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似而非) 극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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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似而非) 극복론"
  • 경성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우병동 교수
  • 승인 2013.01.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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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되었지만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한다고 몇 년간 머물다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느낀 것 중에 "이건 아닌데…" 했던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첫째가 우유와 치즈 등 낙농제품의 맛이었다. 겉모양은 똑같은 흰색과 노란색으로 맛있게 생겼지만 마시고 먹어본 맛은 상당히 싱거웠다. 미국에서 먹던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훨씬 덜하고 밋밋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재료의 양이 덜해서 그랬을 것이다. 두 번째 차이는 농구 시합이었다. 미국 선수들이 그 큰 덩치로 코트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하고 링 위를 넘나드는 고공의 슛을 내리꽂는 것을 보다가 우리 선수들이 시합하는 것을 보니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슛의 박진감도 덜해 좀 싱거운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는 가수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었다. 미국 가수들의 격렬한 몸놀림과 현란한 율동에 비해 우리 가수들은 어딘가 뻣뻣하고 활력도 덜해 보였던 게 당시의 느낌이었다.

물론 요즘은 달라졌다. 우유도 치즈도 이제는 본바탕 것 못지않게 다양하고 고급스러워졌고 맛도 훨씬 좋아졌다. 농구 역시 덩치 큰 미국 선수들이 코트를 휘젓고 다니고 우리 선수들도 이제는 외국 선수 못지않은 기량으로 덩크슛을 꽂아넣곤 한다. 가수나 연예인들은 더하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는 모습은 어느 외국 가수 못지않게 활기차고 발랄하다. 이제 우리나라 연예 오락은 한류라는 이름으로 동남아는 물론 미국에까지 진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포츠나 연예, 음식뿐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 생활의 모든 면이 세련된 외국의 모습들과 별 차이가 없다. 옷차림에서부터 집이나 사무실 등 주거생활, 휴일을 즐기는 여가생활, 심지어 몸매나 얼굴 등 외양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외국과 닮아 있고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대등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외국 사람들과 같아진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우리가 외국 음식을 잘 만들고 먹어도 외국 사람들이 볼 때 그것은 역시 그 나라 것이고,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 온 춤과 노래를 잘 불러도 그들이 볼 때는 흉내를 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 비가 미국에서 멋진 공연을 펼쳤을 때 미국 언론이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미국 가수들의 흉내를 내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 바로 그렇다. 최근 뉴욕타임스 지가 삼성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하면서 애플의 아이팟이나 소니의 워크맨처럼 자신의 색깔을 가진 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반짝 성공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일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앞서간 남의 뒤를 열심히 쫓아가느라 모든 노력을 다했고, 이제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힌 것은 물론 몇몇 분야에서는 오히려 그들을 앞지르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그들의 것을 닮아가기 위한 것에 그쳤을 뿐 우리 고유의 좋은 것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취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남들이 진정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주지 않는 문제가 있다. 비슷할 뿐 진짜는 아닌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사이비(似以非)라고 부른다.

우리 고유의 것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많다. 전통의 스포츠인 씨름이 설 자리를 잃고 있고, 판소리나 창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일본의 스모와 노 같은 전통 기예들이 인기가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 최근에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조가 학생들의 교과서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 우리보다 국력이 모자란 동남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외국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옷을 입고 특별한 행동을 할 때 오히려 문화적인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경제든 문화든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내고 고유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흉내내기는 그만하고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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