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켓 무시하는 ‘주책없는’ 어르신...젊은 세대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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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켓 무시하는 ‘주책없는’ 어르신...젊은 세대 뿔났다
  • 취재기자 김가희
  • 승인 2015.05.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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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 새치기에 고성방가는 기본...기성세대들 성숙한 시민의식 실종

대학생 김모(25,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얼마 전 시험공부를 위해 여자 친구와 카페를 찾았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기대는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무너졌다.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40대 여성 3명이 쉴 새 없이 큰 목소리로 대화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그 소음을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그녀들은 “사타구니가 가렵다,” “시어머니가 유별나서 죽겠다” 등의 사적인 얘기까지 서슴지 않으며 언성을 높였다. 참다못한 김 씨가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하자, 그녀들은 눈을 흘기더니 더욱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김 씨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여자 친구와 카페를 나왔다. 그는 “화가 많이 났지만, 어른에게 주의를 주기가 껄끄러워 피하는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지하철 화장실을 가끔 이용하는 여대생 김모(24, 울산시 남구) 씨는 이제 새치기에 진물이 날 정도다. 이용자 수는 많고 개수는 적은 여자 공중화장실의 특성상 줄을 서야 이용할 수 있을 때가 많다. 김 씨도 항상 긴 줄을 기다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줄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40, 50대 아줌마들이 한 줄서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김 씨의 이야기다. 그녀는 “(한 줄서기를 해야 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어른이라는 생각으로 자꾸 새치기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장년층의 에티켓 무시에 대한 불만이 세대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에티켓은 사회생활에서 상황과 장소에 맞게 취해야 할 바람직한 행동 양식을 뜻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 서면서 에티켓은 공공장소에서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으로 자리 잡게 됐지만, 정작 기성세대들은 에티켓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게 젊은 세대들의 의견이다.

부산의 은행원 장모(32) 씨도 은행 내에서 중장년층 고객들의 막무가내식 행동이 다른 고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장 씨는 “몇몇 어르신들은 ‘내가 큰돈을 들고 있으니 나부터 해달라’며 고집 피우고 소리 지른다”고 말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대기자가 수십 명인데도 대기표를 뽑지 않고 창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은행원이 다가가 대기표를 뽑아서 차례를 지키라고 설득해도 듣지 않아서, 은행은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 손님들의 불만까지 떠안아야 하는 수모를 겪곤 한다. 그는 “차례를 어기는 손님들과 이를 제지하는 다른 손님들 간의 충돌로 업무가 마비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영화관에서도 중장년층의 에티켓 무시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 부산 해운대구 장산의 한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했던 대학생 김모(26, 부산시 기장군) 씨는 50대 한 여성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대기표도 없이 매표소로 돌진한 그녀는 “부모가 동반할 테니 우리 애 영화 보게 해 줘”라고 말했다. 김 씨는 그 여성 손님이 다짜고짜 반말하는 것에 기분이 나빴지만 청소년관람 불가 영화는 보호자가 동반해도 볼 수 없다고 그녀를 차분하게 타일렀다. 그러나 이어진 그녀의 태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 그녀는 욕설과 함께 “(직원들) 다 나와서 90도로 (나에게) 인사하기 전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 소동은 결국 전 직원이 나와서 90도로 인사함으로써 겨우 마무리될 수 있었다. 김 씨는 “영화관에서 이런 일은 다반사”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어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혔다.

대중교통은 세대 간 에티켓 갈등의 불씨를 어둑 키우는 곳이다. 대학생 조모(24,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최근 지하철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조 씨는 집으로 가는 길에 빈 좌석에 앉아 다른 생각을 잠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세게 내려쳤고, 너무 놀라 올려다보니 4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성이 언짢은 표정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그 남성은 큰 소리로 “아가씨, 나 다리 아픈데 비켜라”라고 언성을 높였다. 조 씨는 반말을 쓰며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태도에 기분이 나빴지만, 주위의 시선이 따가운 듯해서 자리를 비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부탁했다면 양보를 했을 텐데, 마치 내가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일방적으로 자리를 요구하니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 지하철 노약자석에는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를 위한 좌석입니다’라는 문구가 씌어있다(사진: 취재기자 김가희).

실제로 일반석을 포함한 대중교통의 노약자석은 노인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노인이 우선권을 갖는 자리라고 한다. 즉, 근처에 노인이 없고 노약자석이 비어 있으면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경향신문> 2013년 7월 1일 자 보도에 따르면, 도시철도공사에 접수된 자리다툼 민원은 2010년 210건, 2011년 203건, 2012년 174건으로 매년 다수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민원의 대부분은 세대 간의 갈등이며, 임신 초기 여성들이 앉았다가 노인들에게 “(젊은이가) 왜 거기 앉아 있느냐”는 꾸중을 들었다는 불만 등이라는 것이다.

부산에서 수십 년간 버스기사로 일해 온 강모(56) 씨도 이런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강 씨는 아예 좌석 옆에 짐을 갖다놓고 노골적으로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중장년층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강 씨는 “멀쩡해 보이는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억지로 자리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 같은 어른이지만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폰을 안 꽂고 DMB를 시청하는 50, 60대 승객들도 강 씨의 고민 대상이다. 그들은 모두가 눈치를 주는데도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아무렇지 않게 드라마나 야구경기를 본다. 에티켓 없는 행동들은 다른 승객들의 불만으로 이어져 버스기사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강 씨는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에티켓에 대한 인식은 높은 것 같다”며 “공익광고나 캠페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에티켓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부산 남부 경찰서 이모(47) 경위도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이 경위는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중장년층은 무조건 우기는 경우가 많아 제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경위는 “기성세대가 앞장서서 에티켓을 준수하고 그 길을 젊은 사람들이 따라와 준다면 서로 배려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가 개개인의 특성보다 사회적 요인에서 오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일보 2010년 10월 28일 자 보도에 따르면, 주 스페인 박희권 대사는 "광복 이후 급속히 성장하면서 성취와 속도, 경쟁에만 몰입해오다 보니, 가장 기본인 에티켓을 소홀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성대 윤리교육과 조경근 교수도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성세대들이 적절한 에티켓 교육을 받지 못했고 성숙된 시민의식을 갖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 교수는 “기성세대의 안하무인 태도가 문제”라며 “이 같은 문제를 예방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실천과 행동 위주의 도덕교육이 꼭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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