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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의 독재 통치에서 민주주의로...억압받지 않고 이루어진 스페인(에스파냐) 문화 美~女~文 Amenity, Feminism and Lifeway ⑫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칼럼리스트 박기철
  • 승인 2018.11.1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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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총-균-쇠>처럼 서양문명이 동양문명을 정복했던 역사와 달리 생태문명 차원에서 이제 ‘아름답고 여성스럽게 사는 문화’의 제안이다.  

칼럼리스트 박기철

스페인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를 영국식 명칭인 스페인(Spain)이라 하지 않고 에스파냐(Espaṅa)라 한다. 내가 중학생 때 친구와 같이 극장에서 본 <엘시드>라는 영화에서부터 에스파냐에 관한 파편적 지식이 내 머릿속에 주입되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엘시드는 자기네 나라를 쳐들어온 북아프리카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과 용감하게 싸웠다. 또 고등학생 때 혼자서 신당동에 있었던 노벨극장에서 본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영화도 에스파냐 내전(1936~1939)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화에서 ‘좋은 나라’는 ‘나쁜 나라’와 싸우는데 현실에서 나쁜 나라가 이긴다. 인민전선이 세운 좌익 공화파 정부에 맞서 군부, 지주, 왕당파, 카톨릭 교회를 기반으로 한 우파가 맞서 싸워 결국 우파가 승리 한다.

이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의 36년 철권 억압 전제 독재 통치로 이어진다. 그는 스페인 역사상 전무후무한 총통(Caudillo)의 지위로 대통령이나 왕보다 더한 권력을 누리며 자기 권위에 도전하는 그 어떤 행동을 일절 용납하지 않은 엄청난 파쇼 독재자였다. 스페인 내전 중에 게르니카를 잔혹하게 폭격하면서까지 자기의 집권에 엄청난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한 히틀러에 대해서도 프랑코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독자적 인물이었다. 이는 스페인이 2차대전에 독일 이탈리아 편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중립에 선 이유다. 죽을 때까지 권력자였던 그는 자신의 사후 후계로 카를로스 1세(Juan Carlos Ⅰ, 1938~)를 후계로 정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카를로스는 의외로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지닌 국왕이었다. 그가 가장 잘 한 일은 프랑코 정권 붕괴 이후 일어난 군부 쿠테타에 맞서 민선 총리였던 수아레스(Adolfo Suarez Gonzlez, 1932~2014)를 굳건하게 지지한 일이었다. 결국 에스파냐는 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 프랑코 총통의 전제정치 시절에 스페인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삶의 문화는 프랑코 총통의 독재정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미여문(美女文)이다.

에스파냐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즐겁게 대화하고 웃으며 활기넘치게 산다(사진: 박기철 제공).
광장에 모인 에스파냐 남녀가 짝을 맞춰 들겁게 춤을 추고 있다. 에스파냐 사람들의 활달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사진: 박기철 제공).

사람들끼리 활달하게 어울리는 히스패닉 서민들의 생생한 삶을 눈앞에서 보고 몸으로 접하니 이들 한 세대 위 부모 세대들의 삶이 떠오른다. 그 세대들은 억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위에서 조여오는 억압은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삶의 문화를 피폐하게 만든다. 위에서 지배하는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부당하게 구속되지 않는 삶의 문화는 사람답게 사는 가장 중요한 바탕일 것이다. 결국 억압하며 지배하지 않는 온전한 정치가 美~女~文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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