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장복만 편①] 동원개발 키워 수익추구보다 사회기여하고 인재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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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장복만 편①] 동원개발 키워 수익추구보다 사회기여하고 인재 키운다
  • 차용범
  • 승인 2018.12.1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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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장학 사업가 장복만에게 육영(育英)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장복만 편①]은 인터뷰 시점이 5년 전인 2013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육․문화․장학사업으로 국가사회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기업”-(주)동원개발의 기업 슬로건이다. 기업활동에서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동원교육재단의 동원과학기술대(옛 양산대)와 동원학당의 동원중․동원고를 열정적으로 운영한다. 동원문화장학재단을 통한 문화․장학사업도 활발하다. 건실한 주택사업으로 사세를 키워가며, 오랜 세월 꿈꿔왔던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감히 ‘국가사회에의 기여’를 내세울 만 한 기업경영이다. 주택건설 외길 40년에 시공능력 부산 1위 업체, 그 동원개발을 이끌고 있는 장복만(張福萬, 76) 회장의 육영 스토리다.

장복만 회장은 동원개발이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이기보다 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는 것이 소원이자 임무라고 말한다(사진: 차용범 제공).

장 회장은 1994년 경남 양산의 양산대를 인수한다. 심각한 운영난에 봉착한 학교재단을 확고한 의지로 인수한 것이다. 2000년 경남 통영의 사학 중고교를 인수한다. 학교재단의 재정난에 대응한 동문회와 통영시민의 인수요청에 따른 것이다. 그는 기업의 성공을 담보하기 전부터 운영난에 빠진 지방사학 운영에 대담하게 도전했다. 무명의 지방 전문대를 유수의 과학기술대로 키우고, 지방 중고교 교사 신축에 사재 485억 원을 희사했다. 크고 작은 기부와 나눔에도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늘 꾸준하다. 부산 건설업계의 산 증인, 지역사회의 원로가 육영에 만년을 쏟아 붓는 뜻은 무엇인가? 사회기여의 꿈을 현실로 성취시킨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철학은 과연 어떠한가?

1942년 경남 통영 출생. 통영상고 졸업, 동아대 법학과 3년 수료, 부산대 경영대학원 및 미국 UCLA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경남대 명예 교육학 박사, 동원개발 설립(1975). 동원교육재단 이사장(1994), 동원송촌학당 이사장(2000). 동원교육문화재단 이사장(1999), 대한건설협회 부산시회장(2000), 금탑산업훈장(1995), 체육훈장 기린장(2002). 경남교육상, 통영시 문화상(2013). 21세기 대상 경영문화대상(2013).

 

담대한 육영 의지… 중고교 신축에 485억 쾌척

Q. 최근 담대한 육영사업으로 지역사회의 찬사를 받고 있다. 1년여 전, 동원중고 교사 신축에 사재 485억 원을 쾌척했고, 최근 양산대의 교명을 동원과학기술대로 바꾸며 ‘Vision 2020'을 향한 제2도약을 선언했다. 요즘 불같은 열정을 쏟고 있는 동원중고 얘기부터….

“그렇다. 두 학교는 동원학당 재단 소속이다. 2012년 9월 신축 보금자리로 이전했다. 1947년 개교 이후 65년 만의 일이다. 2001년 9월 학교 이전계획을 신청한 이후, 부지매입에만 약 10년이 걸렸다. 통영시 광도면 용호로 12 일원 13만 3188㎡(4만 290평) 부지에, 2010년 3월 착공해 2012년 8월 준공했다. 통영의 자랑스러운 교육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동원중고는 ‘Dream School'을 새로운 아젠다로 정하고, 미래를 향해 비상하기 시작했다.

신축학사 이전을 통해 동원중고는 전국 최고 수준의 교육 인프라를 갖추었다. 새 캠퍼스에는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을 위한 체육관, 독서실, 동아리실, 종합 진로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커리어존까지 최신식 시설을 마련했다. 사실, 동원중 동원고는 그동안 옛 1만여㎡의 좁은 학교에서 60년 넘은 낡은 건물을 함께 사용하며 큰 불편을 겪어왔다. 나 스스로 동원고 전신인 통영상고 9회 졸업생이기에, 과거 학창시절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Q 학교 신축에 어느 정도 애정을 쏟으셨나?

“제대로 마음먹고 지었다. 바다가 양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학교가 있다. 풍광이 장관이다. 학생들도 기분이 상쾌해져 학교에 가고 싶다고들 한단다. 시설도 국내 최고다. 우리 손자도 보내고 싶을 정도다.”

그의 자랑대로, 드넓은 현대식 교사에선 언덕 아래 양쪽으로 짙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학교 구석구석에는 건설 전문가인 장 회장의 손길이 닿아 있다. 그는 학교가 완성되는 순간까지 설계를 뜯어고치고 시공상황을 점검했다. 그는 최근 두 차례의 ‘큰 수술’을 겪었다. 간 이식 수술로 4개월여 입원 요양하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 건설현장으로 달려갔다. 우산을 들고 마스크를 쓴 채-. “학교를 정말 보고 싶더라.” 그의 애정을 이해할 만하다.

그는 교사 이전 준공식에서 “동원고를 10년 안에 국내 상위 5%의 명문학교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다짐 아래, 학교가 돌아가는 상황을 하나하나 챙기며 내심 즐거워한다. 지금 그에게 가장 크고 의미 있는 일은 ‘교육’임이 틀림없다.

 

나의 꿈, 돈 많이 벌기보다 명문학교 키우기

Q. 기업경영에 나날이 바쁘고 건강에도 유념해야 할 시기에, 그렇게까지 애정을 쏟은 특별한 이유라도?

“내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동원중고가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인재를 배출하는 명문학교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나의 모교를 새 보금자리로 신축 이전한 것이다. 나의 헌신으로, 나의 모교가 최첨단의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고향 인재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내가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 뒀던 꿈을 고향의 모교에서 실현하고 있다. 이런 보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그동안 교육사업에 바쳐온 열정을 인재육성에 더 쏟으려 한다. 충무공의 얼이 살아 숨쉬는 통영에서 뛰어난 인재를 배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훗날을 그려가며 적극적 지원을 다할 생각이다.

나부터, 어릴 적 어려운 형편에 교육혜택을 많이 받지 못하고 컸다. 예전부터 통영에는 인물이 없다는 말도 많다. 부산에 와서 사업을 하다 보니 통영 출신 인재가 거의 없었다. 고향, 동문 인맥이 없으니 때로 외톨이 기분을 느꼈다. 40년을 넘게 기업을 경영했고, 이제 우수한 인재를 길러 낼 힘이 생겼다. 고향을 위해 좋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환원하는 삶의 목표이다.”

장 회장은 옛 통영제일고 졸업앨범을 펼치며 학교 설명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졸업앨범은 동원개발 회장실 의자에서 손이 닿는 '귀한 자리'에 놓여 있다. 재단 운영에 참가한 후부터의 졸업앨범이 책장에 연도별로 가지런히 꽂혀 있다. 학교에 대한 그의 애정이 얼마나 애틋한지 엿볼 수 있다.

Q. 그 중고교, 어떻게 인수했나? 인수 동기는?

“지난 2000년 송촌학당을 인수했다. 고향과 후배사랑 때문이다. 당시 교명은 통영제일고등학교(옛 통영상고)와 동중학교였다. 재정난으로 학교 운영이 어려워지자, 고향 통영지역에서 요청이 들어왔다. 모교를 인수해서 잘 좀 운영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동문들은 물론이고 통영시장과 시민까지 나섰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사람이 자신의 영화만을 위해 살아서야 되겠나. 약간의 성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뜻으로 나섰다. 열악한 환경의 고향에서 인재를 키워보자는 생각이었다.”

졸업생이 모교의 학교법인을 인수, 이사장에 취임하는 것은 그 예를 찾기 힘든 일. 지난 1947년 출범한 송촌학당은 통영제일고(1951년 개교)와 통영동중을 설립, 그동안 2만 4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통영지역의 대표적 사학이다. 통영제일고 동문 장 회장은 재단을 인수하며 다짐했다.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을 고향 및 모교 발전을 위해 뜻있게 쓸 것이라고, '후배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연차적으로 학교환경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동원중·고는 신축학사 이전을 통해 전국 최고 수준의 교육 인프라를 갖추었다. 사진은 신축 이전한 동원중·고교 전경(사진: 차용범 제공).

‘공부 못하는 학교’에서 ‘공부 참 잘하는 학교’로

Q. 인수 전과 인수 후, 그 학교 얼마나 달라졌나?

“한마디로, 공부를 ‘참 못하는 학교’에서 ‘참 잘하는 학교’로 환골탈태했다. 학교 부지는 10배 이상 넓어졌고, 건물은 4배 가까이 커졌다. 전국에서 우수한 교사를 초빙해 학교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폐교 직전 상황까지 내몰려 학교가 말이 아니었다. 지금은 서울대 등 명문대 합격자도 상당 수 배출한다. 한 해 서울지역 대학에 50여 명, 부산 및 경남 국립대에 30여 명이 진학한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는 학교가 온 나라 교육계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도약했다고 자랑한다. 고교, 종전 40실(30학급)에서 92실로, 중학(18학급) 역시 62실을 보유했다. 특별실이 많다? 영어 수학 등의 교과교실제와 수준별 학습이 가능해졌다. 특기 취미별 동아리실 89실을 꾸몄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즐거워할 수밖에 없다. 중고교 1000명에 중도탈락자는 단 7명(전국평균 4%), 경남지역 ‘최우량’ 학교다.

장 회장은 학교현황 통계를 두루 꿰고 있다. 표정엔 그저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우리 학교가 <도전, 골든벨>에 출연한다네?” 고교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 <골든벨>, 전국 200여 고교가 신청 후 대기상태에서, 동원고교가 2013년 11월 20일 녹화일을 잡아뒀다. ‘공부 못하는 학교’에서의 변신, 또 다른 자랑이다. 우수교사․우수학생이 왜 동원중고를 찾는가? 그 강력한 ‘인센티브’를 다 열거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들의 사기 키우기에 필요한 일이라면 그는 잘라 약속한다. “그거 내가 부담할 테니 열심히만 해라.”

Q. 동원 중고교, 어떻게, 어디까지 컸으면 좋겠나?

“동원학당은 지난 2009년 ‘동원학당 장기발전계획’을 수립, 야심차게 추진 중이다. 3단계 발전전략에 따라 새로운 명문사학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학교의 이전과 학교 발전시스템을 구축하는 첫 단계는 2012년까지 끝났다. 학교 이전 후 5년간의 두 번째 단계에는 명문고가 갖춰야 할 제반 교육시설 및 여건을 완비하는 기간이다. 마지막 단계에는 명실 공히 명문사학의 입지를 보이는 자립형 자율형 사립학교로 도약할 것이다. 동원중고 학생들은 비용과 경비 부담이 큰 사교육을 받지 않고, 공교육만으로도 질 높은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다.”

그는 교육사업을 통해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그가 구현하고 싶은 ‘에듀토피아(edutopia)'다. 그가 교육을 보는 시각은 분명하다. 교육은 가장 정의로운 사회, 사람들이 진정한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토대다. 옳은 일이 승리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함께 선과 평화를 만들어 가는 세계를 뜻한다. 그런 뜻에서,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청소년에의 올바른 교육은 무엇과 견주어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이들은 인류를 보다 행복하고 아름답게 가꿀 ‘모든 위대한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동원학당의 동원 중․고교가 우리 사회와 국가, 나아가 전 인류의 공생과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는 묵묵히 걸어갈 각오이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장복만 편②]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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