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말다툼이 실제 칼부림, 살인까지... 화난 네티즌들의 ‘현피’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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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말다툼이 실제 칼부림, 살인까지... 화난 네티즌들의 ‘현피’ 기승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8.12.1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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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로 적 죽이는 게임에 몰두....현실감각 둔해지는 메트릭스 현상 / 신예진 기자

“나가서 붙자”, “한 번 쳐봐”, “현피 뜨자.” 험악한 이런 말 속에 들어 있는 현피는 ‘현실’과 ‘플레이어 킬(player kill)’의 준말이다. 온라인상에서 시비가 붙은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는 살인으로 이어지는 행위를 뜻한다. 한동안 잠잠했던 ‘현피’가 사회적 문제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3일 여성 A(23) 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했다.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A 씨는 이날 오전 2시 10분경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5번 출구 인근에서 여성 B(21) 씨를 만났다. 이후 A 씨는 준비한 흉기로 B 씨의 목을 수차례 찔렀다. B 씨는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생명의 위기는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와 B 씨는 온라인 친구 사이다. 이들은 지난 3년 전 온라인 게임 ‘서든어택’을 통해 알게돼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서든어택은 1인칭 시점에서 총과 칼을 사용해 적을 죽이는 게임이다. 경찰은 이날 복수의 언론에 “게임과는 관계없는 둘 사이의 감정 싸움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들이 사고 직전 함께 PC방을 갔는지 등 행적 조사도 나섰다.

최근 온라인에서 시작된 네티즌들의 말다툼이 현실에서 폭력으로 번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A 씨와 B 씨가 온라인 게임을 통해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다수 네티즌들은 “현피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온라인서 만난 네티즌들이 감정이 격해져 현실에서 다투는 일이 적잖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발적 범행이라고 여기기에 A 씨가 흉기를 소지했다는 점에 의문을 품었다.

대표적인 현피 사건은 ‘신촌 살인사건’이다. 지난 2012년 4월 30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 창천 근린공원에서 미성년자 3명이 20대 남성을 흉기로 찔렀다. 가해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활동하던 네티즌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방에서 평소 말다툼을 자주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살인 혐의를 받은 가해자 2명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공모한 혐의를 받는 고교 자퇴생에게는 징역 12년, 살인방조 혐의를 받은 피해자 전 여자친구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인터넷으로 개인 방송을 진행하던 한 남성 유튜버 임모(27) 씨도 남성 시청자 C 씨와 시비가 붙어 현실에서 만났다. 감정이 격해진 임 씨는 C 씨의 차를 파손하고 C 씨의 머리를 술병으로 때렸다. 심지어 부서진 유리조각으로 임 씨는 C 씨를 찔렀다. C 씨는 전치 2주에 해당하는 상처를 입게 됐다. 결국 지난 10월 임 씨는 특수상해, 재물손괴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온라인서 촉발된 언쟁이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셈이다.

잊을만 하면 불거지는 현피 논란에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개봉했다. 지난 2014년에 개봉한 <소셜포비아>는 악성댓글을 주로 쓰는 네티즌 ‘레나’를 타겟으로 BJ, 일반 네티즌들이 ‘현피 원정대’를 꾸리는 과정을 그렸다. 레나의 악성댓글에 화난 한 네티즌은 레나의 신상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한다. 그리고 영화 속 BJ는 “정의를 위해서!”라며 온라인에서 언쟁을 벌였던 레나를 직접 만나러 간다. 물론 현피 장면은 온라인 방송으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그러나 현피 원정대가 레나의 집에서 본 것은 목을 맨 레나의 시신이었다.

온라인상의 분쟁이 오프라인에서 분노로 이어지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분노조절장애’를 원인 중 하나로 봤다. 분노조절장애는 ‘습관 및 충동장애’의 한 종류로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자극과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분노가 심해지면 뇌의 교감 신경 조절이 어려워 지나친 공격성을 보일 수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습관 및 충동장애'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15년 5390명, 2016년 5920명, 2017년 5986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부산의 한 심리 전문가는 “살아온 환경과 경험,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같은 문제를 보고도 다른 방향으로 인지할 수 있다”면서 “분노조절은 뇌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에 손가락질을 하기보다 치료를 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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