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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주홍 선생 기리는 '향파 문학거리' 걸어 보세요부경대 담장 600m에 향파선생 작품 패널 부착...체계적 관리와 보완 필요 / 김수현 기자
향파 문학거리는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77번 길에 있다. 부경대 한쪽 담장을 따라 죽 이어지는 향파 문학거리는 경성대부경대 지하철 역에서 내리면 도보로 약 5분 거리에 위치한다(사진: 네이버 지도 캡처)

부산의 대표적인 대학로 중 하나로 꼽히는 경성대·부경대 거리는 대학생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노소가 모이는 번화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경성대 대학로 하면 젊은이 취향의 다양한 유흥업소와 오락거리가 많은 곳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경대와 인근 주민들은 이 거리에 한 줌의 ‘문학’ 감성을 불어넣었다. 부경대 담장을 따라 설치된 ‘향파 문학거리’가 바로 그 역할을 맡았다.

소설가 이주홍 선생의 동시집 <보리밭에서>(1983)의 시가 향파 문학거리에 곱게 전시되어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수현).

부경대와 울타리 한 장의 경계로 조성된 향파 문학거리는 소설가 이주홍 선생의 소설 속에서 가져온 문장들이 울타리에 멋들어지게 적혀 있어 문학적 감성을 고양시킨다.

향파 문학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이 거리를 소개하는 단아한 표지판이다(사진: 취재기자 김수현).
향파 문학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이주홍 선생의 시 <해같이 달 같이만>이 적힌 그루터기다(사진: 취재기자 김수현).

향파 문학거리에 들어서게 되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향파문학거리’라는 멋진 표지판과 이주홍 선생의 시가 적힌 그루터기다. 이 거리의 이름, 향파(向破)는 소설가이자 아동문학가인 이주홍 선생의 호인데, 이것은 “깨트림을 향한다”는 의미다.

이주홍 선생은 일제감정기인 1906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자랐다. 암울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던 그는 힘든 와중에도 약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동화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렇게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다 1949년 부산수산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를 기억하기 위해 부산수산대의 후신인 부경대가 2009년 향파 문학거리를 조성한 것이다.

부경대학교의 ‘향파관’ 건물도 향파 선생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것이다(사진: 취재기자 김수현).
부경대학교의 ‘이주홍 문학비’는 향파관 바로 앞 공터에 위치해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수현).

이주홍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었을 때가 2006년이었다.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이주홍 선생의 문학비를 학교 교정에 세웠고, 이주홍 선생이 재직 시 강의하던 강의동을 새로 지어서 ‘향파관’이라고 명명했다. 이주홍 선생이 남긴 흔적들이 부경대학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학교가 이주홍 선생을 기리기 위해 향파 문학거리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이주홍 선생의 작품인 <피리 부는 소년>(1957)의 내용 중 일부가 향파 문학거리를 장식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수현).

이 거리는 문학골목답게 순수함을 뜻하는 하얀색의 산뜻한 울타리에 이주홍 선생의 문학 글귀와 그 도서의 표지를 디자인해 팻말처럼 걸어두었다. 전시작품 선정은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남송우 교수가 맡았고, 디자인 도안은 부경대 시각디자인학과 홍동식 교수가 맡았다. 당시 남송우 교수는 교무처장이었고, 홍동식 교수는 기획부처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두 교수가 자연스럽게 이 일을 맡게 됐다고 한다. 남송우 교수는 “대연3동 동장이 나에게 찾아와서 향파 선생님이 예전에 재직하실 때 출근 시에 걸어 다니시던 길이어서 여기에 향파 거리를 한 번 조성해 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홍동식 교수는 "그래서 2000년대 초중반 쯤에 대학 담장 허물기를 진행했다"고 회상했다. 대학은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이므로 폐쇄적인 학교 건물의 담장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홍 교수는 “처음에는 담장 허물기에 반대가 많았다. 학생들이 지역민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경대 담장을 허문 후 반응이 폭발적으로 좋았다고 한다. 그런 호응에 힘입어 허문 담장을 따라서 향파 문학거리를 조성하게 됐다고.

남송우 교수는 문학은 인간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남 교수는 “이주홍 선생의 문학 작품 중에서 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인생을 사유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디자인을 맡은 홍동식 교수는 하얀 펜스에 덩굴장미를 그 밑에 심어 작품이 적힌 판을 부착하는 식으로 향퍄 거리를 꾸몄다고 했다. 이 향파 문학거리는 600m로 꽤 긴 거리다. 실제 향파거리를 조성할 때 길이가 길어서 2차로 나눠서 2년 동안 작업이 진행됐다고 한다. 홍 교수는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재능 기부로 이 작업에 참여했다. 이 거리를 지나는 지역민들과 학생들에게 문학 작품을 쉽게 접하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향파 문학거리는 번화가가 근처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이동하거나 주변의 가게를 이용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수현).

이 향파 문학거리에는 문학적 정취가 묻어나서 그런지 여러 가게와 카페가 많이 들어섰다. 가게들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서 이 거리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카페에서 만난 이연영(20, 부산시 남구) 씨는 “이곳이 향파 문학거리라는 것은 알지만 만들어진 연유를 모르겠다. 무슨 의미로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편의점에서 만난 박창모(27) 씨는 “향파 문학거리가 조성된 것은 괜찮은 시도지만 전시 작품의 양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향파 문학거리는 완성된 지 시간이 제법 흘렀다. 작품이 한 번 전시되면 퇴색될 수밖에 없어서 손질하고 보완할 시기가 온 듯하다. 남송우 교수는 “조만간 홍동식 교수와 의논을 해서 작품들을 새롭게 복원하고 울타리를 보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향파거리에는 상가에 인접해 있어 많은 쓰레기들이 널려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수현).

최근 향파 문학거리는 상가와 바로 붙어 있기 때문에 전시된 문학작품 주변에는 온갖 쓰레기와 불법 홍보물들이 가득하다. 정기적으로 돌볼 수 있는 이가 필요한 것이다. 남송우 교수는 “대연3동 동사무소에서 행정적으로 관리해 주면 좋겠지만, 우선적으로 주변에 있는 상가들이 이 거리가 문학거리임을 자각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향파 문학거리는 대연 3동 주민 센터에서 550만 원, 부경대 측에서 550만 원, 그리고 남구청에서 4000만 원을 지원해서 대략 5100만 원의 비용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 받을 것이라는 당시의 기대와는 다르게 많은 이목을 못 끌고 방치되어있는 상태다. 부경대학교의 향파관과 이주홍 문학비, 그리고 향퍄 문학거리를 묶어서 함께 홍보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남송우 교수는 “이름만 향파관으로 하지 말고, 향파관 안에 따로 공간을 좀 확보해서 견학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며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향파관과 문학거리를 들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향파 문학거리의 낙후되고 오염된 시설이 최근에 들어와 새롭게 단장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수현).

향파거리를 향한 관련자들의 걱정이 전달이 됐는지 현재 이 거리에 페인트칠을 새로 하는 등 새로운 방문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남 교수는 “매년 5월 말에 동래구 온천장 향파 문학관에서 향파 문학제가 열린다. 이곳 향파 문학거리와 연계해 행사를 치를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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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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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z6912 2018-12-05 20:25:47

    부경대에 이런곳이 있는 줄 몰랐네요. 기자님 덕분에 유익한 정보를 알았습니다. 언제 기회가 닿을때 한번 걸어보아야 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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