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 중독 지나치면 정신질환"... 병명 '셀피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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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 중독 지나치면 정신질환"... 병명 '셀피티스'
  • 취재기자 안신해
  • 승인 2015.05.1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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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취 심리...하루 6번 이상 찍어 SNS올리면 '위험수준' 판정 받는다

부산 경성대 앞 어느 카페 안. 테이블 곳곳에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테이블들에는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아닌 찰칵거리는 카메라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들은 카페 특유의 주황빛 전구 아래에서 셀카(영어로는 셀피, selfie)를 찍고 SNS에 올리느라 여념이 없다.

대학생 이유경(22,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씨는 카페를 갈 때 음료나 분위기 때문이 아닌 사진이 잘 나오는 곳, 이른바 '조명발'이 잘 받는 곳을 주로 간다. 간혹 나누는 대화들도 셀카를 찍는 도중 잠시 나눈다. 대화 주제도 셀카 사진이다. 이 씨는 “새로운 장소에 가면 사진부터 찍는 게 이제는 습관이 된 것 같다”며 “잘 나온 사진을 건지려면 한 번 찍을 때 대략 100장 정도는 찍는다”고 말했다.

최근 이 씨는 봄을 맞아 온천천으로 꽃놀이에 나섰다. 그러나 꽃과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은 잠시뿐, 이 씨는 꽃과 함께 자신의 사진을 찍기에 적절한 장소를 찾자마자 카메라부터 꺼내 들어들었다. 그렇게 이 씨가 그 곳에 머무른 시간은 40여 분 정도. 이 짧은 시간 동안 이 씨가 찍은 사진은 300장이 넘었다. 대부분이 셀카 사진이다. 촬영이 끝난 후에 그녀는 주변을 더 둘러보지 않고 그 곳을 떠났다. 이 씨는 “꽃이랑 찍은 내 사진을 SNS에 올려서 자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스스로의 모습을 찍고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셀카 찍는 행위를 심각하게 많이 하는 사람들은 셀카에 중독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등장했다. 미국 정신의학회(APA)는 셀카를 많이 찍어 올리는 것을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 진단하고, 셀카를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타인과의 친밀감을 높이려는 현상을 ‘셀피티스(selfitis)’라고 정의했다.

늘어만 나는 셀카 중독에 대해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셀카 중독 자가진단 방법도 인터넷에 등장했다. 이에 따르면, 하루에 최소 3번 이상 셀카를 찍지만 SNS에는 올리지 않는다면 ‘경계 셀피티스,’ 하루 최소 3번 이상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리면 ‘급성 셀피티스,’ 하루에 6번 이상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리면 제어할 수 없는 ‘만성 셀피티스’다.

아동심리 전문가 박순옥 교수는 셀카 중독이 미디어 세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바일 중독 현상의 하나라고 보고 있다. 박 교수는 셀카로 사진을 많이 찍어서 자기 혼자 감상하고 보관하는 것은 중독이라고 볼 수 없고, 이것을 SNS에 끊임없이 올리는 것이 중독 증상이라는 것이다. 박순옥 교수는 “셀카 중독은 자기만족과 과시, 보이지 않는 군중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며 “이런 사람들은 셀카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만족을 얻는다”고 말했다.

셀카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정보기술의 성장 덕분이다. 그 안에는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있고,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구도 한몫했다. 중독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셀카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면, 현대인은 셀카를 남긴다는 속담이 새롭게 등장할 정도다. 셀카의 인기와 함께 셀카라는 단어의 사용도 급증해서, 2013년 옥스퍼드 사전은 그 해의 단어로 셀피를 뽑았다. 옥스퍼드 출판사는 2013년 셀피라는 단어가 사용됐던 빈도가 전년도보다 170배 늘었다고 밝힌 적도 있다.

▲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 selfie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총 게시물 수가 2억 개가 넘는다(사진: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셀카의 인기를 입증하듯, 더 만족할 수 있는 셀카를 위해 새로운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학생 송모(22, 경남 양산시 평산동) 씨는 최근 스마트폰을 바꿨다. 전의 핸드폰에 큰 이상이 있었던 건 아니다. 통화, 문자, 인터넷 등 스마트폰이 갖춘 기본 기능들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지만, 단 한 가지, 카메라 기능 고장이 휴대전화를 바꾼 이유였다. 새로운 폰을 보러 간 그녀는 많은 기기 중에서도 화질이 좋다고 소문난 아이폰을 구입했다. 송 씨는 “아이폰이 안드로이드보다 이용할 때 훨씬 불편하지만, 카메라 화질을 볼 때면 흐뭇해진다”며 “(카메라만 좋다면) 아이폰의 이 정도 불편함은 감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대 앞 휴대전화 판매점 직원 강민수(32,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카메라 화질 때문에 아이폰을 사는 고객을 자주 만난다. 그는 “최근 휴대폰을 그를 때, 고객들은 카메라 화질을 가장 먼저 비교해 본다“고 말했다.

셀카의 인기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셀카를 위한 부속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셀카봉과 셀카렌즈가 있다. 셀카봉은 긴 봉에 휴대폰을 장착해 팔 길이보다 먼 곳에서 넓은 앵글과 다양한 각도로 셀카를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다. 셀카렌즈는 스마트폰 카메라 부분에 부착하는 렌즈로 광각, 망원, 접사 렌즈 등 다양한 종류가 있고, 휴대가 편리하다. 이 중에서도 셀카 기능이 탑재된 광각렌즈가 인기다. 이 렌즈를 스마트폰에 부착하면 애써 팔을 뻗지 않아도 본인의 허리 높이 반신 사진은 혼자서도 충분히 촬영 가능하다. 셀카 전용 카메라 어플리케이션도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앱들은 사진을 찍은 후에 보정할 수 있는 포토샵 기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기 전 미리 필터 설정을 하여 예쁜 색감으로 셀카를 찍도록 돕는 기능도 있다. 최근에는 셀카를 찍고 나면 자동으로 얼굴을 인식해서 보정해주는 앱도 등장했다.

특정 장소나 행위에 대한 사진을 올리고 댓글이 달리는 피드백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반대로 셀카 때문에 자신감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 김모(23,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 씨는 셀카를 찍을 때마다 오히려 자신감이 더 사라진다. 자신의 사진과 SNS에 있는 타인의 사진을 자꾸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 씨는 타인에 대한 부러움 때문에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의 셀카를 저장해두고 며칠 동안 그 사진만 바라보고 있을 때도 많다. 김 씨는 “SNS를 보면 요즘엔 예쁘고 잘생긴 사람밖에 없는 것 같다”며 “좋아요 숫자가 적은 것도 내 사진이 그들보다 덜 예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셀카 행위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간호조무사 수술실 셀카 사진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성형외과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간호조무사의 SNS에는 수술실 안에서의 셀카와, 가슴보형물로 장난치는 모습 등 몇 장의 사진이 올라왔고, 그 중에서는 수술대 위 환자의 모습이 보이는 사진도 있었다. 이걸 본 누리꾼들은 때와 장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할 것 아니냐, 환자의 신상은 어떻게 책임지느냐, 내가 수술 받을 때도 저럴까 봐 무섭다는 등의 비판의 목소리를 인터넷에 올린 바 있다.

셀카 때문에 피해를 입는 일은 주변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최근 김영혜(49, 부산 수영구 망미동) 씨는 직장동료 때문에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김 씨는 얼마 전부터 직장 동료와 함께 주말마다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김 씨는 여행다운 여행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많았다. 그 이유는 여행지 입구와 근처 몇몇 장소에서 사진만 찍고 관광은 하지 않은 채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되돌아가자고 하는 그 직장 동료 때문이었다. 김 씨는 “나는 관광을 하고 싶은데 입구 근처에서 사진만 찍고 가자고 하니 내가 사진 찍어주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순옥 교수는 최선의 중독 치료 방법은 중독행위를 줄이는 것이라며 셀카 중독도 셀카의 행동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치료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취미 생활이나 친구들과의 다른 사교 활동으로 셀카로부터 관심을 돌리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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