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업체, 학교 시험지를 이용해 돈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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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업체, 학교 시험지를 이용해 돈 번다
  • 김정은
  • 승인 2013.01.1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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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교육은 시간이 갈수록 무너 져 가고 있고 정부는 사교육을 방지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내어놓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사교육의 영향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학교 시험지가 사교육의 상업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설학원을 다니고 있는 학생이라면 대부분 학교 시험이 끝난 후에 시험지를 모아서 학원으로 가져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울산 삼산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진영(18) 학생은 시험기간만 되면 항상 학원 선생님들이 와서 시험지를 갖다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며 “조금 친한 학원 선생님들은 복사할 것이니 노란색 형광펜으로 풀어달라고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학원에서 학생들을 통하여 얻은 시험지는 학생들의 시험기간 족집게 강좌에 이용되는 ‘시험 기출문제 족보’로 재탄생한다. 교사가 가르친 내용을 바탕으로 교사가 시험을 내는데, 학교의 수업은 뒤로한 채 학원 기출문제 강의에 매달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구 관천중학교 정성륜(16) 학생은 학원에 다니지 않은 학생들도 친구에게 부탁해서 교재를 사는 일이 흔하다고 말하며 “기출문제를 풀다 보면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요. 그럼 이 문제는 나올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관천중학교 김보영(16) 학생은 솔직히 시험기간에 학교수업 다 들으면서 공부하면 바보가 되는 기분이라며 “그 시간에 친구들은 밑에 다른 책을 펴고 공부를 하고 있어요. 선생님들도 알고 그냥 넘어간 적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복사된 시험지가 학생들을 위한 학습용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학원가에서는 학교별로 문제지를 모아 교재를 만든 다음 학생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성행 중이다.

경주 서라벌여자중학교 교사 곽갑숙(52) 씨는 시험기간 중 수업시간에 시험지를 묶어서 만든 책을 보는 학생이 많아 호기심에 잠시 빌려 보았는데 시험지 출제자의 이름과 결재 도장까지 복사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곽 씨는 “이것은 저작권 침해나 다름없다. 교사들이 만들어 낸 시험지는 문제집을 찹고하긴 하지만 창작물의 일종이다. 더군다나 교육적 목적이 아니라, 판매의 목적으로 사용된 걸 보니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라고 말했다.

인터넷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고려e스쿨과 종로학원은 ‘기출문제 전문 사이트’로 유명하다. 두 사이트는 10년 동안의 학교별 기출문제를 내려받아보는데 한 달에 1만 원의 이용료를 내야 한다. 또한, 학교 시험지를 보내면 문제집이나 한 달 강의 무료쿠폰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분명한 위법 행위로 2006년 10월, 서울지법은 고등학교 교사들이 한 인터넷 기출문제 사이트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교사들이 정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출제한 문제는 저작권법에 보호되는 저작물이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법 위반’ 판결 뒤에도 학원가에서 기출문제 판매가 성업 중이다. 또한, 교육인적자원부는 실태 조사는 물론, 교사의 저작권 보호와 관련한 지침이나 규정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공교육의 교사들은 자신들의 설자리를 잃어가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권리마저 침해당하고 있다. 이에, 국회 교육위원회 안민석 통합신당 의원은 학교 기출문제를 사교육업체들이 무단으로 사용해 이익을 챙기는 것은 공교육의 신뢰를 심각하게 해치는 행위라며 “교육 당국의 실태파악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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