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동’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한 학생이 교실을 빠져나와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간다. 그러나 곧바로 집을 향하는 게 아니고 학생이 간 곳은 학교 운동장 한 편에 자리 잡은 의외의 ‘텃밭’이었다. 그 학생은 텃밭의 배추와 상추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괜히 이파리를 쓰다듬어 본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길에 학생은 이번에는 학교 안에서 보기 드문 사슴 축사에서 다시 걸음을 멈춘다. 학생은 귀여운 사슴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집으로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학생이 다니는 학교는 시골 어딘가에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부산시 사하구 도심 속에 있는 삼성여고다. 삼성여고에는 학생들이 직접 기르는 텃밭과 사슴이 있다. 이른바 도시 농업 체험장이다. 말하자면, 이곳은 도시에서 농촌이 하는 일을 체험해보자 의미의 공간이다.
학교 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도시농업 체험장이 나온다. 체험장에는 약 600평의 밭이 있다. 이 밭에서는 1학년을 대상으로 ‘도시와 농업’이란 수업을 한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양파, 고구마, 배추, 상추 등 다양한 채소를 키우고 밭을 관리하는 직원과 학생들이 함께 수확한다. 정규 수업 외에도 동아리 시간에 개별 동아리 학생들이 수경재배도 진행하고 있다. 이 학교 학생 김소희(19, 부산시 사하구) 양은 “도농 수업은 평소에 접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할 수 있어서 신기한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여고의 넓은 운동장 옆 우리에는 맑은 눈을 가진 사슴 두 마리도 살고 있다. 이렇게 사슴을 기르는 학교는 전국에서 삼성여고가 유일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사슴 우리 앞은 사슴을 보러 몰려온 학생들로 가득하다. 정다빈(17, 부산시 사하구) 양은 “쉬는 시간이면 항상 사슴을 보러 온다. 평소에도 동물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사슴을 보고 만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삼성여고는 가을이 되면 사슴의 뿔을 잘라 수능을 앞둔 3학년 학생들에게 녹용으로 만들어 나눠준다. 또, 1학년 학생은 1년 동안 직접 키운 채소를 수확해 다 같이 고기 파티도 한다. 차소현(17, 부산시 영도구) 양은 “도시에 살면서 흙을 만지고 직접 키운 채소로 음식을 만든다는 것을 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 우리가 직접 재배한 농작물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으니까 남이 못해본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 내에 사슴이 함께 지내면서 학생들과 교사들은 냄새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김소희 양은 “사슴 우리 주변에 냄새가 심하게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사슴을 키우는 게 좋아서 대부분 참고 지낸다”고 말했다. 학교의 도시농업체험장 운영에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은 우려도 있다. 학교는 사슴들의 사료와 텃밭에 심을 모종 비용 등은 모두 큰 돈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학교예산으로 해결한다고 한다.
삼성여고는 도시농촌 체험이란 특별한 활동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추억과 사랑을 선물하고 있다. 졸업생 권지영(20, 부산시 사하구) 씨는 “학교에 사는 사슴들의 뿔을 잘라서 녹용을 주는 건 다른 학교와 다르게 특별했고, 받았을 때는 너무 기분이 좋았았다. 도농 수업도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친구들과 함께해서 학교에 대해 즐거운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삼성여고는 어떻게 이런 자연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게 됐을까. 삼성여고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기독교 이념과 ‘사랑을 심고 뜻을 펴자’는 교훈을 바탕으로 설립됐으며, 설립자 강대석 씨가 학생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가르쳐주기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한다. 현 강성봉 이사장은 시빅뉴스와의 직접 인터뷰에서 “요즘 아이들은 도시에 살면서 동물을 보고 손으로 흙을 만질 일이 많지 않은데, 학교에서 이런 경험을 통해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삼성여고 권장현 교사는 “도시농촌체험장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이건 삭막한 도시에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진정한 힐링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