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대학가, 학점 인플레 방지 상대평가 vs 교수자율 절대평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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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대학가, 학점 인플레 방지 상대평가 vs 교수자율 절대평가 논란
  • 취재기자 김재현
  • 승인 2018.12.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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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상대평가 요구 풀리자, 교수와 학생들은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놓고 우왕좌왕 / 김재현 기자

최근 대학교들이 학생들의 성적 평가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연세대학교는 2019년부터 상대평가제도를 폐지하고 성적 평가방식을 과목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연세대학교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상대평가의 단점에 대한 비판에 대학들이 성적 평가방식을 전환하는 추세다”며 “연세대학교는 교수의 재량을 보장해주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경성대학교의 학점부여 점수와 평점을 나타낸 표(자료: 경성대학교 규정집).
경성대학교의 상대평가를 위한 학점별 최대인원 비율 표(자료: 경성대학교 규정집).

연세대의 이런 변화는 현재 평가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부분 대학의 성적 평가제도는 굉장히 복잡하다. 경성대학교의 경우, 95점 이상 100점 이하는 A+, 90점 이상 95점 미만은 A, 85점 이상 90점 미만은 B+와 같이 채점된 점수를 기준으로 학점을 부여한다. 그 후에 ‘A+ ~ A는 25%, A+ ~ B는 65%, A+ ~ F는 100%’라는 정해진 학점별 최대 인원 비율로 학생들의 학점이 조정된다. 이는 절대적 기준이 있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섞인 구조다. 이런 제도는 몇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가장 자주 발생하는 문제는 A+를 받아야 할 점수를 받은 학생이 제한된 비율 때문에 강제로 낮은 학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이 96점의 우수한 점수를 받았지만 그 이상 받은 학생들이 많아 전체 비율에서 25%에 들지 못한다면, 그는 A 이상의 학점을 받을 수 없다. 96점의 우수한 성적을 거둔 그 학생은 B+의 학점을 받아야 한다. 직장인 문중곤(25, 경남 함안군) 씨는 “대학생일 때 A+를 받을만한 점수를 받았지만 학교에서 정한 퍼센트에 걸려서 강제로 점수가 내려가야 했던 경험이 있다”며 “당시 교수가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교수들의 평가방식 해석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대학의 평가 방식대로라면 A+와 A는 엄연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율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일부 교수들은 자신의 재량으로 모든 학생에게 +를 붙여준다. 일명 ‘쁠몰(쁠러스 몰아주기)’이 벌어지는 것인데, 이런 방식은 ‘꿀수업(꿀처럼 달콤한 수업)’을 탄생시켜서 학생들이 배움보다 편한 수업을 찾게 만든다. 또 앞서 첫 번째 문제와 같이 억울하게 밀려난 학생은 무려 두 계단 떨어진 점수를 받게 된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경성대학교 1학년 황지환(20, 부산시 사상구) 씨는 “이득을 보는 입장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피해를 보는 입장이라면 그것만큼 억울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자신의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다면 누가 이의 제기를 하겠나마는, 이 경우에 교수에게 잘 보이는 사람이 +달을 수 있는 거니까 심각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상대 평가 중심의 성적 평가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학점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학점 인플레이션은 통화량이 늘어나면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처럼 높은 학점의 남발로 A+, A 등의 성적 가치가 무의미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높은 학점이 남발되면 학점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학점 인플레이션이다. 과거 대학들이 학점별 인원 비율 없이 절대평가를 하던 때 학점 인플레이션은 사회적으로 문제였다. 모두가 좋은 학점을 들고 사회로 나오니 학점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우수한 학생의 변별이 불가능하다는 주된 것이 비판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취직을 위해 회사에 성적표를 제출하게 될 제자들에게 타 대학생들보다 낮은 성적을 주어 취직에 고배를 마시게 할 교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에게 성적은 취업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민감한 주제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모든 대학, 모든 교수들이 점수를 후하게 주는 일이 벌어지자, 교육부는 2010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대학평가항목에 ‘성적 분포의 적절성’이라는 항목을 추가했다. 교육부 평가가 추상같은 현실에서 많은 대학들은 절대평가 방식에서 일부 학점 비율을 제한하는 지금의 상대 평가방식으로 전환했다. 당시 모든 대학들이 교육부의 대학평가제도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대학의 위상을 살리기 위해 성적평가제도를 상대평가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현재 교육부는 2014년 12월까지 대학평가항목에 ‘성적 분포의 적절성’항목을 유지하다가, "대학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겠다"며 2015년 1월 해당 항목을 삭제한 상태다. 대학에서 상대평가의 불만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역시 교육부의 정책 여파가 컸다. 교육부의 대학평가제도 변화에 몇몇 대학이 성적 평가제도를 다시 과거의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올해부터 글쓰기, 수학, 외국어, 과학 등의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한다. 서울대 관계자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수업 선택의 제1기준이 강의의 질이나 흥미가 아니라 학점이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경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영종 교수는 “상대평가로 학생들의 경쟁을 통한 학습보다 절대평가 방식을 통해 수업의 참여도를 높이는 교육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내 의과대학들도 성적평가제도를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있다. 2014년 연세대학교 의대의 절대평가제도 시행을 시작으로 2016년 인제대 의대에 이어 성균관대 의대도 절대평가제도 도입 의사를 밝혔다. 성균관대 최윤호 학장은 데일리메디와의 인터뷰에서 “연세의대가 지난 4년 동안 절대평가제를 하면서 좋은 성과를 냈다”며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고 이에 성균관의대도 2020년부터 절대평가를 실시한다”고 말했다.

성적 평가제도가 절대평가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존재한다. 창원대학교 4학년 이승용 씨는 “절대평가를 시행하면 모두가 좋은 학점을 받다보니 더 높은 학점을 받을 필요성이 더 커진다”며 “절대평가제도 아래 대학에서는 배움보다 좋은 학점 받는 것에 더 신경쓰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절대평가로 성적 평가제도 변경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대다수 대학들은 현재의 상대 평가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상대평가의 장점 때문이다. 상대평가는 학생들 간의 경쟁을 통해 많은 학업 성취를 유도한다. 또 수능처럼 누가 더 우수한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직장인 주현석(25, 서울시 강서구) 씨는 “절대평가로 평가 방식이 전환된다면 학점 인플레이션은 다시 심화될 뿐이고 절대평가로는 누가 더 우수한지 보여줄 수 없다”며 “상대평가를 시행하면 학점 인플레이션 문제도 해결하고 누가 우수한 학생인지도 가릴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교육부의 정책이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성대학교 교육혁신추진센터 홍무경 팀장은 “교육부의 대학평가제도의 수정으로 절대평가가 가능하긴 하다지만 언제든지 다시 예전의 대학평가제도로 돌아갈 수 있어서 당장 정책을 바꾸기는 부담스럽다”며 “하지만 학교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교수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성대학교에서는 과목의 특징을 고려해 학점분표 비율을 유동적으로 조정해 적용하고 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교수의 자율을 강화하는 방법도 있다. 이화여대는 올해 1학기부터 1년간 교수자율 성적 평가제도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교수자율 성적 평가제도는 교과목 특성에 맞춰 교수의 재량으로 각 과목의 성적 평가방식을 상대평가, 절대평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또 고려대도 지난해 2학기부터 교칙에 “절대평가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하면 상대평가를 할 수 있다”는 항목을 추가해 교수의 자율을 강화했다.

요즘 대학가는 기말고사가 한창이다. 부산의 한 대학 캠퍼스 곳곳에서는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이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김재현).

경성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정태철 교수는 “오랫동안 교직에 머물면서 학생들을 평가했는데 시험만 치는 것이 아니라 발표, 레포트 등 다양한 요소로 평가하니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성적 분포가 상대평가를 한 것처럼 A+부터 F까지 정상분포를 그렸다”며 “교수가 다면적으로 성적을 평가한다면 평가 방식은 절대든 상대든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정시훈(27,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상대평가든 절대평가든 상위권 학생들은 항상 똑같은 학생들이 자리했고 중하위권 학생들도 그랬다”며 “평가방식에 따른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훈하 교수는 “교수들은 학생들로부터 좋은 강의평가를 받기 위해서 학점을 잘 주게 됐고, 지역대학들은 취업난을 극복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점수를 줬다. 지방대학의 어려운 현실적 조건이 있고, 이를 교육부가 무시하고 대학을 평가하려고 하면, 지방대학 학생들이 성적평가에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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