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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재즈의 역사 '몽크' 지킴이 양돈규 씨 "재즈에 홀려 평생 보냈죠"낮엔 소아과 의사, 밤엔 재즈클럽 사장... "몽크는 문화공간, 다양한 라이브 콘서트로 연주공간 제공" / 박찬호 기자

재즈를 사랑하는 이들이 스며드는 곳

땅거미 질 무렵, 어두워진 하늘과는 반대로 대학로 거리는 색색의 화려한 간판들과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밝게 빛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로 북적이는 거리. 이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소리들은 화음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소음이 돼 무의미하게 흩어진다. 이때 어디선가 들리는 감미로운 음악소리. 피아노의 맑은 소리를 차분히 따라가는 콘트라베이스의 낮고 깊은 울림, 그리고 매력적인 보컬에 홀린 듯 찾아가 보니, 빛바랜 간판에 적힌 ‘MONK’라는 이름이 나타난다. 바로 부산 대연동 경성대 대학로에 위치한 라이브 재즈클럽 MONK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열린 'NORTH SEA JAZZ FESTIVAL'를 참관한 MONK 식구들의 단란한 모습(사진: MONK 제공).
빛바랜 MONK의 간판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찬호).

낮에는 의사, 밤에는 재즈클럽 운영자, 반전 있는 남자 양돈규

MONK의 운영자인 양돈규(65) 씨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본업은 소아과 의사. 낮에는 부산 세브란스 소아과 의원의 양 원장으로 불리며 의사로 일하지만, 밤이 되면 재즈클럽의 운영자로 변신한다. 이런 특이한 배경을 가지게 된 이유를 알려면, 젊은 시절의 양돈규로 돌아가야 한다.

60대의 나이지만 젊은 패션 감각의 옷을 입고 멋지게 포즈를 취하는 양돈규 원장(사진: 취재기자 박찬호).

연세대 의대 72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유신시대의 암흑기에서 질풍노도기를 보냈다. 한 해도 가만히 넘어가지 않는 데모와 휴교의 혼란 속에서 그는 반복된 휴학과 낙제 끝에 13년 만에 가까스로 의대를 졸업했다. 평소 팝송과 로큰롤을 좋아했던 그는 80년대 초 서른 줄에 들어서야 마침내 재즈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평소처럼 음악을 듣기 위해 음악 감상 카페를 드나들다가 한 재즈곡을 듣고 완전히 반해버린 것이다. 그때의 곡은 바로 니나 시몬스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 Slow Version>이다. 삶의 애환을 노래한 이 곡은 느린 박자와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로 당시 심적으로 어려웠던 그의 영혼을 달래주었다. “서른이 다 되어가니 로큰롤이나, 하드락은 시끄럽게 느껴졌고 나이에 걸맞지도 않은 것 같았어요. 그때 이 곡을 듣고, 아 이거다 하고 빠져든 거죠.”

재즈와 사랑에 빠지다

양 원장은 재즈를 듣는 순간 한마디로 ‘각성’해 버렸다. 그날 이후 그는 재즈 대가들의 음반을 섭렵했고, 재즈 바, 재즈카페 등을 들락거리며 재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이대 앞 '야뉴스'와 이태원 ‘올 댓 재즈’가 단골로 찾는 공간이었다. “재즈는 자유정신의 표상이라고 생각해요. 가요나 팝송과는 다르게 형식에 구애받지 않죠. 이건 재즈의 꽃인 즉흥연주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자유롭고 신명 나면서 예술적으로 격조가 있어요.” 그는 당시를 회상하듯 크게 웃었다.

잊지 못할 그 이름 ‘김성환’

1988년 부산에 온 뒤로는 몽크의 최초 설립자 김성환이 운영하던 부산대 앞 MONK가 그의 아지트가 됐다. 김성환은 MONK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양 원장에게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부산대 법대를 졸업한 김성환은 전공과는 달리 재즈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김 씨는 당시 재즈가 대중에게 생소했던 1980년대 대학시절부터 일본 등으로 건너가 재즈 공연을 보았고, 졸업 후 1992년 부산 최초로 라이브 재즈 클럽 MONK를 부산대 앞에 차렸다. 재즈를 사랑하다 못해 학구적으로 연구한 그는 각종 외국서적을 공부해 재즈에 대한 새로운 정보나 지식이 국내에서 따라잡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김성환은 그 누구보다 재즈를 사랑하고 박식한 사람이었어요. 무가지 ‘재즈 업(Jazz UP)’ 발행, 연주 무대 제공, 재즈 동호회 부산 재즈클럽(PJC) 결성 등 한국과 부산의 재즈 문화 보급에 큰 역할을 했었지요”라고 말하며 아직 그를 잊지 못하는 듯 눈을 잠시 감았다.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Herbie Hancock)과 함께 사진을 찍은 故 김성환의 사진(오른쪽)이다. 이 사진은 뮤지션 대기실에는 언제나 걸려 있어 MONK를 찾은 뮤지션들을 독려하는 듯하다(사진: 취재기자 박찬호).

그러나 김성환은 1999년 4월 서른넷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홀연히 생을 마감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MONK는 공중분해 위기를 맞게 됐다. MONK가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부산 재즈클럽(PJC)의 동호회 회원들은 당시 수석부회장이었던 양 원장에게 다시 클럽 MONK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받아들인 양 원장은 재즈를 사랑한 故 김성환의 뜻과 MONK의 명맥을 잇기 위해 경성대 앞으로 새로운 거처를 잡았다. 자신이 전세금을, 동호회 회원 몇몇이 십시일반으로 인테리어 비용을 충당했던 것. 재즈와 같은 삶을 살다 떠난 김성환을 기리며 양 원장이 쓴 수필이 있다.

“그대여. 낮은 목소리로 그대를 다시 불러 보고 싶다, 그대여. 그대의 아픔은 그대 것만은 아니다. 그대가 사랑하고 미워한 그리운 여인과 어리석은 사랑들, 그리고 감미롭고, 우울하고, 자유롭고, 신명 난 재즈의 음률들, 또 그리고 그대가 미워했던 몇 푼의 덧없는 돈들을 오늘밤 우리들은 증오하며 사랑하고 싶다.

그대는 날다 떨어져 부스러져 갔지만, 떨어져 쉽게 부서질 맥주 잔에, 맥주 잔보다 더 부셔지기 쉬운 우리들은 다시 잔을 채우고, 그대가 차마 다 채우지 못하였던 사랑과 음악으로 그대를 다시 만나고 싶다.”

MONK를 경성대로 옮긴 뒤로 적자가 계속되어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자, 양 원장은 2006년에 과감히 MONK의 완전 인수를 결정했다. 그날 이후 의사 일과 MONK의 운영을 함께 하는 특별한 일상이 13년 동안 이어져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돈을 버는 것보다는 음악이 우선이고 뮤지션들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MONK는 술집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며 부산 재즈의 역사죠”라고 양 원장은 말했다.

한국 재즈의 전설을 만들어가는 ‘MONK’

MONK라는 이름은 재즈의 전설 델로니 어스 몽크(1917~1982)의 이름에서 따 왔다. 델로니 어스 몽크는 故 김성환이 좋아했고, 양 원장도 사랑하는 재즈 피아니스트다. 클럽의 이름처럼 하루하루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는 MONK는 1992년 설립 이후 올해로 26년이 된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클럽이고 전국으로는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이태원의 ‘올 댓 재즈’(All That Jazz, 1976년)이고, 두 번째는 서울교대 앞의 '야누스'(Janus, 1978년 이대 앞에서 오픈했다가 나중에 현재 위치로 이전)다. “손해가 나도 우직하게 오래 하면 그것은 술집이 아니라 역사가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영업하고 있죠. 2022년이면 클럽 MONK가 문을 연 지 30년이 되는데, 그때가 되면 아마 경성대 거리의 최장수 가게가 되지 않을까요”라며 가볍게 미소지었다.

양돈규의 우상인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 어스 몽크(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다채로운 재즈의 향연, MONK

어둡지만 따뜻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곳, 재즈클럽 MONK는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녁 9시가 되면 어김없이 재즈 라이브 공연을 연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라이브 정기 공연을 하는 곳으로 요일마다 매번 다른 출연진과 구성으로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월요일은 잼 데이(Jam day)로 불리며 뮤지션들의 즉흥 재즈 연주회와 신인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주로 트리오 공연이 있고, 토요일은 대중적인 재즈 음악을 연주한다. 매달 스페셜 라이브라는 코너로 유명 밴드를 섭외해 특별 공연을 열기도 한다.

MONK 무대에서 멋진 연주를 하고 있는 재즈밴드들의 하모니(사진: ‘MONK’ 제공).

재즈 음악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신인 등용문

MONK에서는 매주 월요일에는 재즈 신인들의 무대가 선보인다. 연주하고 싶어도 장소를 구할 수 없어 방황하는 재즈 뮤지션들을 위한 MONK의 작은 배려다. 대관도 가능하다. 매주 일요일 40만 원의 저렴한 대관료만 지불하면 스테이지를 포함한 음향기기와 음향기사를 4시간 동안 빌릴 수 있다. 이렇게 재즈 뮤지션들을 후원하는 프로그램은 과거 김성환이 운영하던 MONK 시절 때부터의 전통이다. 2011년 ‘자라섬 국제 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재즈 보컬리스트 이주미 씨도 ‘MONK’ 출신으로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후원자라기보다는 공생이죠. 연주할 곳이 없다면 어떻게 뮤지션들이 크고 활동할 수 있겠어요”라고 양 원장은 말했다.

한국의 재즈 밴드의 대부분이 MONK에서 연주한 것은 물론이고, 게이꼬 리, 오모리 밴드 등 유명 일본 재즈 밴드와 한국의 대중 밴드 ‘봄 여름 가을 겨울’, ‘크라잉 넛’, ‘SG 워너비’, ‘버벌진트’ 등도 여기서 특별 공연을 했다. 한 번은 부산에 투어를 온 ‘브로드웨이 42번가 뮤지컬 아시안 투어 밴드’의 일원 피 제이 페리(P.J. Perry)가 MONK의 소문을 듣고 와 깜짝 공연을 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스웨덴의 유명 트롬본 연주가 ‘Mr. Red Horn’ 닐스 란그렌(Nils Landgren), 영국의 색소폰 연주가 시머스 블레이크(Seamus Blake) 등 수많은 국내외 뮤지션들이 MONK를 방문해 공연했다.

재즈 클럽은 재즈로 말한다

클럽의 한쪽에는 서재를 방불케 하는 넓은 공간이 있다. 책장에 가득 꽂힌 CD와 DVD는 그 수가 엄청난데, CD는 약 5000장, DVD는 500장 정도 갖추고 있다. 화요일, 수요일에 라이브 공연 대신 음악 감상과 영화 감상을 하기 때문에 양 원장이 이곳저곳에서 직접 구매한 것들이다. 이들 중 몇몇은 경성대에서 MONK를 다시 열 때 故 김성환의 유품과 함께 자신과 동호회 회원들의 소장품을 보탠 것이다. 덕분에 클럽은 언제나 넉넉한 음률이 흐르는 즐거운 공간으로 남아있게 됐다. “재즈 CD, 재즈 DVD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라고 자부해요. 대부분이 직접 산 것이라 약 1억 원 이상 들었을 거예요.”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방대한 수의 재즈 CD와 DVD가 MONK 안에 비치되어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찬호).

음향 장비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과거 부산대 앞 MONK에서 쓰던 고물 그랜드 피아노를 고가의 야마하 피아노로 교체했고 오디오 역시 1000만 원대의 장비로 교체했다. “클럽 MONK에서 듣는 사운드보다 더 나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음악카페는 전국에 없다는 것을 감히 말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안 한다면 내가 하면 되지!"

양 원장이 책을 몇 권 꺼내 들었다. <재즈가 뭐니>(2007)와 <쉽고 재미있는 재즈의 이해>(2014), 그리고 <재즈의 이해>였다. 이 책들은 전부 양 원장이 직접 집필해 출판한 책들로 사연은 이러하다. 평소 양 원장은 국내에 출판된 대부분의 재즈 서적들이 비슷한 내용만 반복하고 오류도 많아 불만이 많았다. 그 때문에 인지 MONK를 운영하면서 재즈 이론을 두고 종종 손님과 시비를 붙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어느 날 제대로 된 재즈 이론서를 펴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양 원장은 수개월에 걸쳐 영어 원서를 꼼꼼히 공부한 끝에 정통 재즈 도서를 출간했다. 그것이 바로 <재즈가 뭐니>였다. 

이후로 신세계 센텀시티 아카데미에서 6개월간 강의했던 내용을 기초로 시대·장르별로 재즈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재즈 입문서 <쉽고 재미있는 재즈의 이해>와 현재 대학 실용음악과, 재즈학과의 교재로 쓰이는 <재즈의 이해>를 출간했다. 이 책들은 국회도서관, 대학도서관, 실용학과 교수들에게 배포되어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후속작도 생각 중이에요. 그때는 악기별 재즈의 역사, 재즈 곡 해석, 숨겨진 명반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써볼 생각이에요”라고 양 원장은 재즈를 향한 각별한 그의 사랑을 이렇게 전했다.  

양돈규 원장이 직접 직필한 재즈 입문 도서(사진: 양돈규 씨 제공)
외국인 손님들을 위해 외국어로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는 MONK의 인터넷 사이트(사진: MONK 웹사이트 캡처).

힘들어도 끝까지

많은 사람들이 MONK를 찾아오는 이유는 재즈클럽이라는 희소성도 한 몫 하지만 저렴한 입장료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했다. 잼 데이(Jam Day)인 월요일은 무료입장이고 다른 날은 특별공연을 제외하면 일괄 5000원으로 통일이다. 라이브 재즈 공연을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하기에는 다소 저렴한 가격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라이브를 즐기고 싶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포기하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라고 했다. 그래서 단골 손님들은 암묵적으로 음료나 안주를 구매하면서 클럽의 운영에 도움을 준다. “클럽이 적자가 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의사로 번 돈으로 메꿔 나가요. 재즈 문화를 지키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일이고 재즈는 포기하면 안 되는 기쁨이에요”라고 양 원장은 말했다.

라이브 재즈를 듣기 위해 언제나 MONK를 찾은 손님들이 가득하다(사진: MONK 제공).

MONK를 찾는 손님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지만 특히 외국인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이는 구글에 ‘재즈클럽’을 검색할 때 한국의 재즈클럽 중 1순위로 올라오는 재즈클럽이자 일본인 여행 가이드북에 꼭 들러야 할 부산의 명소로 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철에 일본 관광객이나 미국 항공모함이 부산을 찾을 때면 으레 외국 손님들이 몰려들어 양 원장은 “MONK를 계속 운영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양 원장은 본업이 의사이기에 주로 병원에 몸이 묶여있지만 1박 2일이나 2박 3일로 가까운 일본, 중국, 홍콩 등의 재즈 클럽의 찾아간다. 이처럼 짬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떠나 재즈의 바다를 떠도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1996년부터 거의 매년 해외 재즈 페스티벌에 갔다. 스위스,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의 재즈 페스티벌을 투어했던 그는 아마 국내에서 해외 재즈 페스티벌에 가장 많이 참석한 사람일 것이다. 2019년 3월 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동양 최대 재즈 페스티벌인 ‘JAVA Jazz Festival’의 참관 예약을 이미 해놓아 그의 끝날 줄 모르는 재즈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해외 재즈페스티벌이나 재즈 클럽을 찾으러 떠날 때가 가장 좋고 다시 귀국할 때가 가장 싫어요.”

그래도 재즈

양 원장은 평소에 틈만 나면 클럽에 들러 흥얼거리고, 춤추고, 이야기한다. 한 주에 두 번 펼쳐지는 라이브 공연 때는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내키는 대로 손뼉을 치고, 가벼운 환호를 보내곤 한다. 낮에는 소아과 의사, 밤에는 재즈클럽 MONK의 운영자로 일하며 재즈처럼 예측하지 못할 통통 튀는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죽는 순간까지 MONK를 운영할 생각이에요. 의사에서 은퇴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MONK에만 집중할 거고요. 재즈와 함께한 30여 년 삶은 무척이나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동안 MONK와 함께 했음을 보여주는 무대 뒤의 대형 현수막(사진: 취재기자 박찬호).

MONK의 영업시간은 ‘저녁 6시부터 11시 공연 마지막 순간까지’다. 하지만 양 원장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MONK의 영업시간은 재즈가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라고 말이다. 술집이 아닌 문화공간과 부산 재즈의 역사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언제나 감미로운 음악과 따뜻함이 가득한 재즈 클럽 MONK. 오늘도 그는 클럽의 한 켠에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치고 박자를 맞추면서 재즈를 감상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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