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서울시청, 혹은 해운대 일대, 대구 동성로 등에서는 성소수자들을 향한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다. 성소수자를 향한 부정적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멸시 및 차별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행위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2016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퀴어페스티벌과 그 주최자들은 축제 반대론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확실하게 말해두지만 나는 그들의 성적 지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난잡한 축제에 반대한다.
축제에 참여하고 앞장서는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당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혐오를 멈추세요”라고. 그러나 나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축제를 반대하는 일반인들은 민망한 의상을 공개된 장소에서 입고 다니길 꺼리고, 노골적으로 성적 취향을 드러내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을 향해 자기들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퀴어인들과 축제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성소수자’라는 단어 속에 ‘소수’는 말 그대로 소수이지 ‘권리’가 될 수 없다. 권리의 근거도 되지 않는다. 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한 ‘혐오주의자’라는 낙인은 ‘소수’라는 속성이 무기인 줄 아는 소수자들의 폭력이다.
먼저 축제현장에서 종종 목격되는 일부 참가자들은 노골적인 노출의상과 성별에 맞지 않는 희한한 옷을 입는데, 여기에 일반인들이 불편함과 거부감이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좋다는 명품 향수조차 지나치면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마당에 해당 의상만이라도 지양해서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참여하는 것이 서로의 편견과 차별을 걷어내는 출발점이 된다. 노출과 성적인 묘사가 인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솔직한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만의 일방적인 논리일뿐이다. 현행법으로도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때로는 처벌대상이 된다. 섹슈얼하게 당당한 모습은 이성연인이든 동성연인이든 간에 자신들의 연인에게만 보여라. 광장은 당신들의 쾌락을 드러내는 장소가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성기모양의 장식품과 온갖 성인용품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축제현장에 드러내놓는 경우도 흔히 봐왔는데, 이것은 축제에 참여한 학생이나 미성년의 성소수자에게는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퀴어축제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차별반대’지만 한발짝 떨어져서 이들을 보고 있으면 원래의 취지보다는 단순히 성적 개방을 강요하는 움직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가운데 가치관이 올바르게 형성되어야 할 학생들이 과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정으로 미래세대의 성소수자들이 당당해지려면 퀴어축제의 방향성이 바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퀴어축제라는 행사를 감성이 아닌 이성적으로 본인들이 살펴야 한다. 퀴어축제 반대론자들은 퀴어축제의 느낌과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로 인한 여파가 아이들과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에 우려를 드러내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인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조차도 “난 동성애를 인정할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비난을 받기 일쑤다. 그런데도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는 이유는 논리적으로도 퀴어축제에 문제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들의 지적을 살펴보고 개선해야 ‘퀴어축제 메시지’가 온전히 한국사회에 퍼질 것이다.
동성애를 하지는 않지만 아무런 편견과 불편함이 없는 사람들이 지난 8월 퀴어축제의 현장에 떡하니 서있는다고 가정해보자. 정녕 주최 측은 이들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퀴어축제 참여자들이 과격하다는 인식이 되레 생기지나 안을지 걱정해야 할 것이다.
동성애를 포함한, 어느덧 소수가 아니게 된 성소수자들이 더 당당한 사회가 오길 바란다. 그러나 퀴어축제를 통해 드러난 성소수자들은 당당한 모습이 아닌 요란한 모습에 불과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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