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의 ‘깃발’이 북한에서는 ‘기발’이라고?
상태바
청마 유치환의 ‘깃발’이 북한에서는 ‘기발’이라고?
  • 편집위원 박시현
  • 승인 2018.12.20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편집위원 박시현

지난 18일, 일제강점기 우리말에 얽힌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 <말모이> 시사회가 열렸다. 이 영화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에 까막눈 남자가 조선어학회 대표를 도와 일본 경찰 몰래 우리말을 수집하는 데 힘을 보태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말모이는 ‘사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주시경 선생이 그렇게 어렵게 모아서 우리말 ‘말모이’를 편찬한 이후 남북이 갈리는 바람에 언어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시작하는 청마(靑馬) 유치환의 <깃발>이란 시가 있다. 그런데 <깃발>이라는 시 제목에는 사이시옷이 들어가 있다. 만약 북한에서는 유치환의 <깃발>을 어떻게 표기할까? 남북한의 언어 표기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이시옷이라고 한다. 그 진상을 알아보자.

한글 맞춤법의 사이시옷 사용 규칙은 매우 까다롭다. 모조리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대개 ‘아랫니’, ‘나뭇잎’, ‘고깃배’ 같이 순수 우리말끼리의 합성어나, ‘아랫방(房)’ 같이 순수 우리말과 한자어 합성어에는 사이시옷을 쓴다. ‘외과(外科)’, ‘내과(內科)’, ‘치과(齒科)’ 등의 한자어로만 된 단어에는 사이시옷이 없다. 단지 한자어이면서 ‘횟수(回數)’, ‘숫자(數字)’ 등은 예외로 사이시옷을 쓴다. 순수 우리말이나 한자어와의 합성어지만 뒷말이 된소리로 나지 않으면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노래방’이지 ‘노랫방’이 아니고, ‘초가집’이지 ‘초갓집’이 아니다. 순수 우리말이면서 된소리로 발음되는 ‘외갓집’, ‘처갓집’ 등은 당연히 사이시옷을 쓴다. 맞춤법 규정이 이러하니 사이시옷을 쓸지말지를 구분하기란 전문가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한글은 아릅답고 쉽지만, 한글 맞춤법은 까다롭고 어렵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북한의 '조선말 규범집'은 사이시옷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헷갈려 하는 사이시옷 여부는 북한에서는 고민 없이 사이시옷을 없애면 무조건 정답이 된다. 남한의 ‘초가집’, ‘외갓집’, ‘처갓집’ 등은 북한에서는 모두 사시시옷을 빼고 '초가집', '외가집', '처가집'이 된다. 남한의 ‘깻잎’은 북한에서는 ‘깨잎’이 되고, 남한의 ‘시냇가’는 북한에서는 ‘시내가’가 된다. 유치환 시인의 ‘깃발’은 북한에서는 그래서 ‘기발’이라고 쓴다.

사이시옷 사용 문제는 현재 남한에서도 2014년 맞춤법 개정 이후 계속 논란 중이라고 한다. 사이시옷의 언어 남북통일 문제는 국토 남북통일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