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강남주 편①] "난 100세 시대의 대안, 늘 가능성 굴착하며 사는 문화의 마라토너"
상태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강남주 편①] "난 100세 시대의 대안, 늘 가능성 굴착하며 사는 문화의 마라토너"
  • 차용범
  • 승인 2018.11.12 2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름다운 노년’ 강남주 작가에게 노년(老年)의 길을 묻다 / 차용범

전 부경대 총장 강남주(80, 姜南周) 씨. 그는 청장년 시절 언론사 기자 생활을 하다, 불혹(不惑) 즈음 대학교수로 전신, 대학총장에서 정년퇴임했다. 그 짧지 않은 세월, 그는 본업 외에도 결코 게으르지 않은 시인·수필가·문학평론가였다. 정년퇴임 후의 노년기, 그는 부산문화재단 초대 대표와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부산 문화행정의 전환기적 변화를 이끌며 국제문화교류에도 단연 앞장섰다. 그러면서 ‘옛날 같으면 고려장 나이’ 75세에, 기어이 새내기 소설가로 등단했다. 전업작가는 아니면서, 글 쓰는 일에 관한 한 언론-문학-학문적 글쓰기까지, 늘 일선을 지켜온 꾸준한 마라토너다.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은 시인·수필가·문학평론가로도 명성이 높다. 그는 75세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해 '치졸한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고 기억해 준다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부경대 총장 재임 당시 모습(사진: 차용범 제공).

부산사회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그런 사회적 성취와 쉼 없는 창작활동 때문인가? 아니다. 그는 노년기를 창조적 활력 위에서 살아가는 ‘노년 열정’의 한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더러는 ‘축복인가 재앙인가’를 묻곤 하나, 그 100세 시대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큰 흐름이다. 우리 사회체계는 여전히 ‘80세 시대’, 복지·국가 재정은 물론 교육과 취업까지, ‘60세에 은퇴해서 80세까지’를 전제로 짜여있다. 행복한 노후인가, 불행한 노년인가? 강 작가의 행복한 노년을 보면 그는 뚜렷한 목표 아래 쉴새없이 새로운 풍물을 찾는 탐험가다. 그를 그처럼 끊임없이 재촉하고 설득하는 힘은 무엇인가? 노년들이 우울한 일상 대신 행복한 삶을 꾸릴 길은 어떠한가?

[약력] 

1939년 경남 하동 출생. 부산수산대 졸, 부산대 국어국문학 박사, 부산 MBC 기자(1964), 중앙일보 보도국 차장(1968), 부경대 교수(1978), 부경대 총장(2000),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집행위원장(2003), 중국인민대 명예교수(2004).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2008). 봉생문화상(문학부문, 1989), 어민문화상(1990), 부산시 문화상(1992), 일맥문화대상(2001), 청조 근정훈장(2004), 1975년 ‘시문학’ 추천 등단, 시집 9권, 평론집 3권, 수필집 2권, 2013년 ‘문예연구’ 신인문학작품 공모전 소설부문 당선으로 소설가 입문.

강남주 총장, 그의 평생은 교육과 언론, 문학을 넘어, 문화행정과 문화교류에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그만큼 문화전반에 폭넓은 식견을 갖추고 있고, 맡은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인물이다. 그 ‘창조적 인간’의 80세 근황은 어떠한가?

“소설 쓰기에 바쁘다.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노인문제다. 노인의 고독, 질병, 가족문제, 재산문제..., 결국 삶과 죽음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다. 단편 8편을 완성, 문예지 기고를 준비 중이다. 중편 <유하마도(柳下馬圖)>, 일본 시코쿠(四國) 한 절에 있는 조선시대 동래 화가 변박의 그림에 관한 소설도 200자 500매를 넘겼고. 며칠 전 올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구해 읽고 있다.” 앨리스 먼로, 캐나다의 여성작가, 아름다운 문학적 세계와 위대한 작가정신을 칭송받은 단편소설 작가다. 그 작가, 깊은 주름에 조글조글한 피부의 87세 할머니다.

 

70대 중반 소설가 등단…노년의 삶 조명

Q. 소설쓰기? 그동안 ‘부업’으로, 시집 9권과 평론집 3권을 낸 시인·수필가·평론가가 굳이 소설가까지, 새 명찰을 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소설가, 정말로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고려장 할 나이에 ‘신인 소설가’로 나선 거다. 소설 분야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것이 기쁘다.” 그는 최근 계간문예지 ‘문예연구’ 제61회 신인문학작품 공모전 소설 부문에서 당선했다. 수상작은 단편소설 <풍장의 꿈>.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며 심각한 생의 화두로 마주쳐야 할 죽음에의 성찰과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홀로 지내는 주인공의 거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식과의 긴장과 갈등을 통해 죽음에 대한 철학을 예비하는 모습(심사평)'을 그린 본격적 ‘노년 소설’이다.

Q. 소설 <풍장의 꿈>, 홀로지내는 노인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노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어두운 면이다. 첫 소설을 쓰며 특별히 이 주제를 택한 이유는?

“6-25 전쟁이 끝나고 베이비붐 시대가 왔다. 전쟁을 경험한 부모는 살아서 돌아온 아들의 대를 이을 후손이 급했던 것이다. 출생아가 급속도로 늘었다. 이번에는 정부가 산아제한정책을 폈다. 지금 노년을 쳐다보는 1955년~1963년생들은 55세 정년, 아니면 60세 정년을 하더라도 나머지 긴 생애를 쓸쓸하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그들의 노후는 외롭고, 가난하고, 질병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기에 이르렀다. 그런 인구가 우리 전체인구의 14.6%, 약 695만 명이다. 이들의 삶이 어둡고 우울할지라도, 소설의 소재임은 당연하다. 소설은 현실의 거울이 아닌가.”

 

필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사진: 차용범 제공).

왜, 늦깍이 작가? 가능성에의 도전

Q. ‘늦깍이 작가’, 국제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 출신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는 그의 나이 44세 때 <소설 알렉산드리아>로 등단했다. 그는 나이와 관계없이, ‘작가’로 삶을 영위해야 할 사정이 있었지만, 70대 중반에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 어떤 의미인가?

“‘새로 시작한다는 말은 가능성을 굴착한다는 의미다. 무모함은 창조를 향해 도전한다는 뜻의 다른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들어섰고, 나 역시 그 세계의 속살을 더듬어 보고 싶다’, 난 당선소감에 이런 말을 썼다. 사람은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가능성을 다 발굴하지 못하고 생을 끝내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나 자신도 그러고 있는지 모른다. 소년시절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공부하고 취직하고 강의한다고 거기 시간을 다 쏟았다. 이제 늙었다. 그러나 하고 싶었던 소설쓰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되묻는다. 늙었으니까 포기할 것인가, 한번 도전해 볼 것인가? 이 선택은 무모할 수 있지만, 지금껏 묻혀 있던 가능성에의 도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가능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것, 그가 70대 중반에 새롭게 시작한 이유다.

그는 나림 선생과도 아는 사이였다. 대학생 때도 자주 뵐 수 있었고, 만년에도 부산 오시면 자주 만났다. 서거 얼마 전 부평동 진주비빔밥 집에서 점심도 함께 했다. 선생은 늘 빼어난 이야기꾼이었다. 박람강기의 풍부한 지식과 상식, 식민지 시대의 특이했던 학도병 체험, 어느 것 하나 그 시대 사람들의 관심과 겉도는 것이 없었다. 그는 “나림 선생이 소설을 썼다는 것은 정곡을 찌른 선택이었다. 그리고 내재해 있던 재능의 폭발이었다”고 단언한다.

사례로 등장한 이병주 역시, 언론-문학의 길을 걸은 부산 현대사의 거목이다. 4·19, 5·16 같은 현대사의 격동기마다, 진실을 밝히는 기개와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용기로 사관(史官)·언관(言官)의 역할에 당당했다. 부산 군수기지사령관 박정희와 결합, 함께 세상을 논한 ‘친구’였으나, 5·16 직후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다”로 시작하는 신년논설을 썼다가 2년 7개월을 복역했다. 출옥 후 선택은 작가. 한 달 평균 200자 원고지 1000여 매 분량의 초인적 집필로 80여 권의 작품을 남기며, “술·여자·언론·소설의 만능수재…지성과 능변의 한국 현대사 대표 딜레땅트(예술 애호가)”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강남주 편②]로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