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직구, 알뜰소비인가, 소비욕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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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직구, 알뜰소비인가, 소비욕망인가?
  • 편집위원 양혜승
  • 승인 2015.05.0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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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해외직구족(族)이 늘어나고 있다. 해외직구란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심심찮게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는 뉴스라서 이제는 새롭지도 않다. 관세청 집계에 의하면, 작년 2014년 한 해만도 해외직구를 통한 물품 수입이 1553만 건, 총 15억 4,000만 달러에 달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조 6,000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세계화의 물결이 개인들의 쇼핑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형국이다.

해외직구가 늘어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터넷 이용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제품 구매에도 국경이 허물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해외에서 붙는 세금을 비롯해서 관세나 배송료를 모두 합쳐도 동일 제품을 국내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더 저렴한 경우도 있다 한다. 소위 '호갱(호구 고객을 지칭하는 속어)'이 안되려는 영리한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특히 해외직구족을 알뜰소비자 혹은 알뜰족이라 칭하는 언론보도를 접할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해외직구와 공동구매로 가정의 달 선물 준비 알뜰족 크게 증가”, “알뜰족 '해외직구'에 빠지다”와 같은 헤드라인 등이 그것이다. '해외직구족 = 알뜰족'이라는 공식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설정하는 보도태도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다. 국어사전에서는 '알뜰'을 “생활비를 아끼며 규모 있는 살림을 함”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해외직구는 대체로 국내에 들어온 수입품의 가격이 높아서 그것을 소비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해외 현지로 눈을 돌린 결과다. 국내에 없는 저렴한 품목을 해외에서 직접 사들여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2014년 한 해 동안 해외직구족이 사들인 제품을 품목별로 보면 의류(19%), 건강식품(14%), 신발(13%) 등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러한 품목들의 소비는 필요(need)보다는 욕구(want)를 총족시키는 것이다. 해외직구를 알뜰함으로 연결 짓는 것이 불편해지는 이유다.

이러한 불편함은 개인들의 직구보다는 국내 인터넷 쇼핑몰들의 해외직배송 이벤트들에서 더욱 커진다. 개인들의 해외직구 트렌트에 발맞추어 국내 인터넷 쇼핑몰들이 해외에서 직배송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이벤트가 크게 늘었다. 한 유명 인터넷 쇼핑몰에서 발견한 이벤트의 이름은 이러하다. “알뜰족을 위한 특별찬스 - 이태리 직배송 명품 특가.” 알뜰족을 위한 이벤트가 이태리에서 건너온 명품을 판매하는 것이라는 점이 놀랍다. 마음의 불편함은 이내 씁쓸함으로 번진다. 쇼핑몰의 이런 상품 판매 전략이 고스란히 '알뜰'이라는 이름으로 먹혀들어간다는 점도 놀랍다. 국내 가격보다 싸다면 해외직배송을 통해 명품을 구매하는 것도 알뜰이라고 불리는 현실이다.

언제부턴가 명품에 목을 매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유입되었다. 여자친구 생일선물로 명품가방을 사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명품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품목들에서 과시적 소비가 일어나는 듯하다. 무엇을 소비하는가가 개인의 지위를 결정짓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그야말로 팽배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개인들의 경제 현실은 커져가는 소비욕망을 따라잡지 못하는 듯하다. 어쩌면 해소되지 않는 개인들의 소비욕망이 접점을 찾은 곳이 해외직구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아닐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설을 세워본다. 국내 인터넷 쇼핑몰들의 해외직배송도 어찌 보면 이러한 트렌드에 약삭빠르게 대처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개인들의 소비욕망의 분출을 그들의 심리적 특성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소비욕망은 문화적 현상이고 그 문화는 사회의 산물이다. 사회철학자 마르쿠제는 1964년에 내놓은 자신의 저서 <일차원적 인간>에서 끊임없는 소비에 몰두하는 현대사회를 비판했다. 과도한 산업 생산, 실업, 소외와 억압 등이 팽배한 고도 산업사회에서 개인들은 비판의식이 마비된 채 살아간다고 그는 지적했다. 미디어를 비롯한 문화산업은 개인들의 비판의식을 잠재우고 소비욕망을 부추기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1900년대 중반의 사회에 투영했던 그의 통찰력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아니 국경을 넘어 세계화된 쇼핑이 가능해진 최근의 현실 속에서 그의 통찰력은 더욱 빛을 발하는 듯하다. 해외직구마저 알뜰함으로 둔갑시키는 언론보도를 접하며, 개인들의 소비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문화산업의 문제를 지적했던 마르쿠제의 선견지명을 본다.

얼마 전 퇴임한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의 삶은 그런 의미에서 울림을 준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불렸다. 대통령 재직 시절, 대통령궁을 노숙인들에게 내주고 부인 명의 농장에서 거주했으며, 자신의 월급 중 90%를 사회단체에 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3월에 있었던 퇴임식 때는 1987년형 하늘색 폭스바겐 비틀을 타고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201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정상회담 중 이런 말을 남겼다.

“빈곤한 사람이란 조금만 가진 사람이 아니라, 욕망이 끝이 없으며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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