허용하고 있다.

생리공결제는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건강권과 모성 보호 확대를 목표로 교육부에 관련 제도를 시행‧보완할 것을 권고하면서 교육 현장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생리통으로 인해 결석하거나 수업을 받지 못할 경우 출결을 병결이나 병 조퇴로 처리하는 것은 여학생에 대한 인권침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에 초·중·고교에서는 2006년 3월부터 지금까지 12년간 생리공결제가 운영되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초‧중‧고 여학생 중 생리통이 극심해 수업 출석이 어려운 경우(월 1일 결석)에는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 출석으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떨까?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생리공결제가 시작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생리공결제를 도입한 대학은 아직까지 많지 않다. 서울 소재 30개 4년제 대학 중 생리공결제가 시행되고 있는 학교는 총 17곳에 불과하다. 또, 여성들이 경험하는 고통이니만큼, 대부분의 여대에서 생리공결제를 시행하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서울 소재 6개 4년제 여대 중 성신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는 생리공결제를 시행하고 있는 반면, 이화여대, 숙명여대, 서울여대는 생리공결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생리공결제를 도입하지 않은 대학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중 하나로 생리 공결을 인정받기 위한 절차가 까다로운 것이 꼽힌다. 생리공결제를 사용하기 위해 진단서를 제출하는 등의 방식이 학교 측과 학생 측 모두에게 부담이 된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절차로 인해 생리공결제를 도입했다가 나중에 폐지한 학교도 있다.

학생들이 생리공결제를 남용하는 문제도 대학이 제도 도입을 유보하는 이유 중 하나다. 생리통이 심하지 않아도 생리공결제를 남용하는 여학생이 증가하면서 생리공결제가 도입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또, 결석을 해도 여성에게만 출석을 인정해주는 제도가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생리공결제를 시행하고 있는 한양대에 재학 중인 박모(21) 씨는 “휴일이 징검다리로 있는 경우, 여학생들이 평소보다 결석을 많이 하는 것 같다”며 “의심해서는 안 되지만 정말 아파서 생리공결제를 사용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가 교무처와 면담 후 지난해 7월 15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생리공결제 전산화 안내문(사진: 한국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최근에는 생리공결제의 시행 방식으로 논란이 된 학교도 있다. 지난해 7월 15일, 한국외대 총학생회 ‘푸름’은 페이스북을 통해 생리공결제 전산화를 시행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문제는 공지 게시글에 기재된 내용이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 게시글에 따르면, 생리공결제 전산화가 시행되면 학생들은 온라인상에서 생리 기간을 입력할 수 있고, 이후 본인의 수업을 체크하면 자동으로 생성되는 양식을 출력해 교수에게 제출하면 된다.

한국외대 학생들은 이 방식이 불편하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생리 기간을 공개하는 것은 인권침해이며, 생리 주기의 불규칙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김모(23) 씨는 “사람마다 생리 주기가 다르고, 주기는 불규칙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방식은 잘못됐다”며 생리공결제 전산화 시행 방식의 문제를 지적했다.

생리공결제 전산화 시행 보류 결정에 대해 한국외대 총학생회가 공개한 입장문(사진: 한국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논란 끝에 한국외대는 지난해 2학기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생리공결제 전산화 시행을 보류하기로 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생리 공결 전산화는 여학우들이 보다 편리하고 확실하게 제도를 활용하게 하기 위해 추진했으나 부족한 이해와 일 처리로 목적과 정반대의 결과를 야기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학우 여러분의 공분과 야기된 혼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생리공결제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생리공결제가 시행되고 있는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생리공결제가 삶의 질을 향상시켜준다는 것이 첫 번째 의견이다. 생리공결제가 시행되고 있는 성신여대에 재학 중인 장모(21) 씨는 “평소 생리통이 심한 편인데 생리공결제가 있어 생리통으로 결석을 해도 성적에 영향을 주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반면, 생리공결제의 절차가 까다롭고, 출석 인정의 기준이 모호해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생리공결제는 대학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대학이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생리 공결을 허용하고 있다. 생리 공결을 사용하려면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국민대 재학생 윤모(21) 씨는 “생리통으로 결석하는 것을 교수에게 말하는 것도 민감한 부분이고, 생리통으로 병원을 가서 진단서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까다롭다고 생각한다”며 “생리공결제가 필요한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해줄 수 있는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생리공결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은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 대부분은 생리공결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생리통이 심한 경우, 어쩔 수 없이 결석을 하거나 억지로 학교에 나와 통증으로 인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학생들의 의견이다. 경성대에 재학 중인 이모(21) 씨는 “생리통이 심한 날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등교한다”며 “계속되는 통증에 수업에는 집중하지도 못하고, 컨디션은 더욱 악화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생리공결제에 대한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부에 생리공결제 도입을 권고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생리 여부를 공개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부산의 한 대학 양성평등센터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생리공결제를 여성을 위한 특혜로 인지하는 것 같다”며 “생리공결제 도입 배경을 토대로 이를 특혜가 아닌 여성 건강권 보장 측면으로 접근해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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