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투쟁’을 현실적으로 다룬 영화, <돼지의 왕>
상태바
‘을의 투쟁’을 현실적으로 다룬 영화, <돼지의 왕>
  • 부산광역시 남구 조정원
  • 승인 2015.06.11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갑의 횡포’라는 말이 번번이 뉴스 속에서 들려오는 요즘, 최근 이 영화가 떠올라 다시 보게 됐다. 가진 자들이 조직화된 그들의 세계를 이용해 ‘을’이 대응하지 못하도록 했던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 왔던 영화. 바로 <돼지의 왕>이다. 2011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약자와 강자가 구별된 중학교 교실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 모습은 마치 우리의 사회와 비슷해 보인다.

<돼지의 왕>에서는 종석, 경민, 철이 이 3명이 스토리를 끌고 나간다. 영화의 시작은 종석과 경민이 15년 전의 사건을 회상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15년 전 둘은 같은 반 친구로 약자의 계급인 ‘돼지’들이었다. 그 반의 강자들은 ‘개’라는 계급에 속해 있었다. 그들을 나누는 기준은 ‘힘’이다. 강자들은 돈이 많고 공부를 잘하는 사회적으로 보면 엘리트 학생들이다. 그 강자들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같은 반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법에 따르게 한다. ‘돼지’ 계급 학생들은 그들만의 조직화된 세계를 가진 ‘개’ 계급에 맞서지 못하고 그저 순응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렇게 교실 속 갑과 을이 정해져 있는 곳에서 ‘갑의 횡포’에 맞서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가 바로 철이다. 경민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당당하게 "사과해"라고 강자에게 말하는 장면이 철이의 첫 등장 장면이다. 그 이후 철이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맞선다. 철이는 강자와 맞선 이후 돼지들의 왕이 됐다. 경민과 종석은 학교가 끝나면 철이의 아지트로 찾아간다. 거기서 철이는 "저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 힘을 가지기 위해선 더 악해져야 한다"며 종석과 경민에게 주장한다.

계속해서 ‘개’의 세력에 맞대응하는 철이의 행동에 ‘개’ 계급은 철이의 존재를 위협적으로 느낀다. 강자들은 그들의 선배들과 선생님을 교묘히 이용하여 그들만의 조직력으로 돼지의 왕을 무너뜨린다. 퇴학당한 철이는 마지막에 공개적으로 자살을 해 그들에게 중학교 시절이 끔찍한 기억으로 남기를 저주하며 공개자살 계획을 짜게 된다. 그러나 철이는 결국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선택해 공개자살에 실패하고 그런 돼지의 왕의 모습에 분노를 느낀 종석에게 살해당한다.

<돼지의 왕>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자본의 힘의 논리를 교실 속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데, 보는 내내 불편했지만 영화의 배경이 교실이었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필자는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다녔다. 그 때를 회상해 보면, 영화가 극적으로 표현됐을 뿐, 상황은 영화 속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힘’이라는 자본은 남자아이들을 세 계급으로 나누는 기준이었다. ‘개’ 계급, 방관자, 그리고 ‘돼지’ 계급, 그들 모두 한 교실 안에 공존했다.

약자가 강자에 순응하고 시스템 속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 모습은 불편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영화 속에선 갑이 행사하는 폭력에 을은 결코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철이는 "그들을 이기기 위해 우리는 더 비겁해져야하고 악해져야해. 우리가 진짜 괴물이 되는거야"라고 말하며 종석과 경민과 함께 ‘개’ 계급에 투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이 갑에 맞서는 모습의 결과는 보는 사람을 씁쓸하게 만든다.

처음 강자에게 대응한 건 돼지의 왕으로 군림한 철이다. 그리고 또 한명, 전학 온 찬영이다. 전학 온 찬영은 글짓기 대회 추천을 선생님에게 받았다는 이유로 ‘개’ 계급의 표적이 된다. 찬영은 처음엔 그들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학 온지 3일 후, 돼지가 돼버린다. 갑은 그들의 세력을 철저히 조직화해 자신을 위협하는 을을 짓밟아 버린다. 철이가 퇴학 당한 후 ‘개’ 계급에 계속 대응하고 있는 종석에게 찬영은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뭐 바꿀 수 있겠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자식들 이길 수 없다. 맘 상해도 이건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래서 생각한 건데 이제 금마들 이제 안보면 되는 거 아니가. 나중에 어른 되면 금마들이랑 만날 일도 없잖아"라는 대사는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을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맞서고 있는 철이 역시 영화 마지막에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모습은 현실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자존심’과 ‘현실과의 타협’ 사이에서 저울질 하고 있는 을들의 모습은 불안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렇게 사회는 갑에 의해 돌아가고 있고 을이 그들에게 맞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사회에서는 정의가 이긴다는 희망찬 메시지가 가득하다. 하지만 ‘돼지의 왕’은 그걸 부정하고 현실을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들 속에서 분열이 일어나 비극적으로 끝이 나 버린 이 영화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잔혹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이 현실적이어서 더욱 안타까웠다. 계급사회 속에서 을이 피해보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을은 대체 언제까지 고통스러워야 할까.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