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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승효상 편①] 승효상 건축은 감성에 바탕한 휴머니즘, 인간성 회복하는 공간‘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승효상 편①]은 인터뷰 시점이 5년 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 잡지 ‘부산이야기’ 중 ‘차용범이 만난 부산사람’이 만난 부산출신 건축대가입니다. 여러 신문·잡지를 통해 그의 쟁쟁한 명성 익히 들었구요. ‘감성으로 집을 짓는 사람’, ‘아시아 대표 건축가’ 같은 평가도 귀에 익습니다. 그럼에도 전 그를 ‘부산사람’으로 인식하질 못했습니다. ‘건축가 승효상’의 명성은 그동안 부산을 떠나 서울을 바탕으로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승효상=부산사람’을 못질해 준 이는 연출가 ◯◯◯입니다. 혹 기억하실지 모를 일입니다만, 전 ‘부산이야기’ 호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 있구요. 그 인터뷰에서 저와의 인연도 좀 밝힌 바 있습니다. 그 ◯◯◯, 저와 같은 어느 문화상 받은 인연도 있구요. 그 수상자 모인 한 문화포럼의 같은 회원이기도 하지요.

얼마 전, 그 포럼에서 문화토론을 가졌습니다. 발제자는 부산문화재단 ◯◯◯ 대표, 연극연출가 ◯◯◯ 교수, 두 분 다 같은 문화상 수상한 포럼 회원이죠. 발제 주제는 “부산문화, 넘치는 것, 모자라는 것.” 그는 정말, 그답게, 알차고도 신랄한 발제를 해 주었어요. 그 발제에서 ◯◯◯은 중요한 한 가지를 지적하더군요. “부산문화, 왜 부산사람 범위를 폐쇄적으로 가르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계 속에서 한국을 빛내는 유명한 ‘부산사람’들을 왜 부산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느냐고 항변하고, 그 대표적 인사로 승효상, 백건우 같은 분들을 거론하더군요.

승효상을 인터뷰한 계기입니다. 승효상과 그는 고교 동기더군요. 인터뷰 전, ◯◯◯의 ‘부산사람론’을 얘기했더니, 그도 “그런 일이 있었냐?”면서, “아, 나도 공감하는 얘기”라고 받더군요. 며칠 전 중앙일보 주말섹션 ‘중앙 J View'에 난 ’승효상의 아기택처(我記宅處)‘ 중 안동 병산서원 얘기도 나왔구요. 그 사진에 실린 그 시각 그대로, 얼마 전 포럼 회원들이 서원에서 일박했으며, 그 때 선생을 초대할 생각도 했었다는 얘기까지 덧붙이니, 인터뷰 ice-breaking은 ’끝.‘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 일사천리 진행한 결과, 아래와 같이 엮어 올립니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承孝相, 66). 한국을 넘어, 세계 건축계의 대가로 큰 '부산사람'이다. 그의 건축에는 독특한 철학이 있다. 사람과 자연의 조화, 보기 좋은 건축보다 그 안의 사람이 행복한 공간... 그만의 깊은 감성에 바탕한 휴머니즘 건축이다. 그의 지향점은 뚜렷하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도시)공간'이다.

그는 ‘감성으로 집을 짓는 사람’이란 평가지만, 그저 소박한 건물만을 짓는 건축가는 아니다. 거대한 파주 출판문화단지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중국 만리장성 주거단지 상징건물을 설계하며, 올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엄연한 아시아 대표 건축가의 한 사람이다. 오늘도 부산 사투리를 펄펄 날리며 부산을 즐겨 찾는 건축대가, 그 휴머니즘 건축의 눈은 오늘 부산건축을 어떻게 볼까?

부산이 낳은 위대한 건축가 승효상의 표정(사진: 차용범 제공).

“난, 부산사람 기질 그대로 산다”

Q. 먼저, '부산사람 승효상'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당신은 왜 부산사람인가?

그는 반응한다. "나는 기질부터 부산사람이다. 그 기질 그대로 살고 있다." 그가 말하는 그 기질은 '절박함'과 '낙천성'이다. 억센 억양의 사투리, 앞뒤 끊고 얘기하는 어법, 화끈한 성격..., 지리적▫역사적 바탕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두 단어 역시 동전의 양면으로 본다. "내가 일하는 원동력은 그 절박함 때문이다. 나는 일상에 지칠 때면 고향 부산을 찾고 있다. 부산바람을 쐬며 내 기력을 회복한다."

그는 부산 태생이다. 본적지는 서구 서대신동 184번지, 지금 구덕운동장 뒤편이다. 가족은 해방 후 월남, 6▫25전쟁 때 피난 왔다. 어렸을 땐 불우했다. 육성회비를 내기 어려웠다. 수업을 받지 못하고도 바로 귀가하지 못해, 송도 바닷가까지 걸어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방황하던 소년시절,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배려가 있었다. 도서관의 책을 마음껏 읽으며 현실 밖의 세상을 한껏 탐험했다. 책은 삶의 돌파구였다.

인터뷰하고 있는 건축가 승효상(사진: 차용범 제공).

“나는 어렸을 때 살던 집, 그 마당에 아련한 추억이 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일곱 가구가 모여 사는 형태, 마당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사건, 마당에서 바라본 풍경..., 그의 건축인생을 가름한 중요한 모티브다. 그가 추구하는 ‘땅과 사람을 위한 건축’이다.

그가 건축을 전공키로 한 것은 경남고교 3학년 때.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미술에 빠졌다가, 누님의 권유 덕분에 건축의 길을 찾았다. 서울대 건축학과 석사과정까지를 마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과대에서 실무를 겸하며 공부했다. 한국 건축계의 거장 김수근 문하로 건축계에 입문, 15년간 ‘공간연구소’에서 일했다.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 이슬을 밟는 집)를 창업, 독자적 건축세계를 구가 중.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서울건축학교 운영위원까지, 다양한 건축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승효상 편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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