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동성 친구들끼리 친해서 자주 붙어 다니면 ‘게이냐? 레즈비언이냐?’ 하며 놀리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때는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그저 친구들을 놀리기 좋고 재밌는 소재 거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단어들을 한 번 더 생각을 거치고 입 밖으로 꺼내게 된다. 농담 삼아 꺼내기에는 절대 가볍지 않은 단어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저 남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성향의 사람은 예상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수능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갔는데, 그곳에서 친구는 자신이 게이라고 고백했다. 원래 여성적인 면이 많았던 친구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직접 고백을 듣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표정에 티를 내면 용기를 내서 말한 친구가 무안해할 것 같아서 덤덤하게 대응했다. 내가 그 친구의 입장이 되어 보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었다.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들은 다른 친한 친구는 자신은 교회를 다녀서 그 사실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와 연을 끊은 일도 있었다.
이렇게 동성애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를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친구의 사례에서처럼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이를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신문 기사를 보면, 주요 교단 총회의 ‘동성애’ 반대가 극심하고 각 교단에서는 그에 대한 혐오감이 점점 커진다고 한다. 심지어는 동성애자는 목사 고시를 치를 수 없도록 결의했다. 20대에서는 개신교인이 비개신교인의 4배에 달하는 비율로 동성애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비율은 30대는 5배를 넘었고 나머지 연령대도 다 3배 이상이었다.
단지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일탈을 행한 사람으로 판단하고 억누르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동성애자는 그저 다른 성향일 뿐이고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따뜻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왜 이들을 가족마저 인정해주지 않아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만드는가? 왜 죄의식을 넘어 죽음의 문턱 앞에서 망설이게 하는가? 이들이 내린 동성애라는 답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심리적 혼란을 겪어서 나온 결과다. 누구보다 그들 자신이 제일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을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비난하고 무슨 이유로 일탈이라고 규정할 수가 있겠는가.
동성애자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보는 시각을 바꾼다면 많은 편견들이 깨지고 좀 더 서로를 수용할 줄 아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들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떳떳하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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