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글쓰기의 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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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글쓰기의 달인이었다
  • 편집인 강성보
  • 승인 2015.05.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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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단한 글쟁이였다. 그가 남긴 글들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의 글은 절제되고 박력이 넘치며 메시지가 분명했다고 한다. 변호사 시절, 법정에 제출된 그의 변론서는 간결하고 논리정연해 판사들이 그 변론서만 읽고선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그를 경험한 많은 법관들의 증언이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노무현은 호소력 있는 연설로 유명했다. 지지자이든, 아니든 간에 그의 연설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몰입되었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 연설력을 바탕으로 노무현은 5공 청문회 과정에서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한 뒤 부산 출신임에도 광주의 민심을 획득하고, 결국 이회창 대세론을 무너뜨리며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었다.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연설문을 직접 쓰는 일이 많았다. 보좌관들이 초안을 써오더라도 많은 부분을 뜯어고쳐 글솜씨가 모자라는 보좌관은 스트레스를 적지않게 받았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그 ‘버릇’은 계속됐다. 중요한 담화 등을 앞두고 있을 때 연설문 비서관들을 불러 담화의 주제를 설명하고 이런저런 주문을 내는데 그 지시내용이 하도 구체적이고 정확해 그대로 받아쓰면 명 연설문이 될 정도였다고 한 보좌관은 말한다. 당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연설 비서관들은 스스로를 ‘노가다’로 불렀다. 그만큼 노 대통령의 연설문 초안 쓰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서 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5년, 도합 8년간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역임한, 그 노가다중 한 명 강원국 씨는 그의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2003년 3월 중순, 대통령이 4월에 있을 국회 연설문을 준비할 사람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직접 쓸 사람’을 보자고 했다. 윤태영 연설 비서관과 함께 관저로 올라갔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과 독대하다시피 하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다니. 이전 대통령은 비서실장 혹은 공보수석과 얘기하고, 그 지시내용을 비서실장이 수석에게, 수석은 비서관에게, 비서관은 행정관에게 줄줄이 내려 보내면, 그 내용을 들은 행정관이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를 원했다. '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한 내가 좀 눈이 높거든.' 식사까지 하면서 2시간 가까이 ‘연설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이어졌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열심히 받아쓰기를 했다.”

강원국 비서관이 받아 쓰기 한 노무현 연설문 쓰기 지침 요강은 다음과 같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그런 표현방식은 차차 알게 될 걸세.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추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추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을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뒤는 잘 안 보네. 문단의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그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백화점식 나열보다는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줄일 것은 과감히 줄여서 입체적으로 구성했으면 좋겠네.
29.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이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30.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좋은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네.
31.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2.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3.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30년 기자생활을 하면서 몸에 익혔고, 지금 신방과 교수로서 내가 지도하고 있는 글쓰기 지침도 이와 똑같다. ‘KISS & KILL( Keep it Short, Simple & Keep it Large, Legible)’ 과 ‘Show, Don’t Tell(설명말고 보여주라)’의 원칙, 불필요한 수식어 사용금지, 가급적 쉬운 우리말 표현, 주제어 맨 앞에 쓰기 등 모든 지침이 위 33개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아니, 내가 가르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내용도 풍부하다. 다음 학기에도 기사쓰기를 지도하게 된다면 위 지침을 글쓰기의 금과옥조로 삼도록 가르칠 계획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노 전대통령은 상고를 나왔을 뿐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기사쓰기는 물론 일반적인 글쓰기 교육도 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 전문가도 흉내내지 못할 만큼 글쓰기의 원리를 완벽하게 체득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 반해, 강원국 씨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오고 재벌그룹 회장의 스피치라이터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국민의 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비서관을 경험한 글쓰기의 달인이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글쓰기 특강 앞에선 다소곳한 학생의 자세로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강원국 씨의 증언은 이어진다.

"이날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분을 어떻게 모시나. 실제로 대통령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글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또한 스스로 그런 글을 써서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대통령은 깐깐한 선생님처럼 임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설비서실에서 쓴 초안에 대해 단번에 오케이 한 적이 없다."

강원국 씨 등 연설비서관 '학생'들이 초안을 만들고 몇차례 퇴짜를 맞은 끝에 가까스로 완성한 노 전대통령의 명연설 중 하나가 2006년 4월의 ‘독도 연설문’이다. 일본의 독도 참탈 야욕이 노골화되는 시점에 발표된 대국민 담화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진 역사의 땅입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되었던 역사의 땅입니다."

(중략)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입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문제와 더불어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 그리고 미래의 한일관계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일본의 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입니다.” 

(중략)

“우리는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선린우호의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지향과 목표를 항구적으로 지속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사의 어두운 과거로부터 과감히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21세기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 나아가 세계평화를 향한 일본의 결단을 기대합니다”

독도 주권 수호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의 윽박지름은 없었다. 한일관계 개선을 호소하고 있지만 자세낮춤은 하지 않았다. 문장은 당당하면서도 유연했다. 일본을 준엄하게 꾸짖고 나섰지만 비외교적 언어는 구사하지 않았다. 노무현의 독도담화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나타나기 어려운 대통령 연설문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일본이 이 연설을 듣고 움찔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가 감격했다. 그후 독도지킴이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간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의 연설문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진감시키기에 충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아침 김해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검찰 수사망이 좁혀지면서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자살하기 전, 서재에 남긴 유서 한 장은 그의 문장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을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 없다./ 여생도 남에게 신세질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않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 아니겠는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라./ 오래된 생각이다.”

세 문단 170자로 구성된 이 짧은 유서는 그를 지지하든 않든 간에 거의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특히 도덕경에서 인용된 듯한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 구절은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백조는 평소엔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목을 길게 빼고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죽음에 임박해서 자신의 마지막 에스프리를 담은 걸작을 남겼을 때 그것을 스완송(swan song, 백조의 노래)라 일컫는다.

유서는 일종의 스완송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는 글 하고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죽음을 앞두고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유서를 작성하곤 한다.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이다. 물론 재산분배 등을 지시하는 재력가의 사무적 유서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서 속에는 그 사람의 삶과 철학이 응축되어 있기 마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는 스완송 가운데서도 가장 감동적인 스완송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30년 기자생활을 하면서 숱한 유서를 직간접적으로 접해봤지만 그 유서만큼 가슴을 찐하게 울린 유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글은 군더더기 없이 정제되어 있고 함축적이다. 운문은 아니지만 글 속에 운율이 있어 아름다운 서정시처럼 읽힌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간에, 그를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가 생전에 세상에 보여줬던 덕목은 여럿 있다. 상고 출신으로 변호사와 국회의원, 궁극적으론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실패가 뻔히 보이면서도 사지에 뛰어드는 도전정신, 부하 직원들에게도 늘 웃음을 잃지않는 소탈함 등등. 나는 여기에 또하나의 덕목을 추가하고 싶다. 어느 문인, 어느 작가들 못지 않는 감동적인 글쓰기의 달인이라고.

오는 23일 노 전대통령의 서거 6주년엔 나도 추도식이 열리는 봉하마을로 한 번 가보려 한다. 가서 글쓰기에 관해 한 수 배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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