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공유, 개방의 시대정신과 컴퓨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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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공유, 개방의 시대정신과 컴퓨터 교육
  • 편집위원 정일형
  • 승인 2015.06.0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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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2.0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지 벌서 10년이 넘었다. 이는 2004년 오라일리 미디어(O'Reilly Media)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하여 버블닷컴 붕괴 이후 웹의 새로운 전환점이자 지향점으로 관심을 끌어왔다. 소프트웨어의 버전은 대개 1.0으로 시작하여 버그 패치나 오류 수정 등의 버전에 대해서는 소숫점 아랫자리의 변화로 나타내고, 대대적인 인터페이스의 변화나 기술적 변화 등은 앞자리 숫자의 변화로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2.0이라는 숫자는 태생부터 기존 웹 1.0과 비교해 대대적인 전환이 있음을 의미한다.

웹 2,0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꼽히는 것이 바로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가치다. 웹의 초창기에도 ‘블루 리본(Blue Ribbon)’이라는 운동이 있었다. 이는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검열 반대를 주장하며 전세계적인 유행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정신의 연장선 상에서 웹 2.0이 추구하는 참여, 공유, 개방의 가치는 누구나가 손쉽게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는 가운데 참 지식을 발견하며, 모든 정보와 지식이 개방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커진다는 핵심을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웹 2.0이 강조하는 또 다른 기반은 플랫폼(platform)이다. 플랫폼은 말 그대로 기차를 타기 위해 대기하는 장소다. 여기서 기차를 정보로만 바꾸면 웹 2.0에서 얘기하는 플랫폼의 개념이 된다. 내가 원하는 곳 어디를 가려면 플랫폼 위에 서 있는 기차를 타기만 하면 되듯, 정보나 서비스 어떤 것이든 웹의 플랫폼 위에 있는 것을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개념이다. 이렇듯 하나의 플랫폼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여, 공유, 개방의 가치는 점점 발전하는 네트워크를 만나 집단지성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여러 시공간에 흩어져 있는 독립적인 개발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혁신하는 시스템이나 사이트를 자유롭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결과물이 오늘날 집단지성과 오픈소스를 대표하는 위키피디아(Wikipedia)와 안드로이드(Android)다.

웹은 처음으로 만들어졌을 때부터 웹의 정신은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연결될 수 있다는 자유정신에 바탕을 두었다. 웹 2.0 또한 더욱 발전하여 3.0, 4.0으로 진화하면서 미래 인터넷으로 예견되는 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이라는 개념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물론 컴퓨터를 접하면서 자연스러운 학습에 의해 이루어지고 전달되며, 그것이 단순한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우리 문화 전반으로 스며들게 된다.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는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를 살았으며,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또한 스마트폰은 이미 컴퓨터와 인터넷을 손 안으로 옮겨 놓았고,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개인의 일상이 거의 마비되는 수준이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여기서 한 번 처음으로 돌아가 쉬어가는 지점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잠시 쉬면서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짚어보며 대비하자는 차원이다. 모든 문화는 학습에 의해 전수되고 완성된다. 이렇게 본다면 컴퓨터를 배우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서 문화의 차이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이러한 가정은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로 설명되곤 한다. 19세기에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와 그의 제자인 벤자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대상으로 인류학 연구를 했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언어에 자연히 관심을 쏟게 되었고, 어느날 무지개 빛깔이 몇 색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족마다 쓰는 언어에 따라 답이 다르게 나왔다. 여기서 사피어와 워프는 그 사람이 쓰는 자연언어에 빛깔을 나타내는 말이 네 개면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무지개 빛깔을 네 개 밖에 구별하지 못하고, 다른 자연언어에 빛깔을 나타내는 말이 일곱 개라면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은 일곱 개를 구별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관이 언어를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의 주 내용이다.

컴퓨터도 이와 같을 수 있다. 그 컴퓨터를 쓰는 사람의 환경에 따라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이 고정될 것이고, 그 고정된 방식에 따라 그 사람의 컴퓨터 능력이 결정되며 그 능력만큼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내가 컴퓨터와 관련된 실습 교육을 하면서 가장 주의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이와 관련되어 있다. 오직 한 가지 방법만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예를 들어, 복사-붙여넣기를 할 때에도 어떤 이는 단축키 ctrl+C와 ctrl+V를 사용할 것이며, 또 다른 이는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활용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메뉴에 나오는 편집>복사와 편집>붙여넣기를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주의 할 것은 사피어-워프 가설은 이론으로 정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언어 이전에 느낌이나 생각을 먼저 갖고 그것을 언어로 옮기기 때문이다. 언어가 생각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생각이나 느낌, 인식 등이 먼저 있고 그것을 언어가 제한된 테두리 안에서 반영하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컴퓨터 교육에서도 개개인의 목적과 생각, 느낌 등을 먼저 고려하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초등학교 저학년 기초 프로그래밍 교육 사업이 시행되고 있고, 초중등학교에서 소프트위어 교육을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가기보다, 이쯤에서 한 템포 쉬고 앞으로의 길을 잘 살펴본 후 전체 숲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참여, 공유, 개방의 가치와 전체 플랫폼을 한 번 돌아보고, 소프트웨어 교육 자체가 현실성 없는 사피어-워프의 가설을 검증하는 헛공약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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