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권력은 견제 받아야 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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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권력은 견제 받아야 하는 가
  • 부산광역시 남구 임동균
  • 승인 2015.06.1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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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무>를 보고

영화 <해무>는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밀항선 전진호의 선장 철주는 “이 배에서는 내가 대통령이고 판사고 니들 아버지야”라고 말할 만큼 전진호에서 제왕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절대 권력을 당연시 받아들이는 것이 뱃사람의 도리로 여긴다. 하지만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숱하게 증명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철주의 절대 권력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파멸로 끝이 난다.

견제되지 않은 권력은 결국 폭주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는 권력을 견제해왔다. 조선은 사헌부·사간원·홍문관 등 3사를 두어 간쟁과 탄핵을 통해 왕권과 신권을 동시에 견제하면서 권력의 독점과 부정부패를 방지해왔다. 당대 왕들은 권력 견제를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시도했다. 그 중 연산군은 유독 사간원의 간언을 싫어했다. 귀에 거슬리는 간언을 하는 간관들을 옥에 가두거나 유배 보내기 일쑤였고 결국 연산군은 자신의 권력을 견제하는 사간원과 홍문관을 폐지했다. 하지만 견제 기관들을 영원히 폐지할 순 없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은 왕위에서 쫓겨났고, 사간원과 홍문관은 다시 부활한다. 우리 선조들은 권력 견제기관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권력의 견제는 언론이 맡게 된다. 언론은 입법, 행정, 사법 기관의 권력이 올바르게 행해지는지 감시하고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언론은 어떤가? 정부에 대한 비판은 거세되고 정부는 온통 미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독자가 가장 많다는 기성 언론사는 정부의 비위맞추기식 기사 쓰기에 바쁘고, 국민적 논쟁거리를 연예인 스캔들과 같은 가십적인 기사거리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기에 바쁘다.

한 해 전 필자는 대학 강단에 선 한 언론인은 강연을 본 적이 있다. 강연에서 그 언론인은 세월호 사태에 대해 해경은 영웅적이었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뱉었다. 그 발언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과연 그것이 국민들이 인정할 만한 발언이었을까? 어떻게 언론인이라는 사람이 저런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언론사도 문제지만 언론인도 각성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2015 언론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지수는 33점을 기록하여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분류되었다. 순위는 전체 199개국 중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공동 67위.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헌법으로 출판과 언론의 자유를 명시해놓은 대한민국이 부분적 언론 자유국이라고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부분적인 진실만 듣고 있는 것이다. 언론자유국 순위가 점점 후퇴하고 있어 더 큰 문제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최고치 31위였던 것이, 2013년엔 50위, 2014년엔 그보다 다시 7단계 떨어진 57위를 기록하였고 지금은 67위까지 후퇴했다.

이젠 그 후퇴를 멈추고 전진해야만 한다. 권력을 견제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재앙을 맞이하겠다는 것과 같다. 해무 속에서 선원 누군가 철주의 행동을 감시했다면, 철주의 폭력에 동조하지 않고 비난했다면 아마 전진호의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전진호처럼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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