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행사로 청년들 모아 행복 나눠요" 문화기획자 박태성의 열정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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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행사로 청년들 모아 행복 나눠요" 문화기획자 박태성의 열정 프로젝트
  • 취재기자 김채민
  • 승인 2018.12.2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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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사 '모먼츠' 설립해 청년 돕는 문화 행사 기획..."대안 학교 만들어 교육의 힘 보여주겠다" 포부 / 김채민 기자

문화란 넓게는 의식주를 포함한 우리들의 일상적인 사는 모습을, 좁게는 예술과 교양을 말한다. 부산 사람들의 삶에 예술과 교양의 문화 향기를 전파하는 젊은이가 있다. 문화 기획사 ‘모먼츠’의 대표 박태성(28, 부산 서구) 씨다. 모먼츠는 문화행사, 강연 등을 기획하고 대행해 수입을 창출하는 문화 관련 행사 전문 기획사다.

박태성 대표는 문화기획사를 차리기 전 다양한 삶을 살았다. 2002년, 그는 16세에 필리핀으로 떠나 고등학교를, 대학교는 호주에서 다녔다. 그의 유학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방황하고 힘들었던 시간이 많았다. 2011년, 박 씨는 대학을 자퇴하고 한국으로 왔다. 군대에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13년 군 전역 이후 본격적으로 문화 기획 사업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수입 없이 모아놓은 돈을 쓰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으나, 이제 그는 직원 10명을 거느린 어엿한 문화기획사 대표가 됐다.

모먼츠의 대표 박태성 씨(사진: 취재기자 김채민).

군 제대 후 문화 기획 일을 하기 전, 그는 정치계에 잠시 발을 들였다.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박 씨의 눈에는 한국이 사회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부산의 몇몇 정당이 주최하는 정책간담회에 참가해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계는 녹록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정치계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낀 후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여러 정당의 정책간담회를 다니면서 언젠가는 내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거로 생각했죠. 그런데 제 의견이 무시되기 일쑤였어요. 제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 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씨는 잠시의 정치 활동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내가 유권자들이 많이 속해있는 집단을 만들게 되면 내 의견이 그 집단에 반영돼 내 영향력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사람 모으는 일을 시작했다. “모으는 방법에 다른 것은 없어요. 문화행사, 이벤트, 공연, 축제 등이었고, 이런 것들을 기획하는 문화 기획자가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문화 기획 사업을 하게 된 그가 처음 맡은 일은 다른 사람의 기획을 대행하고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이었다. 2013년부터 비영리 단체인 청소년 문화 단체 ‘사이’에서 일했다. 사이는 쉽게 말해 청소년 대외 활동 단체다.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스스로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단체다. 사이의 활동목표는 그가 추구해 온 가치관과 비슷했다. “사회가 바뀌려면 제일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했죠. 주입식 교육이 아닌 청소년들이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고 그 답변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 말이죠. 사이에서 일하면서 청소년들의 지도 선생님이 되어 생각의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하고, 사이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줬습니다.”

그는 돈이 되지 않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도와주면서 모아놓은 돈으로 생활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제 신념 때문에 수입이 되는 기획보다는 교육과 관련된, 수입이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했다"며 "2년이 지나 내 통장 잔액이 0이 됐을 때, ‘이렇게 하면 내가 불행하구나’ 하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 이후 돈을 벌 수 있는 문화 기획 사업을 시작했다. 돈을 벌어야 지역에 환원할 수 있고 그의 신념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바탕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박 씨는 2016년에 문화 기획사 ‘모먼츠’를 설립한 후 2017년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어엿한 회사로 만들었다. 모먼츠는 의뢰가 들어오는 문화, 콘텐츠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해 지역에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를 만들어서 이것이 필요한 지자체에 팔기도 한다. 모먼츠는 ‘순간’이라는 뜻으로 이 이름을 지은 데는 박 씨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다. ‘부끄러운 순간, 실패의 순간조차도 현재 내 모습이 만들어진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가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장 유행했던 말이 ‘흑역사’였다.  “우리 부모님 세대엔 흑역사도 추억이라고 말을 해요. 그런데 우리 세대는 흑역사를 부끄러워하죠. 제 철학처럼 지나왔던 어떤 순간도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기획을 하고 싶었어요."

박 씨가 자신의 회사 ‘모먼츠’를 설명해주고 있다. 모먼츠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순간에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띄었다(사진: 취재기자 김채민).

모먼츠가 만들어 지고 처음 한 기획은 2016년부터 시작한 ‘문화 사칙연산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박 씨가 청년을 위해 기획한 청년 지원 행사로, 그가 해온 모든 프로젝트를 한 번에 표현할 수 있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양한 기획을 하고 있다. ‘문화의 가치를 더하고, 노잼을 빼고, 사람을 곱하고, 시너지를 나눈다’는 의미를 가진 프로젝트였다. 여러 장소에서 다양하게 진행됐다. 그는 청년들이 대상인 프로젝트를 주로 했다. 그가 청년이기 때문에 청년들의 고민을 가장 잘 공감하고 그들의 문제를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문화 사칙연산 프로젝트 중 하나는 ‘당신의 밤은 안녕하십니까?(당밤)’이었다. 당밤 역시 그의 청년 지원 행사 중 하나였고,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모먼츠가 후원해서 진행됐다. 부산과 관련된 페이스북의 페이지와 그룹에 당밤 홍보 글을 올려 참가자를 모았다. 청년들은 일하랴, 공부하랴 밥 한 끼 제대로 먹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는 ‘밥 한 번 같이 먹자.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와 같은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처럼 당밤은 청년들과 밥을 함께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야근하며 힘든 청년들을 모아 같이 고기 파티를 했어요. 청년들이 최근에 겪은 힘든 일을 공유하고, 싫은 사람 같이 욕해주며 공감하고 위로 받는 시간이었죠. 걱정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박 씨가 생각하기에 가장 성공한 기획은 2016년에 한 ‘김해행’이다. 김해행은 모먼츠가 김해문화재단에 기획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우수 사업으로 선정되어 300만 원의 지원비를 받고 진행됐다. 김해행은 김해가 꽤 관광 콘텐츠가 잘 구축되어 있음에도 재미없는 관광지로 인식되고 있어 지역 브랜딩을 청년들과 새롭게 해보기 위해 기획됐다. 페이스북에서 부산과 관련된 페이지와 그룹에 구인 홍보물을 게시하고 김해와 김해 외 지역의 청년 총 30명을 모아 5명씩 조를 나눴다. 각 조에 30만 원의 지원비를 지급하고 그들이 원하는 김해 여행지 코스와 테마를 정해 여행하게 했다. 여행하며 사진과 영상을 최대한 많이 찍게 했다. 

이들이 찍은 영상과 사진을 재가공해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어 SNS 플랫폼에 게시했다. 이 영상으로 김해를 홍보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페이스북을 택했다. 그중 하나가 페이스북의 ‘부산언니’였다. 부산언니는 부산에서 인기와 파급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중 하나다. 2040세대의 여성 이용자가 가장 많다는 특징이 김해를 홍보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 게시물이 일주일 만에 40만 뷰를 달성하고 댓글과 공유가 3000개 이상이 되면서 꽤 사람들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 이후에 올라온 한 기사를 보니 실제로 김해행을 하면서 갔던 관광지의 몇몇 곳의 매출이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한 것이라고는 청년들이 하고 싶은 여행을 하게 해줬을 뿐인데 김해라는 지역이 돈을 벌게 됐어요. ‘청년이 잘 놀면 지역이 활성화된다’라는 제 신념이 증명된 계기가 된 거죠”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제일 최근에 한 기획은 ‘하루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안에서 청년들의 사회적 활동 영역을 넓혀 청년 문화를 활성화하자는 의미로 기획됐다. 그 시작으로 지역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 한국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고 모먼츠와 청춘연구소, 영도문화원이 함께한 것으로 영도에서 진행됐다.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전체 예산 2000만 원을 지원했다. 영도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의 버킷리스트를 발굴한 후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작은 상영회도 가졌다.

박 씨는 기획뿐만 아니라 강연도 하며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강연도 있고 초청을 받아서 강연하는 것도 있다. 초청을 받아서 하는 강연의 경우, 강연 주최 측에서 지급하는 강연료 수입이 생긴다. 이렇게 그는 학교와 기업 등 다양한 곳에서 강연한다. 주로 부산이라는 도시 속에서 청년이라는 존재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면 좋을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박 씨의 강연은 기획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어떤 기획이든 그 기획이 실현되기 위해선 교육이 필요해요. 어떤 과정에서도 교육은 뺄 수가 없죠. 같이 기획을 하는 친구들에게 교육을 위한 현장 강의도 하곤 했어요. 교육을 다양한 형태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라며 강연을 하게 된 계기를 말했다.

지난 10월 사상 인디스테이션에서 진행된 ‘청년 문화 생태구역’ 강연 모습, 청년들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부분들에 관해 설명하며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 박태성 제공)

강의를 하다보면 힘든 점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학교에서 강연 시 그의 이야기에 공감을 못 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강연을 듣는 학생들의 마음에는 항상 ‘나는 저렇게 못 할 거야’라는 생각이 박혀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학생들의 생각이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라며 씁쓸해했다. 힘든 점도 있겠지만 뿌듯한 점도 있다. “어떤 공동체에 가도 한 명씩은 내 이야기를 좋아해 주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럴 땐 ‘내가 이 사람의 사고의 폭을 넓혀주었고 또 하나의 길을 열어주었구나’ 하며 뿌듯합니다”라고 하면서 다시 웃음을 찾았다.

박 씨는 슬럼프가 찾아올 시간도 없이 일했다. 성패에 상관없이 일을 끝내면 바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는 “슬럼프는 여유 있는 사람이 가지는 여유의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되돌아보고 왜 이것밖에 못 했지? 하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는 시간 말이죠. 그 시간 없이 일하다 보니 슬럼프가 없었어요”라고 했다.

박 씨는 2018년 8월부터 부전동에서 ‘굿굿웨더’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굿굿웨더는 모먼츠의 사무실과 예술 전시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모먼츠 초기에는 그의 자택을 사무실로 사용했다. 일에 대한 효율성이나, 다른 사람이 와서 미팅을 할 때 자택이라는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또한 그는 축제, 교육 등 다양한 기획을 하다 보니 예술가를 포함해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본적인 운영비 정도는 이 공간을 통해 창출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영비 정도만 수익을 내보자’ 하고 카페를 열게 됐어요."

굿굿웨더 내부에서 잠깐 쉬고 있는 박 씨. 그는 가정집을 개조한 굿굿웨더가 다른 카페와는 다른 독립적인 공간의 느낌이 있어서 좋다며 웃었다(사진: 취재기자 김채민).

굿굿웨더는 ‘좋은 날씨’라는 뜻이다. 모먼츠와 비슷한 이유로 이름을 지었다. 어떤 순간이든 좋은 날씨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비 오는 날, 바람이 부는 날, 태풍이 오는 이런 궂은 날도 내가 어떤 것을 하고, 누구와 있는지에 따라 좋은 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곳에 있는 순간은 모두가 좋은 날씨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박 씨의 최종 목표는 대안학교 설립이다. 이름까지 벌써 정해놓았다. ‘브라보 마이 스쿨’이다.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이 그들이 다니는 학교가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학교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를 행복한 곳으로 인식하게 하고 싶어요.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가르치는 것보다 행복할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전 다양한 경험을 했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은 만큼 학생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거죠. 들어주는 교육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요”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박태성 씨는 하루가 모자랄 만큼 열심히, 바쁘게 살고 있다. 돈이 되는 기획도 하지만 지역에 도움이 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마음 따듯한 기획을 한다.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하는 그는 인터뷰 내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고 그것이 옳다고 증명해내고 있는 그의 인생이 멋져 보였다. 그는 최종 목표인 대안학교 설립까지 쉬지 않고 움직일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생각한 대안학교의 이름인 브라보 마이 스쿨처럼 그의 인생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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