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인문학 릴레이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한형조 편②] ‘서양철학’ 교육에 실망... 독학으로 ‘동양철학’ 입문동양고전 전문가 한형조 교수에게 인문학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한형조 편①]에서 계속

유학, ‘낡은 학문’ 이미지 극복... 새 전통 뼈대로

문화평론가 조우석은 얼마 전 유학을 ‘전 시대 정신유산의 큰 몫’이라고 평가하며, 한 교수에 대한 인물비평을 시도한 바 있다. “그 유학을 보다 탄력 있고, ‘맛있게’ 저술해서 동 시대에 유통시킬 만한 젊은 학자가 무척 드물다. 거기에 근접한 사람이 한형조 교수다. 그가 갖는 매력은 ‘구질거리거나 곰팡내가 풍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신선하다”, 이런 표현이다.

그는 몇 해 전부터 주간 ‘중앙선데이’에 유학 관련 에세이 ‘교과서 밖 조선유학’을 연재했다. 그리고 그가 보는 유학에의 생각을 더듬을 책 <왜 조선유학인가>를 출간했다. 조우석의 평에 따르면, "젊은 유학 관련서로 손색 없는 책",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유학책"이다. 그러니 그의 유학 공부 얘기도 물어야 한다.

Q. 유학, 한국의 대중에게 여전히 '고리타분한' 학문이다. 특정집단의 지배도구로 전락했다는 이미지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인은 동양고전에 주목하고 열광한다. 유학, 지금 우리에게 어떤 위치인가?

"유학, 원래 낡은 학문, 한국 근대화에 실패한 사상이다. 그 유학, 지금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서는 국면이다. 이게 참 역설이다. 근대화 돌입과 함께 전 시대의 도그마인 유학의 유산이 거의 전부 와해됐기 때문에, 그 잿더미 위에서 21세기에 유학을 달리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거다. 19세기 말 조선의 망국 앞에서 단재 신재호가 “일찌감치 육경(六經)을 불 싸질렀어야 했다”고 유학을 저주하며 그 책임을 물었다면, 이제 시대가 다시 바뀌긴 바뀌었다. ‘포스트모던’한 지금 은근히 옛 것에 관심이 쏠린다. 이제 조선 망국의 책임이 유학에 있다는 준엄한 시선은 조금 무뎌졌다.“

요컨대 시대정신이 학문을 규정하는 상황이다. 그는 한국 또한 근대화(를 못 이뤘다는) 콤플렉스를 벗어 던지면서 이제 또 다른 실용적 목표 아래 전통과 유학 읽기를 실험하는 중이라고 평가한다. 산업화에 성공한 글로벌 강국, 이제 자기 문화, 전통에 바탕한 고유 브랜드, 곧 전통을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나는 그것이 고맙다”는 고백이다.

<주역> <장자> 등 동양 고전으로 가득찬 한형조 교수의 서가(사진: 차용범 제공).

Q. 유학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조선과 중국▫일본을 지배해 온 윤리학▫정치학 측면의 주류사상이다. 그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체계화한 유교(儒敎)가 있다. 그 유교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유학은 심학(心學)이다. 곧 ‘마음의 훈련과 연습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유교를 ‘삶의 길(ars vitae)을 찾아 나선 구도의 모험’이라고 얘기한다. 너무 늦기 전에 이 오래된 학문(古學)에 뛰어들라 하면 시대착오라 하겠지만.“

한 교수는 유교에 대한 세 가지 오해를 얘기한다. 첫째, 유교는 중국의 장물이라는 인식, 둘째 유교의 현장은 문중이나 유림이라는 생각, 셋째 유교를 도덕적 설교로 읽는 통념이다. 그는 강조한다, 현대사회 속 전통의 가치 유학을 말하려면, 이런 상황을 이해하며 보다 날렵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낡은 이념인 삼강오륜을 다시 들먹이고, 도덕과 군자의 도리를 말하는 유학 이야기는 좀 수상쩍거나(시대착오적 강요 때문에), 아니면 좀 우스울 수도(세상 변화를 모른다는 뜻에서) 있다는 것이다.

유학을 위한 변호인가? 한 교수의 발 빠른 전환은 나름 근거가 뚜렷하다. 유학의 그런 한계에도, 조선왕조는 500년을 다스려 왔다. 세계 역사에서 보기 드문 장구한 세월이다. 결함 없는 이념이 어디 있고, 단점이 없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어디 있나?

 

“난, 인문학 강좌에서 ‘지속적 자기훈련’ 강조한다”

Q. 그동안 생활 속의 한국학과 인문정신을 찾는 인문학 강좌에 참 많이 참여했다. 올해 만 해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한국학 콘서트’, 예술의 전당 ‘한국철학 강좌’, 한국국학진흥원 ‘문화유전자 탐방열차’, 경북대의 ‘치유인문학: 마음을 살리는 길’ 강좌..., 얼마나 많은 강연을 했나? 그리고 강연에서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음..., 작은 오해가 있다. 사실 난 강연‧강좌 많이 안한다. 가끔 나간다. 인문학강좌는 최근 폭발적으로 늘었다. 레퍼런스(reference)나 소스(source)는 달라도 강연자들이 주고자 하는 인문학적 메시지는 일치한다. 거기 나까지 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스스로 게으르기도 하고, 마냥 나서지는 않겠다는 경계도 있다. 학자들의 최우선의 가치는 여가이다. 공개되었다간 바빠질까 싶어 강연을 VTR로 녹화도 못하게 한다. 아, 농담이다.”

강조에서 주고 싶은 메시지? 그의 생각은 뚜렷하다. 인문학이 뭔가? 우리가 살아온 일상의 코드, 곧 물질주의 같은 세속적 지향에서 벗어나 정신적 충족 같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게 아닌가. 인문학 강좌, 현재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한국의 인문정신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새롭게 조명한다. 그 속에 담긴 지혜와 가치, 창의성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자리다. 그는 한편 일침을 잊지 않는다. 인문학은 멀고 험한 등정이다. 앉아서 듣는 한두번의 강좌로 ‘치유’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자동차 운전을 생각해 보라. 매뉴얼만 읽고 운전한다? 턱없는 낙관이다. 지속적 자기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형조, 그는 동양철학을 오늘 ‘삶의 문제’로 널리 귀환시킨 쟁쟁한 고수다. 인문정신을 찾는 강좌에도, 스스로 ‘마냥 나서지는 않겠다’는 경계 속에, 적잖이 참여한다. 강좌에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정하다, ‘인문학, 지속적 자기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사진: 차용범 제공).

‘서양철학’ 교육에 실망... 독학으로 ‘동양철학’ 입문

인문학 이야기, 과학의 공식처럼 정확한 결론이 있진 않다. ‘삶의 기술’이란 표현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얘기하는 부분이니 그 흐름 역시 물 흐르듯 매끄러울 순 없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들로 현실과 마주한 구체성을 찾아내는 과정이 그리 쉽기만 할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그는 첫 인상부터 맑고 온화했고, 더러 ‘우문현답’을 나누면서도 내내 여유 있고 겸손했다. 인터뷰 전 인물정보에서 본 얼굴 표정 그대로, 그는 온몸에서 융숭 깊은 멋을 뿜어내는 동양철학자였다.

Q.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사회적 관계와 책임을 묻는 유학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대학원에서 학비 걱정 없이 공부했다." 그의 자기소개 구절이다. 그는 어떤 계기로, 대학생활을 하며 동양철학에 빠졌을까?

“대학 초년 때 잠깐 산에서 지낸 적이 있다. 불교가 가르치는 ‘무의미의 기술’에 지금도 혹하는 이유다. 대학 졸업 무렵 유학 공부를 시작해 주자학에 납치 혹은 중독됐다. 주자학이 과연 지금도 여전히 삶의 기술로 유효한가를 화두 삼아 이야기를 펼치기를 즐긴다.”

그는 인문학을 하려 서울대 철학과를 갔다. ‘삶’에 대해 알고 싶었고, 거기 이르는 길이 궁금했다.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를 묻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대학 철학교육의 주류는 서양철학 중에서도, 분석철학-현상학-헤겔철학이었다. 거기다 철학적 사조나 문학적 흐름 같은, 단편적 지식정보를 전하는 교습방식에 실망했다.

그는 삶의 조언자로서의 철학을 목말라 했다. 원래 철학이란 이름이 ‘지혜를 추구하는 것’ 아닌가. 동양철학에 입문했다. 불교철학을 통해서다. 한 학기를 견디다 휴학계를 던지고, 동해안 어느 암자로 들어갔다. 한 학승(學僧)으로부터 저녁마다 심리학강의를 들었다. 그는 도대체 알아듣지 못했고, 학승은 일본어판 전문서 읽기를 권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원전과 직접 대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학을 독학했다. 보통 한학을 공부하는 과정에는 유명한 한학자의 ‘훈도’(가르침)가 있곤 하지만 그는 그저 혼자 공부했다.

“그건 천재의 영역 아닌가?” 그는 잘라 대답한다. “아니다. 동양학의 다른 분과는 사정이 다르지만, ‘철학’은 독학이 가능하다. 특히 영어 번역이 현대적이고, 일본어 주석이 상세하다.” 이들을 길잡이로 띠풀을 헤쳐 나갔다니 고단했을 여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 독학이 내 스타일의 원천이자 동시에 한계(?)”라고 덧붙였다.

Q. 동양철학, 감히 쉽게 넘기 힘든 거대한 산맥의 영역일 터. ‘동양고전 전문가’, 그동안 공부한 기본 텍스트는 어떤 것들인가? 또 그 텍스트들, 왜 읽고 궁리해야 했나?

"불교의 반야(般若),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원효의 저작, 지눌의 저작, 유교의 공자, 맹자, 제자백가, 송대(宋代)) 주자학, 조선유학의 화담 서경덕,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혜강 최한기..., 동양철학의 기본서를 두루 섭렵했다. 중요한 책은 좀 봤다.

사실 철학에선 많은 텍스트가 필요하진 않다. 불교 역시 경전은 팔만의 방대함을 자랑하지만, 기본적 취지는 심플하다. 반야, 열반, 공(空), 지혜..., 이런 가장 익숙한 키워드가 명료하게 드러날 때까지, 깊이를 얻고 사무칠 때까지 되씹는 것이다. “절대 많이 읽지 말라... 대신 절실하게 체험적으로 사유하라. 이건 역사적으로 오래 가르쳐 온 고전의 독서법이기도 하다.“

그는 주자학의 ‘골륜탄조(渾淪呑棗)’를 들어 “씹기”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골륜’은 ‘새가 대추를 통째로 삼키어 먹는다’는 뜻, ‘탄조’는 ‘대추를 삼키다’는 뜻이다. 곧 공부를 하면서 조리를 분석하지 않고 두루뭉수리 넘겨 외우려만 들어서야 되겠나, 그런 뜻이다.

그는 거대한 산맥 같은 그 동양철학을 익히려 많은 동양고전을 읽고 궁리한다. 하나의 키워드가 명료하게 드러날 때까지, 깊이를 얻고 사무칠 때 까지 되씹는 것이다. 주자학 공부의 체계적 매뉴얼, <성학집요(聖學輯要)> 역시 평소 펼쳐두고 ‘되씹는’ 기본 텍스트다(사진: 차용범 제공).

‘금강경 강의’, ‘종교’ 아닌 ‘인문’으로 불교에 접근

Q.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강의’, 그 두 권을 출간한 서평에 “특히 한형조 교수의 저술은 엽기와 과감을 각오하고 종횡무진, 이 위대한 경전을 자유롭게 풀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가 있다. 그 밖에도 <중고생을 위한 고사성의 강의>도 있고, <한글세대를 위한 불교>, <화엄의 사상>을 우리 말로 옮기기도 했고. 그 많은 저작, 어떤 집념과 열정으로 수행하고 있나?

"사실 불교는 나의 첫 도전이었다. 유교가 엄격한 격식을 요구한다면, 불교는 자유롭고 편하게 얘기한다. 이 <금강경 강의>는 ‘종교’가 아니라 ‘인문’으로 불교에 접근한다. 종교적 도그마에 발목 잡히지 않고, 제도 의례의 관습, 집단의 논리를 떠나, ‘불교’ 그것이 알려주는 ‘인간학’에 오로지 집중한다. 그리하여 독자들의 종교적·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심금에 닿도록 배려했다."

<금강경 강의>, 이 책의 특징은 역시 풍부한 일화와 변죽에 있다.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기실 불교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믿음의 산물이다. 예컨대 만공스님의 음담패설 법문을 통해, 그는 곁에 두고도 못 깨닫는 중생의 어두운 눈을 일깨우는가 하면, 영화 <라쇼몽>을 통해 욕망이 빚어낸 상(相)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보시를 베풀고 덕을 실현하는 방법을 논하며 아내의 젖은 손을 묘사할 때, 그의 문장은 편편의 에세이처럼 쉽고 편하다.

<금강경>? 지금도 절간에서 늘 독송되는, 대승 반야의 핵심적 경전이다. 압축적▫논리적인 <반야심경>에 비해, <금강경>은 흩은 곡조로 반복되고 변주된다. 촌철살인, 경구 경구마다, 깊은 의미와 통찰력을 갖춘 이 경전이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한형조 편③]으로 이어집니다.

차용범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